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들을 묘사한 그림을 보면 거대한 낫을 들고 있는 신이 있다. 시간의 신, 크로노스이다.
대지의 여신과 하늘의 신 사이에서 태어난 크로노스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아내 레아가 자식을 낳기만 하면 그 즉시 삼켜버리는 것이었다. 5남매를 남편에게 빼앗긴 레아는 지혜를 짜냈다. 6번째 출산후 아기를 몰래 빼돌리고, 대신 아기 만한 돌멩이를 강보에 싸서 남편에게 주었다. 그렇게 해서 겨우 목숨을 건진 아기가 훗날 올림포스 신들의 왕이 되는 제우스이다.
크로노스가 자식을 삼키는 잔인한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크로노스라는 사람 모습의 신 대신 그가 상징하는 ‘시간’을 대입하면 쉽게 설명이 된다.
시간 혹은 세월은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는 자연의 섭리를 상징하는 것이다. 크로노스가 들고 있는 거대한 낫 역시 시간은 시작이 있는 모든 것을 끝나게 한다는 냉정한 자연의 법칙을 상징한다.
시간의 특성을 여러 가지로 설명할수 있겠지만, 철학자나 과학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경험으로 아는 가장 확실한 진리는 시간은 흘러가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또 우리 모두가 잊고 사는 것은 한번 가버린 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레아가 아무리 애를 써서 낳아도 크로노스가 꿀꺽 삼켜버리면 아기가 없어지듯이, 우리가 지금 손안에 분명히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시간과 함께 소멸돼 버린다. 권력도, 명예도, 부(富)도. 혹은 기쁨, 고통, 사랑, 미움도…그리고 마침내는 생명도.
그래서 벤자민 프랭클린은 “생명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충고했고, “촌음을 아껴쓰라”“시간은 금이다”는 동서양의 금언들이 시간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농경문화권과 같은 단순한 사회와 시대에는 더 없이 좋은 충고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충고가 현대를 사는 우리, 특히 이민와서 자리잡느라 잠자는 시간 빼고는 일만 하는 우리 한인 이민1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지는 의문이다. 촌음을 너무 지나치게 아껴쓰는 일중독증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한 미국신문에서 어느 아버지의 뼈아픈 후회의 고백을 읽었는 데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아이들에게 좋은 옷, 좋은 장난감 사주고, 최고 교육을 받게 해주기 위해 많은 시간을 일에 쏟아 부었던 성실한 아버지, 좀 더 좋은 차에 좀 더 좋은 집을 갖고 싶었던 평범한 가장이었다. 우선 중요한 것부터 챙기고 보자는 생각에 가족들과 공원에 한번 나가는 것도 ‘내일’, 가족 휴가는 ‘내년’하며 미뤄왔다고 했다.
“그런데 내일이란 없더군요. 내 아들이 지난해 죽었습니다. 겨우 14살에 말입니다. 그 아이 데리고 풋볼경기장에도 가고 음악회에도 갈수 있다면 나는 이제 평생을 종이 상자곽 안에서 살아도 좋습니다. 그 아이랑 다시 뒷마당에서 골프공을 칠수 있다면, 나는 매일 버스 타고 다녀도 상관이 없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멀리 내다보고 생각하라”고 그는 세상의 일중독자들을 향해 충고했다.
시간은 세가지의 걸음걸이를 가지고 있다고 18세기 독일의 시인 실러는 표현했다.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쏜살같이 달아나며, 과거는 영원히 정지되어 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어떻게 해볼수 있는 시간은 현재뿐, 과거나 미래는 우리의 권한 밖이다.
쏜살같이 달아나 버리는 현재라는 시간에 무엇을 실을 것인가. 시간이 기다려 주는 것과 절대로 기다려 주지 않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 지혜라고 본다. 좋은 예로 ‘무지개 이야기’가 있다.
할 일이 잔뜩 인데 아이가 무지개를 보러 가자고 한다. 일을 선택할 것인가, 무지개를 선택할 것인가. 무지개를 보고와도 일은 거기서 기다리고 있지만, 일을 먼저 끝내고 나면 무지개도 아이도 더 이상 거기에 없다는 상징적 이야기이다.
2001년 한해가 종착점에 도달했다. 365일이라는 시간의 배에 올해는 무엇을 실어 보냈는지 정산을 해보아야 하겠다. 그리고 새해에는 시간이 절대로 기다려 주지 않는 것들에 좀 더 충분한 배려를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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