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리 없는 소리’를 찾아서 (9)
▶ 백춘기 <골동품 전문가>
“저는 한국적인 아름다움 또는 정체성을 찾아 긴 여행을 하여 왔습니다. 왜? 미국영화의 아류를 벗어나 한국사람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한국영화를 해낼 수는 없을까? 이것이 세계무대 속에서 한국인 감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영화 ‘취화선’으로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임권택 감독의 수상 소감이다. 나는 이 말에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울어버리고 말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심지어 종교에 이르기까지 미국식 세계화가 태풍과도 같이 몰아치고 있는 오늘날 ‘한국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만들 수 없는 한국영화”를 고집한 인간 임권택은 미국식 세계화 속에 한국식 정서로 확실하게 “한 획”을 그어대고 말았다.
그러나 임권택 같은 강한 신토불이적 사고나 문화운동이 결코 생소한 것만은 아니다. 이미 미국으로 대변되는 세계화 속에서 진정으로 알차게 발전하고 성숙하게 살아가고 아니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각 민족 또는 전통 지역사회의 고전적 토착문화를 슬기롭게 보존하면서 현대문명과 조화시켜 나가는데 있다고 나름대로 정의하고 있다.
■골동의 고고학적 가치
골동품의 고고학적 가치는 전 회에서 말한 골동의 주관적 가치와 어떤 면에서 흡사한 바탕을 이루고 있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든 나에게는 무엇 하고도 비교하거나 바꿀 수 없는 최고의 물건! 바로 골동의 주관적 가치이다.
이런 나만의 가치를 염두에 두고 골동의 고고학적 가치를 알아본다. 한정된 지면도 고려하고 어려운 이론 보다는 필자가 체험한 한 예를 통해서 풀어보고자 한다.
어느 날, 매우 수준 높은 골동품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는 동포로부터 초청을 받고 그의 집을 방문하였다. 아무리 진수성찬이라도 술이 빠지면 시큰둥하는 나를 아는지라, 주인은 위스키잔을 함께 들게 하고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최근에 어렵게(비싸게) 마련했다는 진열장 앞에 가서 섰다. 진열대에는 붉은 융단이 깔려 있고 그 위에는 수없이 많은 토기 조각들이 저마다 꼬리표를 달고 섰거나 누워 있다. 설명인 즉, 마야시대의 토기 유물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저 한 바퀴 돌아보고 한 마디 했다.
“이 사금파리들을 골동품이라고 수집한거요?” 자기딴에는 괜찮은 골동품 거래를 한 건 했다고 자랑 겸 감정도 받을 겸 나를 불렀는데 사금파리 운운하는 나의 퉁명스러운 언급에 어리둥절한다. 군살은 빼고 본론에 들어간다. 이것은 인류문화의 유물로서 고고학적 가치는 있을지 모르나 골동품으로서의 가치는 매우 떨어진다.
이 마야시대의 토기 조각은 고고학 연구실의 연구 대상이 될지는 모르나 골동품은 아니다. 궂이 이 토기조각의 또 다른 가치를 창출해 낸다면 실내나 여타 장식을 위한 소품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래도 골동품
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고미술학계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역시 결론은 유물이지 골동품(앤틱)은 아니라는 게 대세다. 그렇다 해서 시장가치가 전무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 마야 토기조각도 고고학계에서는 연구 대상물로서 고가에 거래된다는 것은 당연하다.골동품은 학문적으로 고고학에 속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골동품이 갖는 특성 가운데 하나인 긴 세월이라는 분야만 신경을 쓰고 고미술이라는 예술성을 외면할 경우 시장 가치는 그만치 반감되든가 아니면 거의 전무하게 된다.
■골동의 시장 가치
앞에서 말한 골동품의 주관적 가치나 고고학적 가치는 객관적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 객관적 가치란 바로 시장에서 인정하는 가치, 즉 상품성이 없다는 뜻이다. 골동품의 시장가치는 물론 골동시장에서 이루어진다. 증권은 증권시장에서, 야채는 야채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골동품에 대한 인식이 그렇지 않다. 골동품은 일반 상품시장과 같이 개방된 환경에서 형성되는 시장가치가 아니라 지극히 폐쇄된, 지극히 유별난 계층의 사람으로 수요와 공급이 이루어지는, 말하자면 끼리끼리 유통질서로 보는 경향이 짙다.
물론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없지 않다. 무엇보다 골동품을 수집하는 데는 나름대로의 전문지식이 있어야 하고, 적지 않은 재력이 요구된다. 거기에다 골동품이 가지는 오랜 연륜과 한정된 희소성이 불러 일으키는 위조품에 대한 위험부담도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골동품의 특수성은 그만치 투자가치를 높여주는 투자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그런가 하면 골동품이 가지는 특성을 주축으로 하는 골수 골동시장과는 별도로 개성화 되어가는 현대인의 소비심리가 제2의 골동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만이 튀는 뚜렷한 개성이 없이는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이 살인적인 경쟁사회가 2차원적인 골동문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제2의 골동 문화권이란 진수골동품에서 얻어낸 갖가지 ‘아이디어’로 창작된 예술세계가 될 것이다. 미쳐 돌아가는 세파를 벗어나 잠깐 쉬어가는 공간! 자연스런 개성미! 춤추고, 마시고, 그러다가 울고 싶은 고독감!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소리 없는 소리를 찾아가기 마련이다.
동양의 골동문화는 서서히 유럽이 가지는 앤틱문화 개념으로 바뀌어지고 있다. 이것은 동양의 골동문화 발전을 위해서도 적극 장려하여야 할 것이다. 민족문화 유산으로서의 골동품은 정부의 문화재로서 훌륭하게 보존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민족이라는 큰 그릇의 대중문화가 아니다.
골동예술(고전예술)의 대중화야 말로 세계 문화 속에서 개성 있는 민족으로 생존하는 길이다.
독자들은 영화 ‘로마의 휴일’을 통해 ‘티파니’라는 이름을 잘 알 것이다. ‘티파니’는 1880~1930년 유럽 앤틱문화를 빛낸 영국의 앤틱 예술가이다. 앤틱은 예술성과 실용성을 겸비함으로써 예술의 이름으로 후세에 영광을 누린다.
15세기 초 앤틱이 생활예술품으로 유럽에 자리 잡으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의 30년 단위로 ‘티파니’와 같은 앤틱 예술가에 의해 독자적인 예술 계보를 이으면서 그 명성을 오늘에 유지하고 있다. 고려청자의 ‘비색’의 비밀을 가슴에 안고 죽었다는! 그래서 그 ‘비색에 집착하는 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한심한 비극이다. 똑같은 것에 집착하거나 반복하
는 일은 사람이 아닌 기계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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