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전 어머니는 68세의 비교적 이른 나이에 아버지와 우리 육남매를 남겨둔 채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그때 막내 남동생이 13세 중학생이었다.
어머니는 1년의 투병 끝에 돌아가실 때 눈도 제대로 못 감고 가셨단다. 어린 자식을 두고 가자니 얼마나 안타깝고 억울하고 슬펐겠는가…
당시 미국에서 생활하던 나는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고 황급히 짐을 챙겨서 생후 6개월된 딸 아이를 데리고 고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4세난 큰 아이는 아빠 곁에 남겨둔 채 금방 돌아올 것이라 기대하고 말이다. 그때만 해도 직행하는 비행기가 없어 LA를 거쳐 장장 20여 시간은 더 걸렸던 것 같다. 그런데도 아기는 슬픈 내 마음을 읽기나 한 듯 내 품에서 잠자며 보채지도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나는 "우리 어머니 꼭 살려주세요"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애원하며 긴 기도를 드리고 또 드렸다. 병상에서 계신 어머니는 지칠 대로 지치고 쇠약한 몸으로 큰딸인 나를 반겨주셨다. 처음 보는 손녀딸을 힘겹게 겨우 안아보시기도 하시며 이유식을 잘 받아먹는 손녀딸을 물끄러미 쳐다보시기도 했다.
어머니의 상태는 좋아지는 것 같다가도 나빠지고 온 집안이 초상집이었다. 금방 돌아가실 듯 엄청난 고통에서 헤매시는 어머니의 그 아픔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었다. 나는 어머니 곁을 지키며 "하나님, 우리 어머니를 빨리 데려가세요. 저 고통에서 어서 해방시켜 주세요"라고 수없이 눈물 흘리며 기도 드렸다.
그런데 4세난 딸아이를 직장 다니는 남편에게 맡기고 왔으니 마냥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큰 아이를 데리고 다시 오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머니는 미소를 띠시며 "그래 잘 가라, 조심해서"라고만 했지 꼭 오라고는 안 하셨다. 전에는 "죽던지 살던지 꼭 보고 가라"며 떼(?)쓰던 어머니가 아니었던가. 어머니는 바로 큰 딸과의 마지막 작별의 시간이 됐음을 미리 아신 것 같았다.
미국에 돌아와서 12일이 지난 후 막 잠자리에 들 때였다. "따르릉" 전화소리에 놀라 수화기를 들었다. 오빠의 슬픈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흘러나온다.
"어머니께서 오늘 정오에 별세하셨다. 그 엄청난 아픔에서 해방되어 하나님 곁에 가셨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전화를 끓고 나는 순식간에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정말이지 어머니가 그 엄청난 고통에서 해방되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오랜만에 편한 마음으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부터 나는 걷잡을 수 없는 허탈감에 빠지고 있었다. 어머니가 이 세상 어디에도 안 계신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진다. 엉엉 소리내며 울고 또 울었다. 12일만 더 어머니 곁에 있었다면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을 거고 장례에도 참여할 수 있었는데… 뒤늦은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세월이 지난 후에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의 눈은 어느 틈에 눈물로 가득 채워진다.
이제 우리 6남매는 미국에 넷, 한국에 둘 비록 이산가족이지만 모두 잘 살고 있는데 정작 효도 받으셔야 할 어머니는 우리 곁에 안 계신다.
이제는 아버지도 이 세상에 안 계신다. 서둘러 달려갔을 때 아버지는 혼수상태에 계셨다. 잠시 정상으로 돌아오셔서 주위에 앉은 아들, 딸 사위를 둘러보시고 눈을 감으셨다. 아버지는 14년만에 어머니 곁에 나란히 묻히셨는데 어머니와 합장하던 날 합장을 하기 위해 파 놓은 무덤 안에서 난 어머니의 관을 볼 수 있었다.
생전의 어머니를 만난 듯 어머니관을 향하여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한 큰딸이 이제야 어머니를 찾아왔어요"라고 사죄를 드렸다.
"어머니! 28년 전 불편한 몸으로 안아주셨던 생후 6개월이었던 어머니의 손녀딸이 지금은 어엿한 한 아기의 엄마가 됐어요. 사랑하는 어머니! 꿈속에서라도 한번 뵐 수는 없을까요… 어머니! 너무나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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