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삶, 나의 행복
▶ 한인회관 관리위원장 배희남 씨
뉴욕한인회관은 40만 동포의 보금자리로 자리매김해있지만 현재 적자폭 월 5,000 달러에다, 각종 위반건수가 34건이나 돼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건물을 포기해야 할 입장이다.
이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배희남 회관관리위원장이 건물을 정상화시키는데 일조하겠다며 발벗고 나섰다. 그는 과연 이 건물을 회생시킬 수 있을까. 주변에서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살아온 배경, 맨 손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숨은 능력, 그리고 예리한 판단력과 아이디어, 계획하면 반드시 이루고 마는 추진력 등이 총동원될 경우 반드시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진퇴양난에 처해 있는 회관을 생각하면 제대로 잠을 못 이룬다는 그를 만나 그의 살아온 이야기와 뉴욕한인회관에 대한 앞으로의 계획과 의견을 들어본다.<편집자 주>
제27대 뉴욕한인회장 선거에 출마했던 최영태 후보 후원회장이 계기가 돼 한인회 이사, 감사, 회관관리직까지 맡게 된 배희남(59. 맨하탄 거주) 위원장은 적자가 누적돼 팔지 않으면 안될 위기에 놓인 한인회관을 어떻게든 정상화시켜 놓겠다고 다짐한다.
이것은 그가 지난 3개월간 회관의 내용을 자세히 파악해 얻어낸 결정이자 각오다. 배 위원장이 그동안 조사한 결과, 가장 놀라운 사실은 싯가에도 훨씬 못 미치는 장기 임대 업소 및 불법 테넌트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들만 내보내 흑자를 내는 건물로 만든다면 동포들의 자산(35만달러 다운페이먼트로 115만달러)으로 매입한 한인회관건물은 반드시 1,000만 달러 짜리 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회관을 살리자면 20만 달러를 들여 수리할 것은 수리하고 내보낼 세입자는 내보낸다면 가능하다고 한다. 월 렌트 수입 5만 달러 짜리로만 만든다면 순 수입만도 월 3만 달러 이상이 되는데 이 정도 돈이면 한인회가 앞으로 얼마든지 많은 일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배 위원장은 분석한다. 그동안 그는 전담 직원이 없어서 회관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를 자기 일처럼 해결하지 않으면 한인회관은 결국 포기해야 할 입장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한인들은 상황을 잘 모르고 59만 달러의 모기지만 갚아 버리면 될 것으로 생각하는데 더 중요한 것은 임대소득으로 제반비용을 충당하지 못할 경우 적자가 누적돼 동포들에게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배 위원장은 회관정상화를 위해서는 전문성을 가진 운영위원회 구성이 시급하다며 이를 위해 이사회를 중심으로 현재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주위에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 이 일은 얼마든지 현실화할 수 있다고 한다.
전 동포가 참여해 어려움을 감수하고 운영만 잘해 나간다면 반드시 한인회관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배 위원장은 82년 맨주먹으로 미국에 와 20년간 뉴욕에 살면서 자식농사와 사업에 성공했다. 그는 현재 사업체로 맨하탄에 빌딩 7개, 세탁업소 7개를 소유하고 있다.
두 자녀중 큰 딸 소진(29)씨는 코넬대를 나와 AP통신을 거쳐 포담 법대를 졸업했다. 같은 코넬대 출신의 변호사인 남편과 결혼해 함께 변호사 부부로 활약하고 있다.
아들 대경(27)씨 또한 코넬 대 출신으로 도이치 뱅크 스탁브로커에 이어 현재 조지타운에서 MBA과정을 밟고 있다. 그의 인생역정을 들어보면 반드시 한인회관을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는 그의 결심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 때 아버지를 따라 말죽거리로 이사갔다. 집안형편이 어려운 가운데 장학생으로 노량진에 있는 동양중학교에 들어갔다. 두시간 반씩 걸어 통학하는 바람에 시간을 너무 뺏겨 성적이 떨어져 장학생에서 탈락했다.
결국 학비를 대지 못해 1년만에 학교를 중단했다. 그리고는 집에서 가축을 키우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아이들이 입은 교복을 보고 눈에 불이 나 서울(말죽거리는 당시 경기도)로 무작정 상경했다.
신문배달 등을 하면서 고학으로 검정고시에 합격, 대학에 입학했다. 학비조달을 위해 가르쳐왔던 그의 과외그룹이 점점 소문이 나면서 몇 달 안에 그에게 배우려는 학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는 찾아오는 학생들을 소화하기 위해 장소를 넓은 곳으로 옮겨 아예 대학입시를 위주로 한 영어 전문학원을 차렸다. 이민오기 전까지 10년 동안이나 운영했다. 이어 연세대 신학과에 입학, 1학년 때 시흥동 하계 난민 봉사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이 때 만난 신문팔이, 구두닦이 청소년들에게 자활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2학년 때 휴학했다. 난민촌에 천막 고등공민학교를 세워 교육사업을 해나갔다. 당시 나이 21세로 그는 천막학교에서 7년간 교장선생으로 무료 봉사하면서 아이들에게 공부에 필요한 공책이나 연필, 교과서 등을 제공했다.
이 일을 하는 동안 동네 깡패들로부터 기습을 받거나 바람에 천막이 날라가는 사태도 겪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우연히 코리아 타임스의 이규현 편집국장이 들러 천막이 찢겨진 것을 보고 다음날 신문에 ‘Tent School’이란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뒤이어 국내일간지도 ‘천막교실 연우학원’을 보도하자 연대생들이 너도나도 교사를 자청해 우수교사가 넘쳐났다. 유한양행의 유일한 사장도 앞장서 도와 학생이 500명으로 불어 공민학교는 웬만한 시골학교보다 실력과 인기가 많은 학교가 되었다.
그에 관한 기사가 영문으로 나가면서 미국의 평화봉사단이 천막학교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때 즉흥적으로 한 그의 통역를 보고 이규현 국장은 "생전에 이런 명 통역은 처음 보았다"며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계기가 돼 그는 1968년 월남 이상재 선생을 기리는 ‘월남 청년상’ 1회 영(sprit) 부문상을 받았다. 연우고등공민학교 음악선생으로 봉사한 지금의 아내 안명수(53) 여사를 만나 결혼하는 행운도 얻었다. 이어 배 위원장은 81년도 교수가 되는 꿈을 안고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그가 커네티컷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의상학과 출신의 아내는 맨하탄에 양장점을 열어 학비를 대다 맨하탄 46가에 세탁소를 차렸다. 이 업소가 3년만에 50만 달러 규모로 크게 번창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대인 건물주인이 고물 차를 몰고 와 무조건 배 위원장을 태워 값비싼 지역에 있는 자신의 건물 수십 개를 보여주며 "너무 늙어 정리하려고 한다"면서 그가 세 들어 있는 빌딩매입을 권유하더라는 것.
당시 배 위원장의 형편은 일개 셋방살이 세탁업자가 36세대 아파트에 점포가 4개나 달린 대형빌딩을 산다는 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정신나간 소리 말라"고 거절하니 그 주인이 탄식하면서 ‘거저 주는 건데 왜 안 받느냐’고 했다는데 그 뜻을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건물을 산 유대인 청년은 그 후 100여 개의 빌딩을 소유하는 부동산 업계의 거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충격으로 배 위원장은 몇 년 후 부동산에 눈을 뜨면서 미국의 경제를 주름잡는 유대인들과 같이 맨주먹과 머리로 건물을 사기 시작했다. 건물에 대한 그의 지론은 렌트 내는 돈으로 모기지를 내고 다운페이는 세탁소를 담보로 융자를 받아 건물을 사되, 적자가 나지 않도록 운영을 잘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배 위원장은 그간 빌딩과 세탁소를 여러 개 갖다보니 이제는 매입이나 운영, 세탁소 운영에도 귀재가 되었다. 그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인들도 유대인들처럼 부동산을 많이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싶다고 말한다.
"돌아보면 나의 삶이 내 뜻대로 살아온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내 뜻대로가 아니고 운명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산 것 같다. 앞으로의 삶은 나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이다."
공부와는 전혀 관계없는 세탁소 및 건물주인으로 미국생활 20년이 내가 아닌 딴 사람으로 남의 옷을 입고 살았다는 배희남 위원장. 그는 "오늘이 있기까지 내조한 아내에게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남은 인생 선한 옷을 입고 좋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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