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한인 이민자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에서 태어난 그들의 자녀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 초기 이민자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는 세월이 조금 더 흐르면 미국인들이 한국의 존재조차 몰랐던 시절부터 미국 땅에서 힘들게 살아왔던 이들의 삶의 역정은 기록으로만 남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이야기는 듣고 또 들어도 할머니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처럼 언제나 새롭기만 하다.
오렌지카운티 ‘레저월드’라 불리는 라구나우즈에는 80대 한인 모세, 헬렌 임 부부가 살고 있다. 이들은 초창기 한인 이민자들의 자녀로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 인터뷰 도중 이들이 간간이 던지는 말들은 현재 미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인들에게 생생한 교훈으로 다가온다.
임 할아버지(81)는 오클랜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임정구)는 목사였고 어머니(황애성)는 세탁소를 운영. 할아버지는 커서 공군을 제대했고 제대 후 연방공무원으로 근무하다 77년에 은퇴했다. 할아버지는 "공군에 복역하면서 자신을 일본인을 경멸적으로 부르는 ‘잽’이냐고 조롱하는 동료들과 싸움도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할아버지는 "군인으로서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같은 동료들과 투쟁을 했으니 말이 되느냐. 어느 사회에서나 편견은 존재하게 마련이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점점 강해졌다"고 말했다.
할머니(84)는 광부였던 아버지(권영태)와 평범한 주부였던 어머니(박영복)의 2남2녀 가운데 장녀로 새크라멘토 태어났다. 아버지 권씨는 할머니가 8세 때 숨지는 바람에 어머니 박씨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농장에서 일을 했다고 하니 할머니의 어릴 적 생활형편은 곤궁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할머니는 장녀로서 집안 일도 돌보고 밖에 나가 일도 해야 하는 힘든 상황에서도 모범적인 한국의 여성으로 성장했다.
할머니는 "중학교를 마치고 백인운영 회사에 취직을 하려 했으나 회사들은 일자리를 주지 않았다. 초창기 한인 이민자들이 살기 위해 고생을 한 것을 생각하면 너무도 마음이 아프다. 지금은 한인들이 능력만 있으며 무엇이나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미국처럼 좋은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어머니 박씨는 영어를 배울 기회를 전혀 갖지 못했다. 박씨는 자녀들에게 집에서 반드시 한국말을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 덕분에 할머니는 ‘배척’ ‘순종’ 등 어려운 단어를 포함, 한국말을 곧잘 했다. 할머니는 최초의 한인 조종사였던 외삼촌 하워드 박씨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며 자랐다.
할아버지는 10세 때 할머니를 처음 만났다. 외삼촌의 권유로 가족들과 함께 프레즈노 인근으로 이사했던 할머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던 한 한인사회 모임에 참석, 친구들과 연극도 공연하고 노래도 불렀다. 할머니는 나중에 시아버지가 된 임 목사의 눈에 띄었다. 임 목사는 할아버지에게 "어른이 되면 헬렌과 같은 여자를 만나 결혼하면 좋겠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같은 여자가 아니라 바로 할머니와 58년 전에 결혼했다. 할머니의 형제들은 모두 일본인, 백인 등 타인종과 결혼했다. 할머니는 "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한국인과 결혼해야 한다고 우리들에게 다짐을 받곤 했다. 그러나 형제들이 한결같이 타인종과 결혼하는 것을 보고 무척 서러워했다. 어머니를 위로하는 마음에서 어머니의 말에 순종, 할아버지와 결혼했다. 지금은 그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아직 건강한 편이다. 이들은 가끔 할머니의 여동생(패사디나 거주) 집에 놀러가기도 하고 고등학생인 손자, 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특히 손녀 타시사(15)는 체조선수로 장래가 촉망받는 유망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하니 이들 부부의 가족사가 손녀 때문에 다시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이들 부부는 "남가주 한인사회가 보기 좋게 모양새를 갖추고 성장, 앞으로 새로운 한인 이민자들이 미국에 정착하는데 그리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황동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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