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1. "얼마나 더 기다려야 돼?""거의 다 됐어.""벌써 17시간이 넘게 기다렸어. 이러다 얼어 죽겠다." MBC TV 수목 미니시리즈 <황금시대> 촬영이 한창인 의정부 MBC 세트장. 김선아와 매니저가 가볍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보통은 8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촬영 들어가는데 이날은 17시간을 기다려도 들어갈 생각을 않기 때문.
풍경 2. "도대체 주연급들은 다 어디 간거야." 드라마의 꽃이라는 미니시리즈 크랭크인을 앞둔 PD들은 하루종일 전화기 앞에서 머리를 쥐어 뜯는다. 입맛에 맞는 연기자들은 연락조차 하기 힘들고 차순위를 택하다 보면 어느새 아침 드라마에 캐스팅 되어 버린다.
주말 연속극도 나을 게 없다. "이번 캐스팅하면서 PD를 그만 둘 까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한 주말 연속극 PD가 촬영 들어가기 직전 술자리에서 한 말이다. 자꾸 엉켜만 가는 캐스팅 작업에 진저리가 쳐졌던 것이다.
▧ TV를 떠나고 싶다.
영화 <자카르타>에 출연한 윤다훈. 그는 기자회견에서 "제 이름 앞에 이제는 배우라는 명칭이 붙었으면 좋겠습니다"고 말했다. 영화의 성공을 기원하는 의례적인 말이었겠지만 배우라는 단어에 대한 욕망을 읽을 수 있다.
한석규 박신양 이성재 심은하 전도연 고소영 등은 TV로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이들은 모두 신인 시절 TV의 수혜를 받은 인물들. 이병헌 장동건 등도 "내심 영화만 했으면."하는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TV는 신인을 발굴해 연기를 가르치고 스타로 키우는 풀(Pool)로서의 역할로 머문 듯한 인상이다. 신인 때 키웠던 연기자가 1년만 지나면 삼고초려 해야 캐스팅 할 수 있을 정도로 스타들은 TV를 떠난다.
본래 스타들이 많이 모이는 것으로 알려진 미니시리즈에서도 정작 스타들의 모습을 보기 힘들다. 톱스타가 빠져 나간 자리를 주조연급들이 메우다 보니 "아침드라마 캐스팅이네"라는 말도 나온다.
▧ TV가 싫어서
TV의 가장 큰 문제는 사전 제작제가 아니라는 점. "제 때 도착하면 대본이 아니다"는 말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쪽에선 촬영하고 다른 쪽에선 열심히 대본을 고치는 모습도 흔한 풍경. 급하게 외운 대본에 제대로 감정이 실려 있을 리 만무하다.
당연히 ‘초치기 촬영’이 이어진다. A팀은 촬영하고 B팀은 편집해 데드라인에 겨우 맞춰 편집본을 넘기는 경우도 많다. 질보다 시간이 우선시 되는 건 당연한 일.
무리한 촬영 일정에 낙엽 떨어지듯 연기자들이 쓰러진다. 당연하다는 듯 링거 주사를 맞고 증명서를 끊듯 병원에 입원한다. 미니 시리즈 한편 출연하고 나면 2~3개월은 쉬어야 한다. 몸을 추스리기 위해. 시청률 30%에도 "나름대로 선방했네"라는 시큰둥한 반응이 나오면 정말 드라마 하기 싫어진다. 이런 상황은 연기자들로 하여금 자괴감이 들게 하고 여건만 되면 영화로 튀게 만든다.
▧ 영화가 좋아서
한국에서 ‘배우’란 단어에는 미묘한 자존심 내지 우월감이 얹혀져 있다. 배우는 영화 연기자를 의미하고 TV 드라마 연기자는 ‘탤런트’로 불린다. 영어로는 다 같은 Actor(Actress)인데 한국에서 이렇게 나뉘어 쓰이는 것은 바로 그 미묘한 자존심 때문이다.
탤런트들은 배우를 꿈꾼다.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많은 수가 그렇다. 그래서 떴다는 탤런트들은 거의 어김없이 영화로 향한다. 성공만 하면 영화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된다. 실패하면 언제든 돌아오지만, 돌아와서도 역시 영화판만 바라본다.
영화 주변의 여건은 좋은 편이다. 특히 주연 배우에게는 온갖 배려가 집중된다. 벤처 자본이 들어오면서 돈은 넘쳐나고 배우는 모자라 개런티 폭등을 불렀다. 1년에 영화 한 두 편, CF 한 두 편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고 이름값을 할 수 있는데 TV로 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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