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의 미국 이민은 처음부터 자의에 의해서 시작됐다. 한인 이민의 주체는 마땅히 우리 이민자 자신들이다. 2003년 1월13일이면 미주이민 100년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미주 이민역사의 주인공 노릇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 이민사회에 대한 우리의 주체의식이 약해서 조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미 주류의 참여도가 낮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주체의식을 살려 낼 수 있는가. 미국 이민자 중에서 크게 성공한 유대민족을 통해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유대민족은 조국을 잃고 2000여년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 온갖 고생 끝에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 이민생활의 현지화와 주체의식의 확립이다. 이 원칙을 미국에 사는 650여만의 유태인들은 하나 같이 실천하고 있다. 자신들의 전통가치와 정체성을 자손들에게 철저히 가르칠 만큼 주체의식을 고수한다. 조상들의 온갖 과오와 치욕의 기록까지 박물관에 전시하여 아이들에게 교육 자료로 삼고 있다. 그러면서 유대민족은 미국을 제2의 조국으로 여기고 현지화에 충실하여 미국에서 당당한 시민으로 존경받는다. 그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미국으로 하여금 그들의 조국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주도록 한 것도 그들이다.
이민의 현지화는 차세대의 교육방향을 바꾸어 놓는다. 우리도 장차 이 땅에 나의 뼈를 묻고 "여기가 내 나라"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 내가 미국사회의 주인이라고 믿는 것이다. 미국을 제2의 조국으로 믿으면 현지에 대한 애착과 주인의식이 살아나는 법이다. 삶의 의욕과 꿈과 비전이 생기게 된다. 부모들은 지금처럼 일신의 편안을 위해 자식들에게 전문직을 권하는 대신 이왕이면 자식들을 큰 인물로 만들기 위해 지도력 개발을 꿈꾸게 된다. 아이들의 잠재력을 개발하여 존경받는 일꾼으로 키워 미국 주류사회에 내보내려는 새 열정이 끓어오르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이민 현지화와 주체의식을 살려내려고 하지만 우리를 혼란시키는 몇 가지 걸림돌이 주변에 있다. 그 하나는 아직도 우리 중에 미국을 금의환향의 발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한자리 할 목적으로 이곳의 한인단체장이 되거나, 돈을 모아 돌아갈 기회를 노린다. 순수하게 조국의 정치인들을 돕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이권과 출세의 저의로 후원한다면 욕심의 노예가 되어 동포사회가 분열될까 염려된다.
또 하나가 있다. 조국의 관료적 태도이다. 최근 재외동포재단에서 기획하고 있다는 재외동포센터 건립모금 계획이 알려지면서 각계가 반발하고 나섰다는 소식이다. 기대하는 모금의 액수도 크지만 문제는 결정과정의 하향식에 있다. 조국이 아직도 시민사회가 되기에는 요원하다고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결정에 참여하는 미국식 민주사회에서 시민의식을 체험하며 살고 있다. 엄청난 모금계획을 시민일반의 참여 없이 조국 관료와 단체장 몇 사람이 일방적으로 계획하고 발표하는 것은 비민주적이요, 관료적 습성이라 환영받기 힘들 것이다.
소위 평통도 우리의 현지화에 걸림돌이 된다. 평통이라는 기관은 남한 군사정권이 북한대항을 구실 삼아 통치수단으로 만든 기구가 아닌가. 이 기구는 우리 해외동포들까지 명예회원으로 포함시켜 통치부가 그 임명권을 갖고 우리를 끌고 다니는 어용기관이다. 해외동포들로 하여금 현 정권과 총영사관에 경쟁적으로 줄을 대게 하며 2년마다 임명과정에서 투서와 중상 등 잡음을 일으켜 비웃음을 사왔다. 차라리 해체를 건의하고 한인회 산하에 조국통일전문위원회를 설치하자. 미국시민이기 때문에 조국이 할 수 없는 부분을 우리가 주체적으로 맡아 통일로 가는 길을 돕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다.
우리는 지금 미주이민 100년 기념사업을 한창 벌이고 있다. 과거의 이민자들의 발자취를 캐내고 문서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거사에서 미래의 번영을 위한 교훈을 과감하게 도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민의 현지화와 주체의식의 확립에 걸림돌이 무엇인지 확인하여 이민사의 새 방향을 제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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