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역사의 유물 미국 부호들의 대저택
▶ (9) 글렌코브 섬 , J.P. 모간 가
J.P. Morgan은 투자은행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은행의 선구자였다. 그는 1837년 4월 17일, 커네티컷주의 하트포드시에서 출생하였다. 부친 주니어스 스펜서 모간은 재무상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아들에게 재정의 관리와 투자의 지식을 주입시켰다.
그는 부친 말을 잘 듣는, 열심히 복종 잘 하는 착한 아들이었다. 어려서 그는 영국사람이 운영하는 고등학교를 다니고, 독일의 유명한 꾀띵겐 대학(University of Goetingen)을 졸업하고(1856) 뉴욕의 던칸 쉴만 증권회사(Duncan & Sherman Co.)에 취직을 하였다.
여기에서 그의 천부적인 공격적 투자가로서 근성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남북전쟁 당시 군대에서 칼빈총 5,000자루를 파기한다고 개당 3달러50센트씩에 불하를 한다고 하니 친구 Mr. Eastman에게 2만달러를 대여해 주어 칼빈총 5,000자루를 모두 구입했다가 북군의 프레몬트 중장이 다시 총을 구입함을 알고 개당 22달러씩에 되팔아서 많은 이익을 남겼으나 상사의 허락 없는 거래인지라 이익은 냈으나 이로 인하여 해고당하는 결과가 되었고, 평생을 두고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투자가라는 인간성 시비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모간도,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니까 자기 회사를 하게 되었다. 뉴욕의 시장 마이클 블룸버그가 옛날에 샐로먼 브라더스 증권회사에서 일하다가 해고당하여 자기 회사를 시작하니 현재 억만장자가 된 것처럼 위기를 훌륭한 기회로 삼아서 J. P. Morgan & Company(1861)를 설립하여 영국에서 은행업을 하는 부친의 뉴욕 에이전트 노릇을 하면서 투자와 대부, 무역보증을 전문으로 하는 은행 업무를 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 체이스은행과 합병하면서 투자전문은행과 고갯서비스 은행간의 합병으로 은행의 거대한 고릴라가 된 J. P. Morgan and Chase는 지금도 거대한 세계적인 굴지의 은행이다.
한국의 IMF 때에 한국에 나와서 합병과 인수를 종횡무진으로 해치우던 미국회사로서 J. P. Morgan과 Mr. 소로스를 우리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J. P. Morgan은 24세에 Amelia Sturges(일명 미미)와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얼굴이 옥같이 희고 창백하며 몹시 가냘픈 폐병 말기의 처녀였는데 부친은 허드슨 예술학교의 교장이었다.
모간은 자기 집에서 친지를 모아놓고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을 가는 마차에 타는 것도 힘들어서 모간이 안아올려서 태웠다고 한다. 몇달 후에 그녀는 사망하고 그녀의 기념으로 아멜리아 기념재단까지 설립하였었다.
항상 저 제상에 간 미미한 생각하며 살 수는 없는 일이 인생사라는 그는 다시 당시에 유명한 뉴욕의 변호사의 딸인 프랜시스 루이스 트레이씨(Francis Louis Tracy)와 사귀다가 결혼하였다. 나중에 그의 장인이 그 회사의 변호를 맡아서 변호한 적이 있다.
J. P. Morgan은 6피트의 거구에 꼬부라진 수염과 검은 머리칼과 거치른 인상과 인정 안두는 그의 상도덕에 해적과 같다고 그의 별명이 ‘해적 헨리 모간’이라고 하였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인지라 모두가 재건을 위한 돈벌이 뿐이었다. 그는 철도회사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새로운 기술에 관심을 갖고 철강회사와 전기회사에 거침없이 많은 투자를 하였다. 이 때에 카네기 철강을 구입하여 U.S. Steel Corporation으로 바꾸고 철로를 사들여 철도회사를 접수하기 시작했다.
철도회사를 두고 먹고 먹히는 치열한 경쟁이 심화되어 Jay Gould는 뇌물을 주어서 해결하려고 하고 밴더빌트는 현금으로 움직이고, 뒤쪽에서 장난치는 제이 드류가 있어 모간은 당시 만만치 않은 경쟁에서 결국은 승리하였다.
모간의 나이 36세에 부친은 그에게 Drexel이라는 사람과 동업하기를 권하여 이제는 Drexel & Morgan Company가 되었다. 그 때가 남북전쟁이 끝나고 정부에서 남북전쟁을 위해 발행한 채권의 지불에 3천만달러를 갚고 더 싼 이자의 채권을 발행하려 할 때, 필라에 사는 부자 Jay Cooke이라는 사람이 2,500명의 사람을 풀어서 채권을 팔아서 큰 이득을 올렸는데 ‘as rich as Jay Cooke(제이 쿡 만큼 부자)’라는 속담이 생기기도 했다.
그는 별명이 ‘바나나 리퍼블릭’이었다. 주로 거짓말쟁이이고 속 빈 강정이란 말이다. 그도 역시 Northern Pacific 철도회사가 2,500명의 에이전트가 팔아온 채권을 갚기 위해 엄청난 돈이 필요하여 결국 파산지경에 이르러 모간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미국의 경제공황은 이렇다. 1873년 9월 검은 목요일에 속 빈 강정인 제이 쿡의 Northern Pacific 철도회사의 파산으로 시작되었고 1929년 10월 공황이 두번째요, 이번의 대형 기업의 회계부정과 파산지경을 맞아 현재의 월드컴과 엔론사, 헬리버튼사(부통령 딕 체니가 회장이던 회사), 하켄사(부시대통령이 사내 정보로 주식거래 했다는 의심받는 회사)등의 파산에 영향을 입어 주식이 끝간 데를 모르게 추락하는 현재의 시절과 비교가 될 수 있다.
당시 유럽에서는 미국의 철도 주식은 ‘하늘의 천사가 서명을 했어도 믿을 수 없어’라고 신용을 두지 않았다.모간은 국가와 국가간의 전쟁 자금을 충당하는 채권 발행을 보증하는 일이 많아지자 식자간에는 전쟁 채권에 연관된 모간의 업무는 전쟁 발생을 부추기는 천인공로할 위인이라고 모간을 몰아세웠다. 실제로 전쟁이 발생하면 큰 돈을 버는 사람은 모간 그룹이라고 사람들은 믿게 되었다.
전쟁 발생을 도와주어 전쟁을 시작하고 또 끝난 다음엔 건설자금을 빌려주니 이중 삼중으로 돈을 벌게 되어 모간의 재산은 늘어만 가는데도 또 그는 금수품을 밀수했다. 영국에서 또는 중국에서 위스키를 밀수했다. 모간은 현재의 글렌코브 섬에 저택을 마련했는제 지하실 쪽으로는 바다와 연결되어서 밀수하는 배가 직접 지하실 문턱까지 와서 하물을 처분하곤 했다.
글렌코브는 배의 운행이 빈번했는데 어느 여름날 저녁에 술에 만취한 보트가 속력을 놓고 달리다가 모간의 중국산 위스키(9만달러의 원가가치)를 적재한 배와 정면 충돌을 해서 많은 위스키병이 글렌코브 앞바다에 둥둥 떠나니게 되었다.
이를 본 그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 위스키를 건져가는 진귀한 풍경이 벌어져서 동네 경찰이 동원되었으나 이는 단순 충돌사고로 무사하게 이 사건은 끝이 났다.
이 때에 모간이 소유했던 배 이름이 콜새이어였다. 모간은 이 때에 어쩐지 우울한 기분에 빠지고 자꾸 옛날의 미미(첫번째 사망한 부인) 생각에 잠겨 오래동안 바다만 바라보는 일이 생기더니 이 배를 구입하여 이 배에서 잠도 자고 싸우는 경쟁자(철도회사 사장들)들을 이곳으로 불러서 중재를 하곤 했다.
어릴 때의 첫사랑의 기억이 나이가 들면서 자꾸 자꾸 더하니 부인의 자존심을 지켜주려고 외부에서는 훌륭한 남편으로 주일날은 가족과 함께 찬송을 부르고 예배를 드렸다.
이 때에 그의 건강도 좋지 않아서 왕진하는 의사가 있었는데 그는 가난한 사람을 무료로 치료해 주는 새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던 중에 모간에게 며칠 전 갓 이민온 불쌍한 부인을 치료해 주었는데 그들의 실상을 보러 가겠는가?라고 하니 모간이 300달러를 헌금하겠다고 했다.
그 닥터는 기어코 그를 데리고 그곳으로 가서 구경시키고 결국은 모간이 100만달러를 쾌척하여 만든 병원이 현재 59가에 있는 St. Luke’s Presbyterian Hospital로서 필자도 10년 전에 이 병원에서 2달간 입원하여 살아난 곳이다.
세월이 이렇게 흐르다 보니 주니어스 스펜서 모간(부친)도 영국에서 사망하여 그의 부친이 쓰던 타운하우스 집을 주영국 미대사관저로 내주어 조셉 케네디 대사가(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부친) 살았다.
<윤병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