한국에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말로는 한국 경제가 큰 일이라는 것이다. 물가는 오르고 구매력은 떨어져 자동차를 제외하고는 지난 여름부터 전 품목이 불경기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내년 봄쯤에는 무슨 일이 나지 않겠느냐는 걱정을 한다.
이런 전언이 아니더라도 한국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은 매스컴을 통하여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수출 주종품인 반도체 값이 떨어지고 국제유가가 올라가는 등 경제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대우와 한보의 국제 매각이 무산되는 악재가 잇달아 나타나기도 했다. 경제상태를 가장 잘 반영한다고 볼 수 있는 주가도 연일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정부가 발표하는 통계에 따르면 경제가 좋은 상태이기 때문에 우려할 것은 전혀 없다고 한다. 외환 보유고가 충분하기 때문에 외환 위기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높은 경제성장률과 함께 수출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느끼는 체감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고 한다. 회사는 매출 부진을 겪고 개인의 살림살이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눈으로 볼 수 있는 통계와 느낌으로 알 수 있는 체감경기가 다를 수 있는 것은 IMF 이후 눈에 보이는 해결책에만 주력했기 때문이다. 우선 외자를 유치하고 부실회사를 해외에 매각하여 외환사정이 훨씬 좋아졌다. 따라서 금리가 내려가서 회사 운영이 쉬워졌고 환율이 오른데다 때마침 반도체 경기가 붐을 타서 수출이 호조를 이루었다. 이렇게 경제사정이 좋아지자 정부는 IMF 1년만에 졸업을 선언했고 국민들은 “이제 끝났다”고 소비를 미덕으로 삼았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 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경우도 있다. 컴퓨터를 보면 눈에 보이는 것은 하드웨어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 하드웨어의 기종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성능을 더 좋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컴퓨터는 성능이 좋거나 나쁘거나 소프트웨어에 의해서만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예로 ‘법 보다는 그 운용에 달려있다’는 말도 있다.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제대로 운용하지 않으면 소용 없다는 말이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인물 보다 마음과 정신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는 시장경제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시장경제의 원리는 합리주의를 전제로 한다. IMF 이후 한국에서는 눈에 보이는 경제수치를 바꾸는데 노력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도외시 했다. 행정, 입법, 사법부를 통틀어 정치권이 그렇게 구태의연했고 재벌들의 행태 등 경제도 그러했다. 일반인들의 과소비 현상은 오히려 과거보다 더 심한 편이었다. IMF의 치욕 속에서 다짐했던 「환골탈태」의 결의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찾을 길이 없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존립하고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 보이지 않는 손이 바로 합리주의와 시장경제의 원리이다. 그러므로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인해 존립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합리주의와 시장경제가 완벽하게 정착하지 못한 자본주의에서 경제의 회복은 일시적 반등현상이라고 보면 된다.
한국에서 경제회복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남북관계도 경제회복을 전제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남북대화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북한에 많은 경제적 지원을 주어야 하고 또 통일이 될 경우 그 비용이 엄청나게 들 것이므로 경제력을 키워놓지 않으면 안된다. 경제가 안되면 남북대화나 통일도 물건너 가고 만다. 그러므로 빅딜이나 매각 등 구조개혁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경제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사회의 각 분야와 모든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이 개혁되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경제가 움직여질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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