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와이키키 브라더스>
영화제 개막작에는 항상 흥분과 설렘이 있다. 1999년 부산영화제 개막작이었던 <박하사탕>. 지난해 전주영화제 개막작 <오! 수정>이 그랬다. 새로운 발성의 영화를 보는 것은 언제나 흥분되는 일이다.
27일 개막한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 <와이키키 브라더스>도 이런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킨 영화이다. 이렇게 유쾌한 영화가 이렇게 슬플 수 있을까. 실컷 웃고 났는데, 이렇게 가슴이 무거운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의문이 꼬리를 문다.
그러나 정작 임순례(40) 감독은 능청스럽게 대꾸한다. "슬펐나요? 그렇게 만들려고 한 것 아니었는데." 감독은 진짜 그랬을 것이다. 매표소 여직원의 한나절을 그린 단편 ‘우중산책’,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못난 세 젊은이의 이야기 ‘세 친구’. 모두 ‘예술성’이 강한 영화로 오히려 ‘작가주의’ 감독이란 꼬리표가 지나치게 어깨를 눌렀을 지도 모른다.
사회자는 이들을 "밤무대의 비틀스"로 선전하지만 사실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노래방과 가라오케에 밀려 지방 도시를 전전하며, 하루하루 먹고 사는 실패한 인생들이다. 성우(이얼)의 고향인 충주 나이트 클럽에 자리를 잡았으나, 이들의 한심한 ‘윤회’는 멎을 줄 모른다. 멤버의 애인을 빼앗고, 죽도록 얻어맞고, 마약을 하고, 도박을 하고. 20년만에 고향에 내려와 만난 친구들은 현재의 삶이 주는 무게에 눌려 있다. 환경운동을 하는 친구, 그 때문에 직장에서 어려운 처지에 처한 시청 공무원. 연포에 놀러가 발가벗고 물놀이를 하던 그 시절은 노래방 화면 대신 떠오르는 추억일 뿐이다.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한 거 아닌가요. 흔히 말하는 ‘꿀꿀하다"고 하는 것, 그 꿀꿀함 안에 유쾌함이 있고. 성공한 사람들의 빈틈도 허술하긴 마찬가지죠."
’3류 인생’이나 ‘가짜 인생’을 엿보는 즐거움은 작지 않다. 술에 취한 드러머가 졸도해 버리자 순대를 볶다가 아르바이트로 무대에 올라온 가짜 이영자 ‘이엉자’는 말한다.
"뭐 내가 가짜라구요? 내가 진짜 이영자면 여러분들 2만 8,000원 내고 술 못먹지.
진짜면 어떻고 가짜면 어때." 나훈아가 너훈아, 너훈아가 유명해지자 이제는 ‘가짜 너훈아’ 까지 나타나는 끊임없는 가짜 인생들, 캬바레 불빛 같은 즐거움.
감독은 말한다. "밤무대 연예인과 손님 사이엔 일종의 묵약이 있는 것 같다. 가짜인 줄 알면서 즐기는 묵약의 즐거움." 실제 나이트클럽에서 1,000만~2,000만원씩 버는 ‘나이트 일류 가수’들이지만 영화에 기꺼이 출연했다는 게 감독의 설명이다. 영화 주인공 대부분 연극배우들인데 속이 깊고 자연스러운 연기가 관객을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영화는 많은 복고풍 영화처럼 옛시절을 재미있게만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배신하고 속인다. 나이트클럽 분장실엔 트로트 여가수가 나타나고 올갠 연주자는 상우에게 묻는다. "지배인한테 못들었어요" 성우는 해고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배신’이라는 거창한 단어는 없다. 떠나고, 돌아오고 그런 생활의 반복이 있을 뿐이다.
진정 이 영화를 슬프게 만드는 것은 영화가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꿈의 한편을 붙들고 사는 사람은 과연 행복한가"라고 조차. "주인공이라는 창을 통해 3류 인생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을 뿐이다. 30대 후반, 혹 40대는 인생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나이다. 어쩔 수 없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극장에서의 개봉은 가을쯤으로 예정됐다. 베니스, 로카르노 등 하반기에 있을 해외영화제를 공략한 후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예술성 강한 영화는 발버둥쳐도 안되는 우리 시장 구조에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려는 제작사 명필름의 새로운 전략이다.
임순례 감독에게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두번째 장편 극영화. ‘2년생 신드롬’ 같은 것은 없다.
박은주 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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