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가 한창 잘 나가던 지난 88년. 미쓰비시 연구소는 이런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일본이) 고령화 사회가 되어 노인이 늘어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노인들을 위해 세금 따위를 낼게 뭐야’하고 태도를 바꾸게 될 것이다. 여기서 ‘노소(老少) 전쟁’이 확실하게 일어날 것이다. 90년대는 그럭저럭 넘어갈 것이지만, 다음 세기는 그런 전쟁 발발의 입구로서, 장수화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일본의 고령화는 지난 10년간 경제침체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고령자가 증가한다는 것은 노동을 하지 않고, 사회 보장을 받고, 의료비가 많이 드는 연령층이 늘어나는 것을 뜻한다. 일본은 현재 14세 이하의 어린이 인구보다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가 많은 세계 제1의 장수국가로 부상했다. 99년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7%에 육박했고, 2015년에는 25%로 넘어설 것이며, 앞으로 20년 후에는 고령화로 국민총생산(GDP)이 7% 가까이 감소할 것이라는 계산도 나와 있다.
인간은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한다. 중국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제도 불로초를 구하려고 온갖 노력을 했던 것처럼 장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꿈이다. 그러나 사회 경제적인 측면에서 노령화는 큰 문제를 낳는다.
일본은 2차 대전 이전에 양산(?)된 인구가 90년대 이후 사회적 고령화를 결과했다. 이에 비해 미국은 2차 대전이 끝난 후에 많은 아기가 태어났고,
1945년에서 1960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를 이른바 ‘베이비 부머(Baby Boomer)’로 부르고 있다. 빌 클린턴 전임 대통령, 지금의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베이비 부머 세대다. 베이비 부머 세대는 20대이던 1960년대에 세계적인 팝송 열풍과 청바지바람, 히피 경향을 일으켰고 베트남전 반대 운동의 주역이었다. 이들이 직장을 갖고 경제 주역이 됐을 때 장기호황이 시작됐다. 베이비 부머들은 장래에 은퇴할 때를 대비, 봉급의 5~15%를 떼어 내 증권투자를 했고, 이 돈이 뮤추얼 펀드를 통해 뉴욕 월가에 유입됨으로써 지난 20년간의 황소장세(Bull Market)를 주도했다.
90년대 미국과 일본의 경제가 역전된 것을 경제전문가들은 시장 시스템으로 설명하지만, 인구통계학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일본의 고령화가 미국보다 빨랐던 것은 전쟁의 탓이다. 일본 정부는 중국과 전쟁을 벌이고, 미국과 태평양전쟁을 치르던 1935~1945년 사이에 아이를 많이 낳을 것을 권장했다. 이때 출생한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던 60~80년대에 일본 경제는 고도성장을 구가했고, 미국 경제를 꺾겠다는 야심을 불태웠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미국의 베이비 부머 세대들이 경제전선에 뛰어들었을 때 일본의 주요 인구층이 늙어갔다. 그 결과는 일본 경제의 침체였고, 미국의 부흥이었다.
한국에서는 6.25 이후 출산율이 높았다. 한국의 베이비 부머는 일본보다 10~15년 지연됐고, 미국보다는 5~10년 늦었다. 한국의 베이비 부머 세대는 한국 경제발전의 주역이었고, 민주화 운동의 핵심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미국과 한국에서 전후 베이비 부머 세대가 늙어간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선 10년후면 베이비 부머 세대들이 65세에 진입한다. 이들이 직장을 은퇴할 때 인력난이 발생하고, 노후 비용을 쓰기 위해 증시에서 돈을 빼내게 되면 주가 하락을 초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고령층에 대한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해 있고, 개개인이 노령화에 준비를 해왔다. 이에 비해 한국사람들은 대부분이 노후를 준비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평생 가정과 직장을 위해 희생적인 삶을 살다가, 남은 인생을 자식에게 의지하는 게 보통이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고령화에 대한 여러 가지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일자리다. 관념상 또는 제도상 정년을 연장해서 노동인구를 확대하고, 과다한 육체 노동이 요구되지 않는 정보통신 산업에서 일자리를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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