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리 없는 소리’를 찾아서 (7)
▶ 백춘기 <골동품 전문가>
나의 스튜디오에서는 가끔 진풍경이 벌어진다. 원시종교에서부터 현대 고등종교, 그리고 각양각색의 샤마니즘에 이르기까지 각 종교 종파를 상징하는 심벌이 작업대 위에 모여 나의 진단과 치료를 기다린다. 그래서 미국 골동사회에서 나에게 붙인 별명이 앤틱 닥터이다.
박물관, 갤러리, 또는 개인 소장가들이 복원을 하기 위해 나의 스튜디오에 가져온 불교의 석가모니 부처상, 그리스도교의 예수십자가상을 비롯하여 아랍의 이슬람, 인도의 힌두, 그리고 마야, 잉카의 토속신에다 남근신, 자궁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조각한 심벌을 대할 때마다 나는 나의 직업에 대한 자부와 고마움을 실감한다.
골동품 복원이라는 직업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다양한 신과 심벌을 조각한 예술품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로부터 흘러나오는 소리없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거기에는 질투도 시기도 증오도 헐뜯는 일도 없이 미소짓는 침묵의 소리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심벌의 근원은 조용한데 거기에서 뻗어나온 뿌리들은 이렇게도 소란한지 야속하기만 하다.
나는 가톨릭 신자인데도 이들 신을 상징하는 조각품을 편애하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서 이들은 다같이 인류문화유산으로서 훌륭한 예술작품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변
천둥 번개가 치면서 장대같은 비가 쏟아졌던 그 날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박물관에 갔다 스튜디오에 돌아왔을 때 앤서링머신이 깜박이고 있었다. 머신이 작동하면서 전하는 메시지는 자신을 목사라고 지칭하면서 5시에 스튜디오에 오겠다는 내용이다.
한국사람 고객이 골동 복원일로 나의 스튜디오를 찾는 일은 일년에 한 둘에 지나지 않는다. 그 한 두 명 가운데 한 사람이 찾아오겠다는 메시지는 나에게 어떤 생소한 기대감 마저 안겨 주었다.
5시5분, 노크소리와 함께 중년의 동포, 그러니까 한국 목사님이 백을 들고 스튜디오에 나타났다. 비 사이로 뛰어왔는지 별로 옷이 젖은 기색이 없다. 마음의 부담이 덜해서 좋다. 만일 비라도 흠뻑 젖은 몸으로 스튜디오에 왔더라면 나는 몹시 마음의 부담을 가졌을 것이다. 더욱이 귀하신 목사님이 아닌가.
따끈한 커피 두 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곰방대로 향하는 손을 슬그머니 거두면서 목사를 바라보았다. 백에서 꺼낸 상자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잠시 기도 자세를 취하는 목사의 몸가짐 속에서 바야흐로 상자에서 꺼내려는 어떤 물건에 대한 간절한 호소같은 것이 연연하다.
상자를 열고 조심스럽게 꺼내놓는 것은 십자가상이었다. 한눈에도 알 수 있는 러시아산 라피스돌로 만든 십자가상이다. 세 동강이 난 십자상은 라피스 특유의 청록색을 발하고 있다. 그러나 최상질의 러시아산 라피스돌로 조각해 만든 십자상이라는 것만이 아닌 또 다른 특징이 있을 것 같아 확대경을 집어들었다.
역시 나의 추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십자가 전신에는 깨알같은 한문 글씨가 새겨져 있다. 나는 작은 충격속에서 어떤 사건을 연상하며 확대경을 옮겨갔다.
수년 전의 일이다. 일본인이 가져온 불상 몸통 속에서 예수 십자가상을 발견한 일이 있었다. 나는 그 때 얼마나 전율했던가!
그 때와 똑같은 전율 속에서 혹시 이 글이 한문으로 쓴 불경이라면 십자가에 쓴 불경, 그러나 이러한 나의 기우는 목사의 입을 통해서 해소되었다.
“이 글은 성경입니다. 한문으로 쓴 마태복음입니다”
나는 십자가 복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십자가상을 목사 뒷편에 있는 진열대 위에 올려놓았다. 불상을 비롯해 유방 곡선이 넘쳐흐르는 인도의 힌두여신상이 있는 바로 옆 공간에 십자상을 놓았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나의 다짐에 만족한 목사가 의자에서 일어나 뒤쪽에 있는 진열대를 둘러본다. 목사의 얼굴이 어떤 분노로 상기해 가더니 냅다 외마디 괴성을 지른다. 마치 어떤 위기에 처했을 때 절규하는 그런 소리를 토하면서 라피스 십자가상을 번쩍 들어올려 품에 안는다.
“아니, 이럴 수가. 악마같은 우상 옆에 십자가를 놓다니”
한 손에 십자가를 안고 한 손으로 작업대 위에서 망치를 집어든 목사는 당장이라도 힌두여신상을 박살낼 기세이다. 나는 목사 앞에 가로막고 섰다.
“목사님, 진정하십시요. 목사님의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 망치 놓으시고 제 말을 들어보십시요.”
나는 망치를 받아 작업대 위에 놓고 대신 곰방대를 집었다. 서로 감당하기 힘든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품에 안고있던 십자가를 탁자 위에 내려놓고 조용히 소파에 앉은 목사는 긴 한숨을 짓는다.
“목사님, 저도 그리스도교 신자입니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찾아오신 이 곳은 골동품을 복원하는 스튜디오입니다. 여기에 들어오는 모든 물건은 골동품 이상의 어떤 자격도 부여하지 않습니다.
저 불상도 저 힌두여신상도, 그리고 이 라피스 십자가도 일단 복원을 위해 나의 스튜디오에 들어온 이상 그 물건이 상징하는 어떤 종교성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고미술품으로 동등하게 취급됩니다. 이 점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저 힌두여신상 옆에 목사님의 십자가상이 놓여지기를 용납하지 않으신다면 저는 이 십자가의 복원을 거부하겠습니다.”
어떤 아쉬운 감정을 억제하면서 목사는 돌아가고 라피스 십자가를 힌두여신상 옆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나는 곰방대에 불을 붙이고 힘껏 빨아들였다. 몹시 속이 편치 않다.
연기를 멀리 멀리 뿜어댔다. 허공으로
사라지는 담배연기 속에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학순 주교와 김재준 목사.
1970년대 초 나는 이 분들을 모시고 서울에서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한국지부를 결성하였다. 그 길로 종로경찰서에 연행되어 하루밤 자고 풀려나와 청진동 해장국집에서 속을 풀었다. 여기까지 온 김에 ‘태고사’ 구경이나 하자는 김재준 목사님의 제의에 따라 일행 다섯 사람은 절간을 돌아보았다.
대웅전 앞에서 지학순 주교와 김재준 목사님이 나란히 서서 한참을 구경하더니 두 분 똑같이 합장을 하고 가볍게 고개를 숙인다. 몹시 놀라고 의아해 하는 나를 쳐다보시면서 김재준 목사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절 구경 잘 했다고 부처님께 인사 드렸는데 왜 그런 눈으로 보는가?”
나는 이 때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크나큰 그릇 앞에 깊이 머리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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