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 중 하나는 교통수단, 즉 자동차이다. 그러다 보니 자동차에 대한 많은 사연과 추억을 누구든지 가지고 있다.
우리 가족의 자동차 이야기는 뭐니뭐니 해도 처음 산 도요타 코롤라로부터 시작된다. 20여년 전에 미국 와서 처음 타본 코롤라는 베이지 색이었고, 조그맣고, 가볍고, 날아가듯이 잘 나아가는 그런 차였다. 재산 목록 1호, 20년 전의 코롤라를 우리는 지금도 가지고 있다. 아내가 특히 그 차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10여년 전에 새크라멘토에서 LA로 내려올 때, 나의 일용할 재산은 코롤라에 실었던 책, 옷, 약간의 가전 전자제품이 고작이었다. 당시만 해도 차가 쓸 만했지만 역시 작은 차라서 도중에 해발 3,500피트 밖에 안 되는 그런 고개 아닌 고개를 오를 때 시속 35~40마일로 덜덜거리며 기어가던 추억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20세의 코롤라를 우리는 아직도 운전해 다닌다. 우리 식구는 코리아타운에 사니까 주로 아내가 사무실, 집, 또는 마켓을 다닐 때 운전한다. 이런 낡은 차를 타고 다니면서 나는 "야, 이 오래된 코롤라도 정이 드니까 남이 뭐라고 하든 나에겐 참 쓸만한 차로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몇년 전 내가 평소 타고 다니던 차가 고장이 나서 수리중이어서 코롤라를 몰고 어떤 모임에 갔을 때, 타운의 저명하신 참석자가 "아니, 미스터 강, 아직도 그 차를 타고 다닌단 말야?"라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농담을 했다. 나는 겉으로는 당황했지만, 속으로 "아니, 이 차가 어때서 그래요? 연료 조금 들죠, 보험료 싸죠, 월 상환금 없죠. 아 이렇게 좋은 차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앞으로 가 하면 앞으로 가고 뒤로 가 하면 뒤로 가고, 멈춰 하면 멈추고. 이 정도면 자동차 기능은 완벽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고 코롤라를 위로했던 적도 있었다.
한인타운에서 회계사로 일하다 보니 차를 사는 것이 좋으냐, 리스를 하는 것이 좋으냐 하는 물음도 많고, 또 자기 소득 수준이면 무슨 차를 타는 것이 세금 측면에서 감사 걱정 없이 안전하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 나는 고객의 회계장부를 정리하여 회계 보고를 준비해서, 그들의 재산의 증감 상태를 국가에 보고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공인회계사이다. 그런 CPA 입장에서 보면 경제적인 현실과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사회적인 위신의 사이에서 생기는 많은 갈등이 느껴진다.
경제적으로 성공하면 통상 좋은 차를 사고, 좋은 집을 사고 하는 것이 일상적인 모습이기는 해도 우리는 자동차에 대해서 너무 남을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여겨진다. 남의 눈에 잘 띄는 변화 중에 자동차가 첫 손가락이고, 주택이 두번째요, 바라기는 해도 쉽지 않은 것이 자녀의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자녀의 자랑스런 성장은 부모에게 끝없는 보람이지만, 내 돈 가지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차 사는 것과 집 사는 것이 가장 손쉬운 것이다. 새 것이 주는 즐거움도 크지만, 더 많은 물질적인 풍요가 혹시라도 나의 출세의 척도로, 성공의 척도로 여겨진다면 그것은 우물 안의 개구리식 사고라고 생각한다.
우리 가족이 스무 살이나 먹은 할아버지 도요타 코롤라를 타고 마켓에 갔을 때, 호텔 식당에 갔을 때 주눅이 들진 않았어도 자랑스럽지도 않았다. 조금도 우쭐댈 필요도 없었고, 거들먹댈 수도 없었던 것은 우리의 낡은 자동차가 내게 말없이 속삭이기 때문이다. 이것 봐! 당신 올챙이 적을 생각하라고.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을 가질 필요도 있지만, 옛 것을 고쳐서 오래 오래 간직하고 사용하는 것은 삶의 고향을 잊지 않는 것과 같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나면 흉허물이 없듯이 옛 집에 오래 머물면 편하듯이 오랜 세월 정이든 자동차는 내가 보통의 사람, 서민의 정신으로 내 주변을 대하도록 도와 준다. 내가 태어난 곳이 농촌이었듯이, 내가 먹던 된장 맛이 구수했듯이 훈훈한 정이 담긴 우리의 옛 이웃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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