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타임스퀘어 상공에서 스파이더맨과 그린고블린이 공중전을 벌인다. 그 사이에 간간이 삼성전자 전광판이 나타난다.’
이 달 초 개봉해 블록버스터의 신기록을 세운 영화 ‘스파이더맨’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뉴욕을 무차별로 파괴하는 악마를 처벌하는 정의의 화신을 그려냄으로써 9.11 테러 이후 마음 상한 미국인들을 속시원하게 했다는 점에서 흥행에 성공한 것 같다.
타임스퀘어는 영화 속에서 선과 악의 싸움터였지만, 현실에서는 전광판을 둘러싸고 삼성과 소니가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인 곳이다.
스파이더맨은 일본 소니사가 지난 80년대에 인수한 컬럼비아 영화사의 한 계열사에서 제작됐다. 당초 예고편에는 삼성 전광판 대신에 USA 투데이사의 광고판이 그래픽으로 처리돼 있었다. 이에 건물주들이 영화사가 대주주인 소니의 경쟁사인 삼성을 의식, 의도적으로 간판을 교체했다고 주장, 원상 복구를 요구하는 소송을 뉴욕 지방법원에 제출했고, 소니측이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했다는 후문이다.
스파이더맨이 개봉된지 열흘후인 지난 15일 삼성전자는 타임스퀘어의 전광판을 교체했다. 점등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서 온 진대제 사장은 "소니의 스파이더맨이 삼성 전광판을 날아다녔다"며 조크를 한 뒤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전광판을 바꾸게 됐다"고 밝혔다.
삼성과 소니는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삼성의 창업자 고 이병철 회장은 선진기술을 배우기 위해 매년 12월 일본을 순례했고, 지난 30년간 삼성전자는 어쩌면 소니의 착실한 제자였다. 그러나 소니의 입장에서 보면 삼성은 너무 빨리 따라오는 무서운 제자였다.
한 세대가 지난 지금, 삼성과 소니는 전세계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소니의 순이익에 20배에 해당하는 3조원 가까운 순이익을 낸데 이어 올 1~3월에 1조9,000억원의 순이익을 내 소니가 같은 기간에 55억엔(550억원)의 손실을 기록한 것과 대조를 보였다.
단기적인 수익을 기준으로 할 때, 삼성이 소니를 제친 것처럼 보인다. 이를 기준으로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최근호에서 "3년 내에 삼성이 소니를 앞지를 것"이라고 호평했고, 국내외 언론들은 삼성이 여러 부문에서 소니를 추월했다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뉴욕타임스를 비롯, 세계 유수 언론들은 최근 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한국과 일본 경제를 비교하는 기사를 싣고 있다. 해외 언론들은 한결같이 "한국이 경제개혁을 통해 높은 성장을 이룩하고 있는데 비해 일본은 개혁을 지연시키고 있기 때문에 장기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에 우호적으로 기울고 있다.
그러면 과연 삼성이 소니를 젖히고, 한국 경제가 일본보다 나아졌는가. 삼성 전자의 매출이 소니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한국경제의 생산력(GDP)은 일본의 10분의1에 불과하다. 소니는 미국을 능가하는 슈퍼 컴퓨터를 제작하는데 비해 삼성의 능력은 퍼스널 컴퓨터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 경험을 했던 한국 사람들에겐 일본을 이겨야 한다는 경쟁심이 마음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다.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을 추월했고, 일본이 한국 경제에서 배워야 한다는 외국의 칭찬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비교에는 무서운 함정이 있다. 바로 자만이다. 일본은 지난 80년대에 미국을 능가했다는 자만에 빠졌고, 소니가 컬럼비아 영화사를 매입,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적이 있다. 그 후 일본은 장기침체에 빠졌고, 앞으로도 미국을 능가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은 일본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아직 소니는 세계 전자시장 정상에 있고, 삼성은 한참 따라가야 한다. 한국 경제는 일본에 비해 후진국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남의 칭찬에 도취, 자만에 빠진다면 한국은 영원히 일본을 능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일본을 반면교사로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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