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한국 증시에 투자하는 뉴욕의 한 펀드매니저에게서 인상적인 얘기를 들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주식을 많이 팔았기 때문에 이제는 거래할 주식이 없다”고 말했다.
처음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IMF 위기 이후 외국인의 시장 점유율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65% 정도는 한국인 소유가 아닌가. 가깝게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주식 투자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무슨 소리인가. 이런 질문을 물어보기도 전에 그는 자신의 말을 부연설명했다.
“한국 사람들은 주가가 내려간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가가 조금만 오르면 팔아버립니다. 저의 상사는 ‘왜 한국 사람들이 주식을 파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곤 하지요. 정부보유 주식과 재벌기업의 상호출자, 대주주 지분을 빼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 가운데 60~70%는 외국사람들이 쥐고 있습니다.”
이제야 그의 말이 이해되었다. 서울의 친구가 주식에 미쳐 날밤을 새우는 것도 전체 시장의 10%도 안되는 물 가장자리에서 노는 것에 불과하고, 한국 증권시장은 3~4년 사이에 국제 자본의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있다는 사실이 머리 속에 들어왔다.
그의 말을 검증하기 위해 몇가지 통계를 찾아보았다. 금융감독원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증권거래소 상장 주식 가운데 외국인 보유 주식은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IMF 직전인 96년에 13.0%에서, 99년엔 21.9%, 2000년엔 30.1%, 지난해말엔 36.6%로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그런데 증권거래소의 자료를 보면 2000년말을 기준으로 할 때 정부 지분, 일반 기업의 주식보유 등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주식을 뺄 경우 외국인 비율은 50%에 이른다. 개인보유 주식 가운데 금고에 잠겨있는 대주주 지분을 제외하면 외국인들이 시장의 70% 가까이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 사실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외국인들, 특히 뉴욕 월가 자본에 의해 시장이 잠식되고 있는데 대한 우려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포항제철, 삼성전자, SK 텔레콤, 한전은 이미 외국인들이 50% 이상의 주식을 보유, 엄밀한 의미에서 외국인 회사가 되어버렸지 않느냐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가들이 한국 주식을 꾸준히 사고,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한국사람들이 주식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의 자료를 보면 한국 증시 전체의 매매회전율이 지난해말 599%에 이르고, 외국인들만 볼 때 120%에 불과하다. 이는 한국의 전체 주식이 1년에 6번 거래되는데 비해 외국인들은 1.2번 거래한다는 얘기다.
한국인들은 평균 40일, 외국인은 300일간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외국인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 증시를 바라보는데 비해 한국 사람들은 한달을 참지 못하고 샀다 팔았다 하며 시장을 잃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 투자자들이 단타매매에 몰두하는 사이에 외국인들이 시장을 잠식해나가는 것일까. 성격이 급한 국민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선 한국 사람들이 한국 경제를 믿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국인들은 한국 경제의 장기적 발전 가능성을 보고 주식을 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인들은 주가가 오르면 곧 빠지기 때문에 조금만 수익이 나면 팔아야 한다는 분위기에 젖어있다. 지난 10년 이상 종합주가 지수가 400에서 1,000 포인트 사이를 출렁거렸으니, 그럴법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제 한국 사람들도 주식시장을 기업 자금의 건전한 공급지로 발전시키기 위해 투자 행태를 바꾸어야 한다.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 지수가 지난 10년간 대세 상승을 한 것은 미국인들이 자국 경제에 대한 신뢰감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 개개인은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 증권시장이 외국인에게 빼앗기고 놀아나고 있다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여의도 증시가 우리의 것이며 그곳을 통해 한국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자존심을 가져야 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