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상방담> ‘월드컵은 한인사회에 무엇을 남겼는가’
2002 한·일 월드컵은 한국은 물론 뉴욕과 뉴저지 한인사회에 혁명적인 화두를 던졌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자부심을 각인시키면서 일부가 가졌던 패배주의를 뛰어넘었으며 한인사회의 세대간 무관심이 일거에 깨지는,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새로운 패러다임을 설정한 이번 월드컵에 대한 감격과 이를 승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을 각 분야의 한인들의 의견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참석자>
연인철(뉴저지한인회장)
문정민(서울플라자 회장)
강광호(한국관광공사 뉴욕지사장)
송순호(25학군 교육위원)
사라 문(Y-KAN 임원, Ask Jeeres.com 근무)
-역사적인 월드컵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소감은.
▲송순호=대한민국을, 대한민국사람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미국생활을 하면서 한인들이 겪었던 좌절감 등이 일소에 해소된 쾌거라 할수 있지요. 이번 월드컵은 역사가 존재하는 한 남아있을 것입니다. 히딩크 감독이 고맙게 여겨집니다.
▲사라 문=미국에서 태어나 이번처럼 한국에 대해 고마웠던 적이 없었습니다. 젊은 한인 2세들이 한국을 더 많이 사랑하길 바랍니다.
▲문정민=한인 청소년들이 이번 응원전에서 예의바르고 질서있는 모습을 보여준 점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한인 1.5세, 2세들의 한국 사랑과 응집력을 발견한 점이 가장 큰 성과라고 봅니다.
▲연인철=뭐라 말할 수 없이 기쁩니다. 미국인들이 한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확실히 달라졌다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한인 2세들은 이제 없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한인회 활동을 하면서 이번처럼 자발적으로 마치 ‘내 일처럼’ 움직인 적도 거의 없을 겁니다.
▲강광호=국가 홍보를 맡고 있는 조직의 일원으로서 이번 월드컵이 한국에 대한 홍보를 5~10년 앞당겼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큰 성과입니다.
한인사회의 응원행사를 통해 한국인의 끈끈한 정과 인심을 확인한 셈입니다. 응원장소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 비즈니스입장에서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월드컵 기간 중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연인철=한인 청소년들이 승리의 기쁨에 취해 음주 운전을 하면서 경적을 울려 체포됐었지요. 경찰서에서 중범으로 조서를 꾸미고 있을 때 월드컵 때문에 그런 것이라며 이해를 요청했고, 결국 간단한 벌금부과로 끝났습니다.
또 축하퍼레이드를 위해 한인상가 밀집지역인 브로드애비뉴에 몰려올 때 경찰들이 수많은 한인들의 차량에 질려서인지 처음에 조금 단속
을 하더니 나중에는 나오지도 못하더라구요. 정말 통쾌했습니다.
▲사라 문=이탈리아전을 보기 위해 일주일을 휴가내서 한국에 갔었습니다. 돈 많이 썼습니다.(웃음) 여의도에 갔다가 볼 수가 없어 이태원의 한 호프집에서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외국인들도 빨간 티셔츠를 입고 응원했고 승리후 압구정동의 길거리에서 축제를 즐겼습니다. 차위에 올라가서 춤을 추는 등 광란의 분위기였습니다. 내 생애 최고의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문정민=16강까지는 올라갈 것으로 기대했었습니다. 직원 중 70명을 팀으로 차출해서 16강 스케줄에 맞춰 준비를 했는데 8강, 4강 계속 올라가니까 비상이 걸렸지요. 식사 제공 등 일이 많았는데 피곤한 가운데도 잘 따라준 직원들이 고맙게 생각합니다.
▲송순호=세탁소를 하는 친구가 있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운 한 히스패닉직원에게 한국이 4강에 들면 한달 렌트를 지불하겠다고 공약(?)했답니다. 한국이 4강에 들어 약속을 지켰다고 합디다. 저도 매번 이길 때마다 붉은 악마 옷사주고 저녁사고, 노래방가고 지출이 많았지요.
▲강광호=월드컵 처음 시작할 당시 미국언론인 10명과 식사를 하다가 한국이 우승하면 전원을 1등석으로 한국에 초청하겠다고 말했었습니다. 한국이 잘하니까 나중엔 정말 우승할 것 같아 조금 걱정이 됩디다(웃음)
▲연인철=저는 오히려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썼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원에서 처음 응원 행사할 때 포스터와 광고비를 지출했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대원에 1,600여명이 들어와 꽉 찼고 경찰이 나중에 400여명을 돌려보내기도 했으니까요.
-월드컵이 한인 2세들의 아이덴티티 확립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들을 한인사회에 참여시키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사라 문=내년쯤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이번에 한국에 갔을 때 걱정이 됐었어요. 3년전에 한국에 나갔을 때 택시 기사가 한국어가 서툴다고 승차를 거부한 적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었고 오히려 재미있게 얘기했습니다.
한국이 예전과 달리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연인철=지난 26년간 미국에 살았지만 어린 꼬마들까지 자발적으로 한인 행사에 참여한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월드컵 기간 중 외국인들이 한인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최고’라고 할 때는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오는 가을에 치를 예정인 코리안퍼레이드에도 많은 한인 2세들이 참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행사 진행에서 이들을 적극 배려할 계획입니다.
▲송군호=일부에서는 한인들의 응원을 보고 ‘집단적 히스테리’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집단 유포리아(도취감)라고 생각합니다.
한인청소년들과 얘기를 나눠봤는데 한국인이라는 점에 대한 확신이 각인된 것 같습디다. 학교에 가서 미국이나
이탈리아계, 히스패닉계 친구들에게 자랑스럽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재미난 것은 플러싱 일대 학교에서도 한인 학생들이 늦어도 지각 처리를 하지 않아더군요.
▲문정민=한인 1.5세, 2세들에게 확고한 조국관을 심어주기 위한 문화 및 스포츠사업이 지속적으로 연결돼야 합니다. 오는 7월10일에는 월드컵 뉴욕후원회와 공동으로 ‘붉은 악마, 살아있는 한국인’이라는 주제로 한인 2세들을 위한 축하 파티를 가질 예정입니다.
-달라진 한인사회의 분위기와 미국인들의 시각을 어떻게 느꼈는지요.
▲강광호=처음 월드컵 홍보할 때 정말 힘들었습니다. 미국인들에게 축구 자체가 관심이 없는 스포츠였기 때문에 더욱 어려웠지요. 한국과 미국의 경기 당시에는 반미감정에 대한 얘기들이 나와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그후 한국이 16강 진출한 뒤에는 미국 언론과 여행 관련 업계에서 잘한다는 소리가 나왔는데, 8강, 4강을 넘어서니까 칭찬 뒤에 질투가 숨어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번 월드컵으로 축구가 많이 소개되면서 미국인들의 머리속에 한국의 이미지도 좋은 의미로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미국인들을 만날 때 축구 얘기부터 시작합니다. 앞으론 경품으로 축구공을 내놓을 생각입니다.
▲사라 문=한국에서 친구들을 만났을 때 반미 감정 얘기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 동계올림픽 당시 안톤 오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더라구요. 미국내에서도 9.11 테러 사건 이후 영웅이 필요했고 그 일환으로 그 사건을 보는 시각이 있다고 설명했지요.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친구들이 이해하더라구요.
▲문정민=폴란드와의 첫 경기에는 응원나온 사람들이 대부분 나이많은 한인 1세들이었습니다. 그후 젊은층으로 바뀌면서 응원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새벽 2시30분 경기가 있는 날 한인 청소년들이 전날 오후 8시부터 서울플라자에 들어와 응원을 준비합디다.
술을 먹거나 가져온 사람도 없이 질서 정연하게 기다리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4강 진출을 위한 스페인과의 경기에는 무려 5,000여명이 몰려 소요사태가 일어날 뻔 했지만 ‘자랑스런 한국인, 미국인앞에 당당히 서자’고 설득, 돌려보냈습니다.
젊은 학생들이 잘 따라주어서 옥외 방송을 약속하고 대형 TV 3대를 구입했습니다. 순수하게 믿고 따라준 한인 청소년들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갑작스럽게 TV 구입하는데만 5,000달러가 들었습니다.(웃음)
▲송순호=그동안 엽전이나 냄비 등 우리 스스로 한국인을 비하하는 발언들을 많이 했왔습니다. ‘나도 한국사람이지만…’하면서 비하하는 이런 부정적인 아이덴티티는 소멸되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에 태극 전사들이 힘들게 일궈낸 감격을 ‘한국사람만이, 한국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란 말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자녀들의 정체성을 위해 학교도 안보내고(?) 중계방송을 같이 본 부모들도 많았습니다.
▲연인철=보수적인 뉴저지에서는 응원 장소 구하기가 쉽지 않습디다. 그래도 많은 한인 청소년들이 찾아와 열광적인 응원을 했으며 경기가 끝나고 응원 자리를 청소하는 등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일부 학생들은 붉은 티셔츠를 안입으면 학교에 안가겠다고 해서 한인회 임원들이 입고 있던 붉은 악마 티셔츠를 대부분 빼앗겼습니다.
-마지막으로 바라는 점이나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요
▲사라 문=내 평생 이번 같은 코리안 파티를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한국인이 정말 열정(Passion)이 많은 국민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모여 응원하고 즐기는 모습이 자랑스러웠어요. 한인들도 한국을 더 많이 사랑하길 바랍니다. 한국인들도 한인들이 외국에서 한국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아줬으면 합니다.
▲송군호=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의 알량한 지역주의가 타파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 선수들은 병역혜택 이상의 보상을 받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한국의 경제 발전을 설명해도 외국인에게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이번 월드컵 축구 4강 진출은 역사가 존재하는 한 남아있을 것입니다.
▲연인철=한인회 뿐아니라 언론과 각 단체들이 한인 단합에 힘을 모아야 합니다.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스스로 갖고 있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없어졌다고 봅니다. 이들을 보다 한인사회내에 끌어들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문정민=젊은 한인들의 에너지를 모아야 하는 숙제는 남아있습니다. 한인 1세들이 어렵게 자리잡고 교육시켰는데 이들에 대해 보다 신경을 써서 한인사회가 발전할 수 있도록 월드컵 이후에도 노력해야겠습니다.
▲강광호=서울의 상암 경기장이 완공된 뒤 돌아본 적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우리도 이곳에서 꼭 경기를 했으면 하고 생각했는데 4강까지 올라가 경기를 하게 돼 정말 기쁩니다.
남의 잔치가 아닌 우리의 잔치가 돼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월드컵에서 한국이 훌륭하게 성공했듯이 한인들도 모두 잘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진행 및 정리=김주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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