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대회로 사기가 충천해 있던 한국민들은 느닷없는 서해교전으로 어리둥절해졌다. 햇볕정책으로 남북대화가 진전되고 있는 가운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북한이 이 사건을 일으킨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남북정상회담이후 남한의 일방적인 양보의 덕분이긴 하지만 금강산 관광과 쌀 보내기, 간헐적 회담개최 등 남북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서로 총을 겨누고 불을 뿜어야 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햇볕정책 때문에 군인들이 총을 쏘는 것도 자제하는 판인데 북한 경비정이 함포를 겨누고 달려드는 것을 볼 때 만약 전쟁이 난다면 북한에 먹히는 것이나 아닌지 불안해 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햇볕정책으로 남북대화가 진전되고 있는 가운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해야 할 전제조건이 있다. 남한은 남한대로 생각하고 움직이지만 북한은 북한대로 생각하고 움직인다. 북한이 결코 남한 생각대로 움직여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말아야 한다. 한국이 햇볕정책을 추진한 것은 북한을 개방개혁으로 유도하여 남한과 상호신뢰에 입각한 평화공존을 이룩하고 나아가서 통일의 기반을 조성하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남한의 생각이고 시나리오이다.
북한은 이 시나리오를 이미 알고 이에 대응하는 자신들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북한으로서는 햇볕정책이 여러 가지로 유익했다. 한국의 견제는커녕 오히려 도움을 받으면서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여 국제무대서 활개를 칠 수 있게 됐다. 한국이 앞장서서 식량원조와 경제적 지원을 해 주었기 때문에 지난 몇 년간 붕괴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렇다고 북한은 한국의 햇볕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의사는 전혀 없었다. 햇볕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보다 강하게 들어 올 때는 제동을 걸었다. 말하자면 북한은 햇볕을 조절하는 장치를 가지고 있다. 이번 서해교전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뿐 아니라 과거에도 흔히 써 온 제동장치가 국지적 긴장조성 행위이다.
이런 긴장조성은 북한에 여러 가지 반사이익이 있다. 한국의 햇볕정책에 찬물을 끼얹어 반대자들의 기를 살려줌으로써 심각한 국론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햇볕론자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더욱 더 북한에 애걸하게 될 것이다. 햇볕론자들이 곤경에 처하는 지경이 되면 북한은 다시 대화를 열어 햇볕을 되살릴 수도 있다.
북한은 북한 주민들에게 한국의 햇볕정책을 자신들의 민족화해정책이라고 속일 것이다. 북한이 민족화해정책을 취하니 남한 대통령이 화답하여 방북하였고 줄줄이 북한을 찾아와서 통일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는 식으로. 그런데 민족의 원수인 미제놈들 때문에 긴장이 조성됐다고 뒤집어씌운다. 그래서 반미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고 국민의 단합을 강화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다.
그러면 한국에서 전쟁은 나게 될까. 지금 상황으로는 전면전쟁은 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햇볕 정책 때문이 아니다. 미국이 있기 때문이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고 미국이 세계 초강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한 북한은 미국을 상대해야 할 전면전은 일으킬 수 없다. 이 때문에 북한이 한미간의 불화를 일으켜 주한미군을 몰아내려고 별의별 수를 다 쓰고 있는 것이다.
만약 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하고 미국의 세력이 약화된다면 전쟁은 어느 때나 날 수 있다. 한국에서 6.25가 터진 것은 당시 미군이 철수했고 한국이 미국의 방어선 밖에 있다는 애치슨 국무장관의 성명 때문이었다.
한국이 세계 경제 10대국이고 월드컵 4강이라고 자부하지만 전쟁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김정일이 권력이 총구로부터 나온다는 철칙을 신봉하면서 국방위원장 자리만은 끝까지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서 무언가 생각하지 못한다면 오늘날 한국의 지도자들이라고 말 할 수 없다. 햇볕이 어떻고 하는 탁상공론은 이제 그만하고 현실을 똑바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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