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강심장 김병현(22·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이 망연자실 넋을 잃었다. 마운드에 쭈그리고 앉은 그의 눈에는 이미 초점이 없었다. 운명이 어쩌면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이게 정말 현실일까? 두 눈에선 피눈물이 터져 나오는 듯 했다. 월드시리즈에서 이틀 연속으로 9회말 투아웃후 동점 투런홈런을 맞다니….
’경악’이란 말밖엔 표현할 길이 없었다.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바로 전날 9회와 10회말 각각 동점홈런과 결승홈런을 맞는 감당키 어려운 비운을 맞았던 김병현에게 단 하루만에 다시 ‘판박이 참극’이 닥쳤다. 1일 뉴욕 양키스테디엄에서 벌어진 뉴욕 양키스와의 2001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D백스 클로저 김병현은 팀이 2대0으로 앞선 9회말 마운드에 올라 전날의 실패만회를 노렸으나 또 다시 투아웃후 동점 투런홈런이라는 가혹하기 짝이 없는 비운을 맞고 피눈물을 쏟았다.
전날 생애 최악의 비운을 당한 후에도 애써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김병현이었으나 이틀 연속 맞은 운명의 장난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찼다. 마운드에서 넋이 나간 그를 본 베테런 동료 마크 그레이스(1루수)는 자신이 충격에 빠진 속에서도 뛰어와 김병현의 머리를 얼싸안고 위로했으나 그의 귀에 무슨 말이 들릴 리가 없었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무모한 도박을 감행, 비참한 실패를 맛본 D백스 밥 브렌리 감독은 곧바로 김병현을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경기는 이후 연장 12회까지 진행됐으나 신들린 ‘매직 파워’로 무장한 양키스가 기사회생한 경기를 내줄 리 없었다. 연장 12회말 알폰소 소리아노의 우전 적시타로 결승점을 뽑아 3대2로 기적의 역전극을 마무리하고 홈 3연전에서 전승을 거둬 2연패로 시작한 시리즈에서 3승2패로 우위에 섰다. 이틀 연속으로 믿기 어려운 역전 드라마의 제물이 된 D백스는 상상도 어려운 가혹한 운명의 장난에 팀 전체가 헤어나기 어려운 충격에 빠졌다.
전날 4차전에서 속이 송두리째 뒤집히는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음에도 불구, D백스는 강인한 정신력과 ‘저니맨’ 선발투수 미겔 바티스타의 눈부신 역투를 앞세워 마이크 뮤시나가 나선 양키스에 끈기로 맞섰다. 뮤시나에 철저히 압도당하던 타선은 5회초 스티브 핀리와 로드 바라하스의 솔로홈런 2방으로 2대0 리드를 잡았고 바티스타는 7⅔이닝동안 126개의 공을 던지며 양키스 타선을 산발 5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는 혼신의 역투를 했다. 8회까지 2대0으로 앞선 D백스로서는 이날 승리하면 전날의 믿기 어려운 패배의 충격에서 완전히 회복돼 다시 시리즈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 상황에서 브렌리 감독은 보통 사람은 상상도 어려운 대 도박을 감행했다. 전날 3이닝 가까이 61개의 공을 던지면서 9회말 투아웃후 동점홈런과 10회말 끝내기홈런을 얻어맞고 만신창이가 된 김병현을 9회말 다시 마운드에 올린 것. 전날의 실패를 만회하게 해 클로저로서 자신감을 회복시켜주려는 의도였다. 어쩌면 김병현이 주장해서 이뤄진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어린 김병현은 자신이 이런 역할을 감당할 준비가 안됐음을 알지 못했다.
첫 타자 호헤 포사다에 좌익선상 2루타를 맞아 곧바로 위기에 몰린 김병현은 셰인 스펜서를 3루땅볼, 척 나블락을 삼진으로 잡아 다시 피니시라인에 원아웃 앞으로 다가섰다. 다음 타자는 우타자 스캇 브로셔스. 1998년 월드시리즈 MVP인 베테런 브로셔스는 전날 김병현과 두차례 대결, 삼진과 외야플라이로 물러났으나 이날은 한번의 스윙으로 빚을 갚으며 김병현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악몽의 상처를 남겼다.
제2구인 시속 81마일의 한복판 업슛 커브를 놓치지 않고 끌어당겨 레프트펜스를 넘겨버린 것.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 참사가 한번도 아니고 이틀 연속 김병현을 덮쳤다. 이긴 팀이나 진 팀이나 모두에게 믿기 어려운 충격이었고 경악이었으나 특히 김병현에게는 이미 월드시리즈가 문제가 아니라 선수생명이 위태로워진 상상을 초월하는 아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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