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리 없는 소리’를 찾아서
▶ 백춘기 <골동품 전문가>
▲역사의 타임 캡슐
60년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지을 때의 일이다. 기초공사 과정에서 시민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한 현장 생중계 텔레비전 방송을 기억하는 동포들이 있을 것이다.
“시민 여러분! 이것은 부패되지 않고 내부는 진공 상태인 특수한 플라스틱 상자입니다. 지금 이 상자를 여기에 건축될 국회의사당 지하에 묻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 상자 속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마이크로 필름으로 처리한 테입과 신문, 잡지, 소주병, 맥주병, 심지어 구공탄(연탄)에 이르기까지 이 시대를 상징하고 대변해 줄 온갖 물건이 들어 있습니다. 자! 지금 상자가 아니 타임캡슐이 밧줄을 타고 땅 속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역사의 유물이 담긴 여의도 타임캡슐은 100년, 500년 후 우리의 후손들에 의해 발굴되었을 때 살아 숨쉬는 선조들의 역사에 감동할 것이요, 골동품으로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골동품은 바로 타임캡슐인 것이다.
때문에 골동품을 수집한다는 것은 역사의 타임캡슐을 수집하는 것과 같다. 한때 쌀과 똑같은 비중으로 생존의 한 축을 당당하였던 구공탄이 골동품으로 대접받을 그 날을 기대해 본다.
▲골동품과 고민예품(古民藝品)
유럽 앤틱시장에서 거래되는 물건들을 동양인이 그대로 골동품으로 받아 들이기에는 많은 거부감을 불러 일으킨다. 백년이 넘었다는 녹슨 못이 앤틱 프리마켓(Antique Free Market)에서 바보스럽게도 높은 값으로 거래된다. 수집하기 위해서도 사겠지만 대다수는 당장 집에 가져가서 쓰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고풍스럽게 집안을 꾸미는 것을 몹시 좋아하고 자랑스러워 한다. 이렇게 앤틱으로 장식되는 실내는 역시 앤틱 못을 사용하여야 한다는 것이 유럽인의 생활상식이다. 그래서 시멘트로 철갑을 한 광화문을 보고 이럴 수가 있느냐 하고 놀란다.
PC로 대변되는 현대 자본주의 문화의 세계화가 앤틱(Antique)의 세계화를 동반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있다. 그러나 이것은 웃기는 일이 아니다. 아무리 인간이 현대화 되어간다 하더라도 인간의 고향은 자연이다. 그리고 그 참모습은 자연 속의 동물이다. 자연, 고향으로 이어지는 최소한의 탯줄이나마 유지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정보통신망이라는 거미줄 망에 걸려 버둥대는 호랑나비!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다. 호랑나비는 지금 거미줄에서 탈출하려고 디스코 춤을 추듯이 발버둥을 치고 있다.
일본이 명치유신 이후 서양 문명을 기를 쓰고 받아들이는 와중에 유럽의 앤틱 문화가 일본에 스며들면서 고민예 운동도 활발히 펼쳐 나갔다. 바로 유럽의 앤틱 개념(풍조)을 고민예품으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골동품과의 구별이라기 보다는 골동품과의 차별에서 오는 고민예품은 연륜, 희귀성, 예술성은 거의 무시당한 채 옛 선조들이 쓰던 일상 생활용품, 장식품 등을 포괄적으로 고민예품이라 한다.
오래 전부터 한국에서도 고민예품으로 주종을 이루는 서울 장안평 골동시장 등 활발한 유통시장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골동 구매
맨하탄에서 골동품 복원에 종사하고 있는 나와 깊은 우정을 나누던 일본인이 있었다. 도쿄 고등학교에서 미술 교사를 하던 사람이다. 여름방학 때 뉴욕에 왔다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마치 예술인의 장군과도 같은 소호(Soho)에 매혹되어 고등학교 사직서를 등기로 우송하고 그대로 소호에 주저앉은 화가다. 이름은 ‘히로다’, 나이는 나와 비슷하다.
미스터 히로다는 그림 복원 기술을 터득하여 소호 스튜디오를 개설하여 돈도 벌면서 자신의 인생을 원 없이 즐기고 있다. 오직 그림만을 복원할 뿐, 도자기 등을 의뢰해 오는 고객은 나에게 보낸다. 그렇다 해서 나에게 오는 그림 복원을 원하는 고객을 미스터 히로다에게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히로다는 오직 그림만을 복원하는 재주밖에 없으나 나는 폭 넓은 골동 복원 기술이 있고 고객 또한 그렇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화(古畵) 고서(古書)도 골동품에 속하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원래는 골동품 속에 고서, 고화를 포함시켜 골동서화(骨董書畵)라 하였다. 그런데 상석이냐 하석이냐 하며 자리 다툼에 예민한 서화가들이 골동 밑에 서화란 말도 안된다고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지금은 고전적 예술행위 또는 예술품을 일괄적으로 고미술가, 고미술품으로 통칭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고미술은 현대미술의 반대편에 있는 상대개념이다.
어느 날 나와 히로다는 골동주간지 ‘Antiques Weekly’에 나 있는 골동 경매장을 찾아갔다. 경매 품목 가운데 조선 농과 일본 단스(일본 농)가 들어있어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장소는 허드슨 강변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미국 천지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 하더라도 골동 상점이 없는 곳이 없고 거기에서는 주말 또 정해진 날에 Antiques Auction(골동품 경매)이 벌어진다.
경매는 1달러에서부터 시작하여 몇 달러, 몇 십 달러, 크게는 몇 백 달러까지도 상승한다. 그렇다 해서 몇 천만 달러가 거래되는 크리스티나 소더비 같은 경매 열기에 절대로 뒤지지 않는다.
언젠가 LA 시골 경매장에서 마릴린 몬로의 팬티가 경매에 부쳐진 일이 있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유명 여인 펜츠 수집광들 그리고 늑대들로 5일장을 방불케 한 벽촌 마을은 축제 분위기였다. 산 몬로를 능가하는 죽은 몬로의 팬티의 위력을 유감 없이 발휘한 팬티 옥션!! 불꽃 튀기는 팬티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마을 경매 사상 최고 낙찰가격은 200달러를 넘어본 일이 없다. 1만달러, 2만달러, 3만달러, 4만달러, 5만달러에 낙찰 받은 늑대 중의 늑대는 감격한 나머지 몬로 팬티에 얼굴을 파묻고 펑펑 울었다는 뒷소식이다.
이것을 보고 “앤틱 부가가치”라 한다. 마릴린 몬로가 생전에 누렸던 유명세, 그 유명세에 감싸인 실크 팬티, 기껏해야 기십달러 아니면 기백달러를 능가하지 못할 현기증 나는 삼각 팬티이다.
골동품의 시장가치를 좌우하는 오랜 연륜과 소수라는 희소가치, 이것은 골동품에 대한 보편적인 평가 기준이다. 그러나 이런 교과서적 가치 기준을 송두리채 무시하고 골동 가치를 하늘로 끌어올리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누가! 어떤 사람이, 그 물건을 애용하고 소지하였느냐는 것이다.
부가가치는 소장자(사용자)의 유명세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건 당시의 물건, 예를 들면 베를린 장벽 벽돌, 9.11 테러 유물, 미국 독립선언서 등 허다하다. 이것들은 모두 골동품이라는 범주 내에서 평가되고 거래된다. (조선 농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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