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파원 코너
▶ 김인영(서울경제 뉴욕특파원)
아마 외국인 가운데 이처럼 한국사람들의 추앙과 존경을 받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앞을 다투어 히딩크 식 정치를 운운하고 경제인들도 히딩크 식 경영을 읊어대고 있다. 마치 하늘에서 영웅이 떨어져 한국 축구를 살려낸 양 야단법석이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16강 진출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응원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는 가운데 단연 영웅은 한국 국가대표팀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 감독이다.
혹자는 히딩크 감독의 비결을 카리스마로 꼽고 있다. 자신의 기준에 맞는 선수만 출전시키고 아무리 유명하더라도 기준에 어긋나면 엔트리에서 제외하는 강력한 지도력이 한국 대표팀의 실력 향상과 승리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지극히 한국적이고 또 맞지 않는 견해다. 앞서 어느 대표팀 감독도 히딩크 만큼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고 선수 선발의 권한을 부여받고 있었다. 히딩크의 카리스마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아마 권위와 가부장적 질서를 앞세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히딩크 감독의 비결은 팀 운영방식에 있다. 그는 스스로 영웅임을 거부하고, 또한 선수들의 영웅의식을 부정하고 있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나는 영웅이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가 스스로 영웅주의를 거부하는 바로 그 점이 실적 부진의 늪에 허우적거리던 한국 축구에 묘약이 된 것이 아닐까. 히딩크 감독은 스타들의 영웅의식을 거부하고 선수들 사이에 경쟁원리를 도입함으로써 지연과 학연에 얽매인 대표팀의 고질적 병폐를 차단했다.
그는 주전 엔트리 11명의 명단을 확실하게 내지 않고 20여명의 엔트리 멤버 전원을 출전시키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눈앞의 성적을 위해 스타급 선수에게만 기회를 부여하지 않고 선수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 경쟁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감독이 한국축구팀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경제에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앞서 순수 국내 파가 감독을 맡기도 하고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선수로 뛴 차범근씨가 맡기도 했다.
그렇지만 한국 축구팀은 투자에 비해 실적을 내지 못했고 고질적인 파벌싸움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한국 풍토를 무시할 수 있는 외국인 감독에게 맡겼더니 실력이 살아났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한국 경제는 60년대 경제개발이 시작된 후 ‘하면 된다’는 투지로 고도성장을 이룩해왔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한국 기업들은 투자에 비해 수익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국식 경영으로는 더 이상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적 한계점에서 한국 경제는 IMF 위기를 맞았다.
그 후 타개책은 외국 자본 도입과 선진국 경영기술의 이식이었다. 미국인이 제일은행장을 맡고, 삼성자동차는 프랑스에 팔린 것은 히딩크 감독 영입에 앞서 한국 기업에 나타난 현상이다. 결론적으로 외국에서 자본과 경영인이 도입된 회사는 부실에서 헤어 나와 살아나기 시작했다.
히딩크 감독의 성공 스토리는 어쩌면 한국 경제의 위기극복 비결을 설명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한국 축구팀에 외국인 경영자가 들어온 것만큼이나 주목을 끄는 사람은 차범근 전 감독의 아들인 차두리 선수다. 그는 지난번 폴란드와의 경기 마지막에 잠깐 얼굴을 드러냈다.
차두리 선수는 6개월 전에 대표팀에 합류할 때 나이 제한에 걸려 있었으나 히딩크 감독의 눈에 들어 특별 배려를 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축구를 잘했고, 대표팀에서도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한국 재벌 기업도 이제 대부분 2세 경영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재벌 2세들은 아버지가 물려준 지분을 행사하며, 최고 경영자가 되고 있다. 그러나 차두리 선수는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지만, 당당하게 실력으로 대표팀에 선발됐다. 축구와 기업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지만 한국 기업이 외국경영 기술을 도입하는데는 성공했으나 2세를 경영인에 올리는데는 실패하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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