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회가 온통 월드컵 열기에 휩싸였다.
10일 한국과 미국전 경기가 펼쳐지는 시간이 새벽임에도 만사를 제쳐놓고 한인들은 빨간 모자와 티셔츠를 입고 서울플라자 등 주요 중계 장소를 찾았다. 얼굴에 보디 페인팅을 한 젊은이부터 빨간 모자를 쓴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가 없었다.
응원의 열기도 뜨거웠다.
뉴욕 일원 곳곳에 마련된 대형 TV 앞에는 많은 동포들이 모여 미국과의 경기를 펼친 한국 선수들의 선전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한국 대표팀의 16강 진출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서울플라자 크리스탈 볼룸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앞에 모여든 1,500여명의 응원단들은 경기 시작 한 두시간 전부터 몰려들어 북과 꽹과리를 치며 한국팀의 선전을 염원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한국팀이 공격을 할 때마다 ‘대∼한민국’ 구호에 맞춘 특유의 다섯 박자의 박수 물결이 이어졌으며 한국팀 파이팅, 16강 파이팅 등의 구호가 터져 나오기도.
▣…시종 경기를 압도하면서도 후반 33분까지 1대0으로 미국팀에 밀리고 있던 차에 안정환 선수가 동점골을 터뜨리자 응원단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일제히 일어나 서로 얼싸안고 춤을 추는 등 침통해 있던 크리스탈 볼룸이 순식간에 흥분의 도가니로 바뀌었다.
얼굴에 태극 문양의 보디페인팅을 하고 응원에 동참한 이정수(19·대학생)씨는 "안정환 선수의 동점골이 터지는 순간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며 "미국에 태어나 살고 있지만 대한민국 동포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날 1대1일 무승부로 경기가 종료되자 일부에서는 결정적인 찬스에서 실수를 범한 이을용 선수와 최용수 선수의 실축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터뜨렸지만 대부분의 한인들은 "FIFA 랭킹 13위인 미국을 맞아 잘 싸웠다"며 한국팀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등 성숙한 응원 의식을 보이기도.
▣…뉴욕총영사관 조원일 총영사는 경기 후 엉뚱한 ‘반미 경계론’을 펼쳐 빈축을 사기도. 조 총영사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과의 경기만 아니면 5대0으로 이기길 바랬을텐데"라며 마치 ‘이기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식으로 말해 의아함을 자아냈다.
또 반미 의식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며 훈계(?)해 스포츠 경기를 놓고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는 평을 듣기도.
▣…경기후 한인사회는 월드컵 이야기로 업무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후문. 새벽부터 경기를 지켜본 대부분의 한인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출근했으며 일손이 잡히지 않는 듯 무승부 경기를 아쉬워하기도.
뉴저지주 릿지필드팍에 거주하는 윤모씨는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놓쳐 너무 아쉽지만 앞으로 포르투갈전에서 이겨 16강에 올라갈 것"이라며 강한 기대를 나타내기도.
▣…TV 중계가 시작되기 2시간 전인 새벽 12시께 서울플라자 주차장에 진입하려는 응원인파의 차들이 꼼짝 못하는 교통 혼잡을 빚어 한껏 달아오른 한인사회의 월드컵 열기를 입증하기도. 경기가 종료된 후에도 한꺼번에 서울플라자를 빠져나가는 한인들로 노던 블러바드 157가 일대는 10∼20분간 정체 현상을 보였다.
▣…경기가 끝난 후 젊은이들은 길거리에서 ‘대∼한민국’을 연호하는가 하면 차량을 이용, ‘빵 빵 빵 빵 빵’ 다섯 박자 경적을 울리며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날 뉴욕시 경찰국에는 서울플라자 주변에 순찰차 6대를 파견, 혹시 경기가 끝난 후 일어날 지 모를 사고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동점골을 터뜨린 안정환 선수가 골세레모니에서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강탈(?)한 안톤 오노의 스케이팅 모습을 풍자하자 이를 지켜본 한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통쾌하다’는 반응.
그러나 경기를 중계방송한 ESPN방송 스튜디오의 레이 허드슨 해설가는 안정환의 골 세레모니가 비신사적이라며 비난하기도. 그는 또 한국팀의 문전처리가 ‘형편없다(Crappy)’가 말해 중계방송을 지켜본 한인들의 분노를 샀다.
<김주찬·김노열 기자>
■시민권자라고 미국팀 응원 "말도 안돼"
동점골 터질땐 모두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
"아이구 용수야!..."
10일 새벽을 뜬눈으로 지새며 월드컵 D조 한국과 미국의 경기를 지켜본 뉴욕·뉴저지 일원 한인들은 경기 종료 직전인 새벽 4시30분께 아쉬운 탄성을 질렀다.
새벽 2시30분부터 생중계된 이날 경기를 보기 위해 초저녁부터 잠자리에 든 뒤 2시께 눈을 비비면서 일어난 30만 뉴욕 한인들은 2시간동안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박진감속에 열띤 응원을 펼쳤다.
이날 경기를 지켜본 한인들은 1세, 1.5세, 2세에 관계없이 거의 대부분 한국팀의 승리를 응원했다. 미 시민권자인 강유진(30)씨는 "전세계 한국인들이 하나가 돼 한국팀의 16강 진출을 염원하고 있는데 어떻게 미국을 응원할 수 있느냐"며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말했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경기를 생중계한 플러싱 서울 플라자에는 이날 붉은 옷을 입고 얼굴에 태극기를 새긴 1,500여명의 한인들이 대구 월드컵 경기장 못지 않은 열광적인 응원을 펼쳤다.
미국이 선취골을 넣는 순간과 한국의 이을용 선수가 페널티킥을 실축하자 서울 플라자를 비롯, 뉴욕과 뉴저지 전역의 한인 가정에서는 일제히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새벽 4시15분께 안정환의 헤딩슛이 골문을 가르자 ‘골인!’이라는 환호와 박수소리가 동트는 뉴욕 하늘에 울려 퍼졌다.
월요일 출근 걱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인들은 천금의 역전골을 기대했으나 경기 종료 직전 얻은 결정적인 기회를 최용수가 골로 연결시키지 못하자 아쉬운 한숨으로 새벽을 마감했다.
이날 경기 시간에 맞춰 알람시계를 새벽 2시25분으로 조정해놓고 일어나 집에서 경기를 지켜본 뉴저지 이스트 윈저 거주 김종석(43)씨는 "머나먼 타국에서 조국애를 새삼 느끼는 것 같아 감개무량했다"며 "비록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비겨 아쉬움이 남지만 이번 월드컵을 통해 속 안에 뭉쳐있던 이민생활의 응어리가 조금은 녹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 "일하랴 축구보랴... 너무 피곤해요"
한인들 시차피로 호소
초저녁 수면보층등 그때그때 풀어줘야
뉴욕 한인 축구팬들이 월드컵 시청으로 인해 ‘시차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 경기 뿐 아니라 모든 경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한인 축구팬들은 밤에는 텔레비젼 시청, 낮에는 일에 시달리며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의사들에 따르면 피로를 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수면이다. 따라서 월드컵을 시청하는 팬들은 초저녁에 일찍 잠을 청하거나 낮에 15∼20분간 잠깐 눈을 붙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윤기윤 내과의는 "낮잠은 20분만 자더라도 충분한 에너지 충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전했다. 규칙적인 식사도 피로를 푸는데 도움이 된다. 음식은 소금, 설탕, 미원을 피하고 야채, 전분, 단백질 등을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차 종류로는 국화차나 대추차 등이 피로를 푸는데 좋다. 물론 알콜은 금물이다.
피곤하다고 움츠리지 말고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것도 피로를 푸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장시간 의자에 앉아 일할 경우, 발 하나를 들고 앉았다 일어나기를 20회 정도 교대로 해주는 것도 좋다.
<정지원 기자>
■한인 2세들 한마음 열광 응원
"응원복 맞춰입고 얼굴엔 페인팅하고"
10일 맨하탄 32가 코리아타운에 위치한 카페 블루에는 경기 시작 2시간 전인 자정부터 빨간색 옷을 맞춰 입은 10~20대 한인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카페 한쪽에는 응원복을 맞춰 입고 얼굴에 태극무늬를 그린 열성팬들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장구와 북, 꽹과리를 동원해 응원준비에 한창이었다. 태극기를 온몸에 휘감은 모습도 눈에 띄었다.
결전의 순간이 가까워지자 블루 카페에 모인 뉴욕의 ‘붉은 악마’200여명은 대한민국 구호를 동시에 외치며 응원 연습을 시작했고 ‘아리랑 목동’을 북장단에 맞춰 부르기도 했다.구석구석마다 외국인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응원 맞대결을 벌이기 위해 한인타운을 찾아온 미국인들부터 한국을 응원하기 위해 태극문양이 새겨진 빨간 티셔츠를 입고 한인 친구들과 동행한 미국인 등 다양했다. 이들은 어설픈 한국말로 ‘대~한민국’을 같이 연호하면서 자연스럽게 동화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경기가 시작됐다. 승전을 향한 북소리가 카페 안에 울려 퍼지면서 응원열기는 점차 고조됐다. 한국 선수들이 골 찬스를 놓칠 때면 안타까움의 목소리가, 위기를 넘겼을 때는 찬사가 이어졌다.
미국이 선취골을 넣었을 때 잠시 허탈감에 빠졌던 한인 젊은이들은 다시 이를 악물고 북소리에 맞춰 대한민국 함성을 목이 터져라 외치기 시작했다.
새벽 4시께 안정환이 동점골을 넣자 실내는 온통 감동과 환희의 도가니로 변했다. 좁은 카페 안에서 펄쩍펄쩍 뛰는 젊은이들부터 서로 껴안고 울기 시작하는 여성들까지, 골이 들어가는 순간만큼은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
동이 트기 시작한 4시30분, 경기가 무승부로 종료되자 열광하던 한인 젊은이들은 아쉽지만 다가오는 다음 경기를 기약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김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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