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리 없는 소리’를 찾아서 (8)
▶ 백춘기 <골동품 전문가>
남이 뭐라하든 나에겐 귀한
그 어떤 무건을 찾아
경매장엔 사람들이 붐비고...
주말이면 많은 플리마켓(노천시장, 벼룩시장)이 장을 연다. 플리마켓이야말로 전통 미국 시민이 가장 사랑하는 정서 공간이요, 휴식공간이다. 요즈음의 플리마켓은 본래의 모습과는 많이 변질되었으나 그래도 미국시민 생활 가운데 아름다운 유산으로 맥을 유지해가고 있다.
망한 공장에서 쏟아져 나온 값싼 물건이나 주말장사를 하기 위해 가게 재고품을 가지고 나와 파는 플리마켓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런 장터에서도 ‘앤틱’만을 고집하는 공간이 있기 마련이다. 플리마켓 전체가 현대품은 얼씬도 못하게 하고 ‘앤틱’만을 거래하는 플리마켓이 아직까지 그 주종을 이루고 있다.
■플리마켓 찾아헤매는 심정
미국 서부개척시대, 수십대의 포장마차가 강행군 끝에 며칠씩 쉬어 가는 야영지에는 반드시 시장이 열린다. 이것이 바로 오늘까지 이어진 플리마켓의 원조이다. 전통 미국 시민사회에서 플리마켓은 정서생활을 위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일요일 아침 전 가족이 교회에 간다. 목사는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이 땅에 온 선구자였던 조상의 굽히지 않았던 개척정신을 설교한다. 설교를 들으면서 광야를 달리는 포장마차, 통나무집, 인디언 등을 상상한다. 하나님의 은총을 가득히 안고 교회를 나서는 일가족은 조상의 유물을 통해 조상들의 체취를 만끽 할 수 있는 플리마켓으로 옮겨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요일 교회에서 플리마켓으로 이어지는 생활 습성은 지금도 주류 미국사
회에서 끈끈히 유지하는 불문율이다.
거기에 가면 할아버지, 할머니, 톰 아저씨가 쓰던, 결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소품 등을 보고 만져볼 수 있다. 그러다 가슴에 뭉클하게 와 닿는 물건이라도 있으면 사서 품에 안고 집에 돌아올 때의 벅찬 감동! 이것이 바로 앤틱 정서(골동정서)인 것이다. 이런 정서와 블루밍데일 백화점에서 샤넬 금딱지 크림통을 사가지고 나오는 정서와 행여 비교라도 할 수 있단 말인가!
플리마켓을 찾는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플리마켓에 투자가치가 있는 값비싼 또는 고급스러운 ‘앤틱’을 구하러 오지는 않는다. 자기가 그렇게 애지중지 아꼈던 존 아저씨의 곰방대, 그 곰방대를 하수구에 빠뜨려 잊어버렸을 때 느꼈던 무한한 허전함! 그와 똑같은 아니면 비슷한 곰방대를 찾아 플리마켓을 찾아 헤매는 심정이 바로 골동품이 가지는 주관적 가치이다.
남이 어떻게 평가한다는 객관적 가치나 얼마나 할거라는 시장가치는 송두리째 무시한 채 오직 내가 좋아서 찾아 헤매는 그 어떤 물건이 가지는 가치가 바로 골동품의 주관적 가치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골동품이 가지는 최고의 가치라고 단언한다.
어떤 사연으로 인한 동기에서 A라는 골동품을 간절하게 소유하고자 할 때 그 골동품은 바로 간절하게 갖고자 하는 그 사람에게 양보되어야 한다는 것 또한 나의 지론이다.
그 날 새벽, 예정한대로 ‘소호’에서 그림 복원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일본인 ‘히로다’와 나는 골동 경매장으로 차를 몰았다. 앤틱 주간지에서 조선 농과 일본 단스가 경매 품목에 들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 아직 현물은 보지 않고 있다. 보통 경매 3~4일 전부터 경매물에 대한 전시회가 있기 마련이다. 일찍 가서 ‘농’과 ‘단스’를 보기 위해 지금 새벽 허드슨강변을 달리고 있다.
웨스트포인트를 조금 지나 콜드스프링이라는 마을에 도착하였을 때 경매장은 벌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서둘러 ‘농’과 ‘단스’를 살펴보았다. 물론 나의 관심은 조선 농이지 일본 단스가 아니다. 19세기 후반의 2층 장롱 보관상태가 좋지 않아 몇 군데 장식이 떨어지고 농의 균형이 틀어져 있으나 충분히 복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아니다.
나는 장롱을 한바퀴 돌아보면서 조선 장롱을 감상한다. 내가 시골에서 자랄 때 우리 형제가 쓰던 방 윗목을 차지하고 있던 그때의 장롱과 흡사하다.
자고 일어나 까만색 이불을 아무렇게나 개어 올려놓았던 초등학교 6학년생 키 정도 높이의 장롱! 그래, 바로 저 농 옆에는 놋쇠 요강이 있었지! 바닥에는 오줌이 흘러있고 복부인들이 좋아하는 칠보 자개농도 아니고 흥부가 환장했다는 화각장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조선의 서민들이 서방님 바지 저고리는 윗층에 넣고 꼬장주, 단속곳, 치마 적삼은 아래층에 넣던 그런 조선 장롱이다.
경매는 시작되고 경매 초장에 미스터 ‘히로다’는 경쟁자 없이 일본 단스를 예정가 이하로 낙찰받고는 좋아라 했다. 조선 농 경매는 경매 중간에 이루어졌는데 미국사람의 시선이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흡사 두메산골 시골처녀와도 같이 다소곳이 무대 위에 서있어 나 말고 또 다른 응찰자가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 강력한 도전자가 생겼다.
도전자는 등 뒤에 있는 모양이다.
경매 진행 중에 뒤돌아보는 것은 촌놈이다. 만만치 않은 상승폭으로 벌써 5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경매 진행자가 나의 등 뒤를 주시하면서 5단계에 접어든 경매가를 불러 제낀다.
경쟁을 포기한 모양이다. 드디어 경매 진행자가 조선 농 낙찰가를 선언한다. 경매는 끝나고 경매품을 옮기는 등 장내가 어수선한데 한 백인소녀가 내 옆을 지나 조선 농으로 닥아간다.
농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더니 여기 저기 어루만진다. 기어이 뒤를, 아니 낙찰자인 나를 보지 않으려는 듯 등을 이쪽으로 한 채 조선의 2층 장롱을 어루만지고 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농’으로 다가서려다 말고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머리는 뒤로 땋고 지극히 소박한 옷차림을 한 저 소녀는 지금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 뒷모습이 그렇게 전해주고 있다. 나는 지금 몹시 후회하고 있다. 조선 농에 대한 저렇게 간절한 소녀의 소망을 물리치고 낙찰받은 나의 행동에 대해 나는 몹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
이미 끝난 경매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지만 낙찰가, 아니 그 이하의 가격으로도 조선 농을 원한다면 저 소녀에게 양도하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소녀는 허둥대며 쏜살같이 밖으로 나가버린다. 나는 뒤쫓아 나갔다.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찾았으나 헛수고다. ‘농’을 밴에 싣고 돌아오면서도 여러번 뒤를 돌아보았다. 꼭 ‘농’을 따라 뒤쫓아 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콜드스프링 경매장에 가서 소녀를 수소문하였으나 찾지 못했다. 그로부터 얼마 동안 조선장롱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 모양 나의 스튜디오에 와 있었으나 어떤 일로 인해 장롱은 산산조각이 되고 말았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