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역사의 유물, 미국의 대저택
▶ (1) 델라웨어 웰밍턴시 두퐁가
윤병희씨의 ‘역사의 유물, 미국의 대저택들’이 장기 연재에 들어갑니다. 이 연재물은 미국 자본주의를 일으킨 대부호들의 집을 방문해 이들 주택의 유래와 얽힌 사연 그리고 이들이 미국 사회에 남긴 영향 등을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골동품 전문가 백춘기씨의 ‘소리없는 소리를 찾아서’와 김평육 목사의 ‘아프리카의 킬링필드, 르완다를 가다’에 이어 시리즈에 들어가는 ‘역사의 유물, 미국의 대저택들’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윤병희씨 약력
1937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66년 고려대 법대 및 동대학원 졸업
1966년 도미 유학
에퀴타블 보험회사 23년간 근무
시카고 거주 25년
뉴욕 교포신문 이민 해설 연재
1991년 뇌졸중으로 조기 퇴직
현재 뉴욕 플러싱 거주
뉴욕 근방에서 가장 대표적인 대저택은 두퐁의 집이라 할 수 있다. 95번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약 3시간 가는 델라웨어(Delawear)주 웰밍턴시로 들어가보자. 여기서 다시 52번 도로(Route 52 West)의 서쪽으로 진입하면 볼만한 두퐁(Du Pont)가의 건물을 만날 수 있다.
두퐁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프랑스 태생이다. 이민자인 우리가 근면과 성실로 미국 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두퐁도 타국 땅에서 열심히 노력해 부(富)를 이루었다. 그렇기에 두퐁의 대저택은 우리, 특히 한인 젊은이들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주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두퐁은 미국의 토마스 제퍼슨의 설득을 받아 미국에 왔다. 제퍼슨이 프랑스에 가서 당시 화약제조 기술자인 그에게 "이민 오면 집 지을 땅과 재료를 주겠다"고 유혹했다. 결국 그는 미국에 와 버겐카운티 강변의 땅을 얻었다.
두퐁은 그곳에서 임시로 살면서 공장부지를 조사한 결과, 당시 화약 운송 통로로 허드슨강이 적격이나 둔덕이 너무 높아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남쪽으로 한참 더 내려가 찾아낸 곳이 바로 지금의 장소(Brandywine Valley)이다. 이곳은 강과 부두(Dock)가 얕아서 화약을 많은 적재해도 안심이 되었다.
당시 제퍼슨 같은 미국 정치가는 장차 국방에 필요한 화약을 제조하는 기술자 등을 이민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등 애국자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각종 무기 구입을 둘러싸고 갖은 비리와 추문이 벌어지고 있다. 모리배로 변신하는 정치가들은 두퐁을 이민시킨 제퍼슨을 보고 반성하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우리도 이민온 뒤 몇년 동안은 고향을 자주 찾는 것처럼 두퐁의 가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고향 나들이가 잦아져 화약 생산에 차질이 생기자 프랑스에 있는 자기네 옛집과 똑같은 양식으로 집을 짓고, 향수를 이기려고 노력했다. 이 때의 집이 Winterthur라는 저택이다.
드넓은 정원을 사파리 같은 차로 다니기도 하나 다리가 튼튼하면 걸어서 둘러보아야 아름다운 공원의 꽃과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또 이곳에는 가구가 발달해 온 과정을 보여주는 박물관이 있어 어린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공부가 될 것이다.
이곳 나무들은 세계 여러 곳에서 가져왔으며 한국산 백송도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두퐁이 살면서 9홀짜리 골프장을 조성했다. 나중에 18홀로 증설하기 위해 옆의 땅을 사려고 했으나 팔지 않아 한참 고민했다.
그러나 두퐁은 그의 비서가 “9홀을 두 번 돌면 18홀이 되니까 더 만드실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고 하는 말을 듣고 증설을 포기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두퐁은 아마도 골프광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곳에는 도서관 옆에 식당이 있는데 즉석에서 구워낸 빵 맛이 일품이다. 방문하는 한인은 꼭 한번 맛을 보았으면 한다.
밑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해글리(Hagley)라 불리는 옛날 화약공장이 있다. 이 공장은 계곡 냇물의 흐름을 따라가며 세워져 있어 수송을 편하게 하였다. 이 공장은 세계 제1, 2차 대전 때 큰 역할을 했다. 이곳에서는 또 가끔 실수로 제조중인 화약이 터져 많은 공원이 죽어 나갔다.
공원을 충당할 수 없을 때는 두퐁과 부인이 마차에 화약을 실어 배달하면서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지금 한인들이 부부가 함께 새벽부터 열심히 일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공원 충당이 힘들자 두퐁은 살림집을 아예 공장 위 언덕 가까이로 옮겨서 살았다(해글리에 가면 지금도 보전되어 있다). 사장의 가족도 공장 안에 산다는 것을 알려주는 뜻으로 이곳으로 이사한 것이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뒤쪽 베란다에서 공장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지은 이 집은 그러나 두퐁에게 비극을 안겨다 주었다. 어느날 수를 놓고 있던 부인이 공장의 화약이 터지면서 쓰러지는 집의 석가래를 목덜미에 맞고 큰 부상을 입었다. 부인은 결국 이 부상으로 사망했다.
두퐁은 이를 계기로 가장을 잃은 애들을 위해 해글리 공장 내에 학교를 짓고 아이들을 교육토록 했다. 현재 이 학교도 남아 있다.
이곳 해글리도 걸어서 다니면 볼 것이 더 많다. 한참 전쟁중에는 근처 항구에는 화약을 가지러 온 군함들이 많이 정박했다. 이렇게 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여러 다른 회사도 차려서 현재는 150개의 회사가 되었다.
그러나 부자는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쟁이 끝나자 회사가 힘들어졌다.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그는 피혁회사를 차려 또다시 돈을 벌었다. 그러나 피혁회사는 환경오염이 심해 오래 가지 못했다. 이때 두퐁의 손자 가운데 MIT에서 화공학을 전공한 한명이 나일론을 개발, 할아버지 회사를 회생시켰다.
두퐁의 어느 자손은 벌어놓은 재산으로 공원을 조성했다. 우리가 관광회사를 통해 방문하곤 하는 곳이 바로 롱우드가든(Longwood Garden)이다. 하버드대학에서 원예학(Horticulture)을 전공한 한 손자가 저녁 식사 후 부인과 산책할 정원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그는 이탈리아 로마 근교에 Villa De Este라는 곳에 구경을 갔다 4,000개의 분수가 한번에 각양각색의 물을 뿜어내는 장관을 목격했다. 그 중에서 250가지를 가져와 롱우드 가든에 설치해 놓았다. 이탈리아에 있는 것은 강물을 이용한 자연공법이고 이곳은 전기장치로 작동하는 것이 다르다.
두퐁의 집 중에서 가장 멋이 있고 운치 있는 것은 니모(Nemours)다. Winterthur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으며 정원 내부 꽃밭의 디자인이 특이하다. 예컨대 두퐁이 부인을 잃은 후 출퇴근하면서 항상 기억하기 위해, 집안을 들어가는 문의 맞은편 정원 끝에 아내의 동상을 세워놓았다.
또 당시에는 냉장고가 없어 땅굴을 깊이 파 음식을 보관하였다. 이 굴에는 모든 기구들이 당시 그대로 장치되어 있다. 이 시설을 방문할 때는 소정의 입장료가 있다. 그리고 12세 미만의 아동들의 입장을 금하고 있다.
◀ Winterthur- 입장료 12달러. 노인 8달러 302-888-4600, 800-448-3883
◀ Longwood Garden-입장료 12달러, 노인 10달러 610-388-1000
◀ Hagley-P.O.Box 3630 Welmington, DE 19807
◀ Nemours Mansion-입장료 10달러. 12세 미만 입장 불가 302-651-6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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