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윤병희의 ‘역사의 유물, 미국의 대저택’
▶ (2) 캘리포니아 산 시메온 허스트가
미국에서 오래된 부자는 캘리포니아의 허스트가와 시카고의 껌회사이며 시카고 컵스(CUPS) 야구단 주인인 우글리(Wrigley)가 있다. 조지 허스트는 당초 조그만 은광을 개발하던 광산업자였다.
어느날 라스베가스에서 번쩍이는 것은 모두 금인 광맥을 찾아내 엄청난 갑부가 되었다. 그는 1850년대 이 금광에서 하루에 5만5,000달러의 금을 캐내었다. 그 돈은 지금의 500만달러를 능가한다.
윌리암 랜돌프 허스트는 조지 허스트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아 돈을 물쓰듯 하였다. 교육을 받지 못한 부친과 달리 최고 명문 사학인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상원의원도 해 보았다. 부와 명예를 동시에 겸비한데 이어 미국의 영화 제작 및 발전에도 큰 공헌을 했다.
20세 때부터 60여개의 사업체를 거느리고 로스앤젤레스 이그재미너라는 신문을 비롯해 24개의 신문사, TV, 영화사 등 각종 미디어 업체를 가지게 되었다. 여기서 벌어들인 돈으로 수많은 땅과 부동산을 구입했다. 이때 서부 해안선을 따라 50마일이나 되는 곳에 25만 에이커의 땅을 구입, 산꼭대기에 성을 짓게 되었다.
독자들이 본 영화에서 로마 네로 황제가 거처했던 궁궐로 나오던 곳이 바로 허스트 성(Hearst Castle)이다. 이곳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북쪽으로 한참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 도로 1번(California route 1)을 타고 약 7~8시간 간 뒤 마돈나인(Madonna Inn)에서 하루 묵고 다음 날 아침 약 30분 정도 더 북행하면 산 시메온 비치(San Simeon Beach)에서 허스트성의 입구를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허스트 버스에 실려서 구내에 올라갈 수 있다.
랜돌프 허스트는 예술에 조예가 깊고 애호가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예술 발전에 공이 컸다. 특히 영화에 대한 사랑은 신앙에 가까웠다.
뉴욕 출신 연극배우 마리온 데이비스와 사랑에 빠져 영화 제작에 거액을 투자했다. 영화 제작으로 큰 재미를 못 보았으면서도 열심히 투자, 오늘날과 같은 미국 영화의 발전상을 가져오게 했다.
캐나다를 가도 호주나 뉴질랜드를 가도 영어권에서는 미국 영화가 아니면 별로 볼만한 구경꺼리가 없다. 텔레비전도 재미있는 프로가 드물다. 호주 사람들이 이로 인해 미국 영화를 보게됨에 따라 독특한 호주식 영어 발음이 미국화 하고 있다. 문화의 영향이 대단함을 실감하는 사례다.
한국의 대표적 재벌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1996년도에 쓴 수필집을 보면 ‘디지토피아(Digitopia)’라는 것이 있다. 디지털 유토피아(Digital Utopia)란 두 단어를 하나로 합성한 단어다.
그는 여기에서 “디지탈 기술은 사회에 혁명을 가져올 것이다. 일상생활은 물론 사고방식까지도 변화를 요구한다. 여기에 적응 못하면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살아남지 못한다”라고 갈파했다.
랜돌프 허스트가 거액을 들여 만든 작품이 밑거름이 된 미국 영화가 전 세계에 상영돼 엄청난 돈을 벌어오고 있다. 벌써 몇 10년이 지나갔지만 다행인 것은 이 선각자(랜돌프 허스트) 작업을 이해하고 깨우친 삼성 이 회장에게 찬사를 보낸다. 모름지기 대기업의 회장은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이 있어야 하는데 이 회장의 수필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자연자원이 부족한 한국에는 훌륭한 두뇌가 많다. 이를 개발하면 자연자원이 많은 것 이상으로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이제는 국가간의 싸움은 두뇌로 겨루어야 한다.
어쨌든 허스트 가문은 20년 전 손녀딸 패티 허스트(Patty Hearst)로 인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시선을 모았다. 찰스 맨슨이라는 이상야릇한 악한(자칭 사탄의 제자)이 패티 허스트를 납치, 최면을 걸어 은행강도짓을 하게 했다.
기관단총을 들고 은행을 털던 패티의 모습은 감시 카메라에 잡히는 바람에 전국 텔레비전에 소개돼 한동안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다. 나중에 그 아가씨는 무죄 석방되었으며 그 후 자기의 보디가드와 결혼,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나는 캘리포니아로 여행가는 것을 무척 즐긴다. 매년 1월2일 비행기로 LA에 가서 차를 빌려 샌디에고로, 샌프란시스코로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길(California Route 1)이 태평양 연안의 길이므로 경치가 절경이고 그 주위에 구경거리가 많다.
허스트 성(城)을 건축하는데는 또 하나의 여자의 힘이 작용을 했다. 허스트 성 건축을 줄리아 모간(Julia Morgan)이라는 여자가 한 것이다. 미국 최초로 등장한 여자 건축가였다.
그는 불란서 솔본느대학에서 공부한 재원이다. 랜돌프가 모든 상속을 받고난 후 만나서 허스트 성을 건축할 의논을 시작했다. 허스트 성의 건축양식은 주로 중세기 풍이다.
여러가지 구하기 힘든 예술품도 수집, 전시해 놓았다. 특히 벽에 걸려있는 수많은 태피스트리(Tapestry, 수놓은 벽걸이 카펫)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일품들이다. 진열된 미술품과 천정이나 벽의 장식에서 가구까지가 모두 왕보다 더 돈을 잘 썼던 허스트의 미술품에 대한 기호를 짐작할 수 있다.
1930년 당시 즉 무성영화 시대부터 시작해 한동안 영화에서 주연을 하려면 마리온 데이비스(Marion Davis, 윌리암 랜돌프 허스트의 애인)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말들이 나돌았다. 뉴욕에서 간 기자가 “당신은 허스트의 정실 부인이 되시렵니까? 아니면 그냥 애인으로 남으시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저는 요, 평생 그의 애인으로 있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 대답처럼 끝까지 허스트의 만년 애인으로 남았다.
랜돌프 허스트는 이 성을 짓고 여기서 영화 제작 기획을 하였다. 자주 파티도 열어 당시 상류사회의 가장 대표적인 사교장이 되었다. 그는 이렇게 어마어마한 성을 지어 주 정부에 헌납, 모든 사람이 와서 구경하도록 했다.
한국의 재벌들도 그들의 집을 일반에게 개방하면 그들의 예술에 대한 기호나 이해도를 알아볼 수 있으련만......
그 때가 언제 올런지, 기대해 보지만 실현 가능성은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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