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뉴스시간에 토네이도 주의보가 계속 방영되더니 지금 창 밖으로 무시무시한 비바람이 지나가는 모양이다. 가로수 나뭇잎들이 따다닥 따다닥 유리창을 깰 것 같은 기세로 두드리는 소리가 마치 아프리카 정글 속 토인들이 극한 다급함에 길길이 뛰며 두들겨대는 북소리 같이 무력하고 쓸쓸해진다.
야생의 호랑이 피가 아직도 그대로 흐르는지 늘 밖에서만 살겠다고 보채는 나의 고양이 올리버가 놀란 몸짓으로 창 밖에서 문 열어주길 기다린다. 흠씬 비에 젖어 물에 빠진 생쥐 같아 항상 늠름하던 모습이 간 데 없다. 수건 드라이를 해주니 몸을 부르르 떤다.
오늘따라 유난히 붉던 저녁 노을이 아이의 침 속에 놀아 들어가는 빨간 젖은 솜사탕같이 빨리 흘러가던 것이 무척이나 아름답던 귀가 길의 석양이 생각난다. 며칠 전 40줄을 넘어가는 여동생 성학이 오랜만에 전화를 하더니 뚱딴지 같이 “언니 사는 게 뭐지?” 투정스런 목소리로 다그쳐 묻던 것이 갑자기 걱정이 된다.
우린 가파른 벼랑에 선 나무 같은 모습으로 늘 바람이 지나가는 골목에서 부대끼며 살더라도 그래도 내가 삶을 누리며 아직까지 버텨왔다는 조그만 자존심을 지키려 동병상련을 앓는 같은 처지의 형제들이다. 또 무슨 바람이 그녀 집 위를 지나가고 있담. 10년 전 사우스 캐롤라이나 그녀의 집 지하실 기둥뿌리까지 흔들어 박살낸 토네이도 바람은 아니길 바라며 건성으로 대꾸하던 걸 후회하게 된다. 언제 전화를 다시 해야겠다.
“사는 게 무어람?” 내가 40줄을 지날 때에도 뼈 속까지 스며드는 공허감을 달래기 위해 지금 생각하면 자신의 뼈를 깎아내며 주어진 삶에 저항하는 수고를 했었다. 정서적으로 지적으로 깊은 골이 패인 극한의 허무의 토네이도 바람에 부대끼며 그 결과로 살아있음을 확인한 긴 40줄을 지내 갔었다. 그 고통의 앙금이 아직도 나의 영혼 깊숙이 주름진 벼랑을 만들고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의 벼랑 위에 뿌리 채 튕겨 나와 바위를 움켜 쥔 채로 벌거벗고 선 나목이 되어 50줄을 지난다.
그래서 붉게 물 드는 하이웨이 건너편 산마루의 저녁노을이 황홀하리 만치 감미롭다. 차를 길가에 세우고 어둑어둑 땅거미가 낄 때까지 바라본다. 어둑한 건너 편 인가에 하나 둘 불이 켜지고 까닥까닥 대는 자동차의 유행가 소리가 뿜어대는 삶의 향내가 문득 나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누구를 위해서. 무슨 목적으로 나의 발걸음이 빨라지는지 방금 산등성이 위로 떠오른 달에게 자문을 구해본다.
40줄에 산천초목도 부르르 떨게 만들고 지나간 세찬 골바람이 잦은 뒤로는 급히 서둘 일이 없는데 말이다. 토네이도만 아니라면 벼랑에서 경영하는 삶을 배운 노출된 뿌리가 지나가는 바람 속에 삶의 경이를 빨아들이는 여유를 배웠다.
어릴 적 두꺼비 같은, 터진 손을 가만히 떨리는 어머니 등허리에 얹으시고 소곤소곤 되뇌시던 “얘야, 사는 게 그냥 그런 거란다” 말씀하시던 할머니의 얼굴이 산등성이 위로 떠오른다. 동생 성학이에게 할머니의 삶 “사는 게 그냥 그런 거란다” 얘기해 줄까.
지난번 정년 퇴직한 분들이 많이 참석하신 여고동창회에서 오가던 얘기를 해주어야겠다. “이제 인생 반은 모르고 살았으니 마무리하는 반은 우리가 내면에서 진정하고 싶던 그 어떤 것을 찾아 떠납시다”
흥망성쇠의 원리를 반복하던 40줄 다음에 요즈음은 90까지도 너그러이 수명을 허락하시는 현대의 신에게 감사하게 될 거라고 말해줄까. 토네이도 바람처럼 다그치며 “나를 위해? 누구를 위해?” 묻곤 하던 그 질문을 바람에 띄우라고 말해줄까. 오는 7월에 “달아!”란 제목으로 뉴저지 화랑에서 전시회를 하려한다. 전시회를 위해 밤낮으로 빗고 있는 흙덩어리가 사람의 형태로 되어가면서 사는 게 그냥 그런 거라던 할머니의 모습으로 형상화돼 가는 것은 무슨 상정일까.
나의 깊숙한 곳에 반항의 뼈를 품고 살지만 먼 훗날 나의 작품이 그 답을 말해주길 바라면 그냥 조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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