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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영(서울경제 뉴욕특파원)
올들어 뉴욕 증시의 블루칩 지수가 급락하면서 월가 경제전문가들 사이에 현재의 미국 경제가 90년대초 도쿄 증시의 거품 붕괴로 일본이 장기 불황에 돌입한 것과 비슷하지 않느냐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최근 의회 증언에서 “미국 경제는 튼튼하고, 강력한 회복을 재개할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다. 하지만 FRB 내부에서는 일본식 디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지금 미국 경제가 겪고 있는 주가 폭락에 따른 자산거품 붕괴, 자본투자 위축, 소비 둔화, 초저금리, 실업률 증가 등이 10년전 일본의 경제 상황과 오버랩되고 있다.
90년대초 당시 미에노 야스이 일은(日銀) 총재는 오늘날 그린스펀 의장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처럼 “경제의 기초가 단단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80년대를 풍미했던 일본식 경제의 효율성은 메모리칩 분야의 투자 위축으로 삐걱거리기 시작했으며, 4만 포인트를 목전에 두었던 니케이 지수는 90년 새해벽두에 붕괴됐다.
90년대에 글로벌 스탠더드임을 자부했던 미국의 신경제는 정보통신(IT) 산업 붕괴로 한계를 드러냈고, 새로운 밀레니엄 도래와 함께 5,300 포인트까지 갔던 나스닥 지수는 지금 4분의1 수준인 1,300 포인트대로 폭락했다.
이제 미국의 블루칩 지수들이 급락하고 있다. 다우존스 지수는 그린스펀 의장이 지난 96년말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는 용어로 증시 거품을 경고했을 때의 수위(6,400 포인트)에 2,000 포인트 차이로 좁혀졌고, 광의의 블루칩 지수인 S&P 500 지수도 올들어 21.5% 하락했다. 월가의 비관론자들은 “지난 2년간 계속됐던 베어마켓(bear market)
이 앞으로 몇 년은 더 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증시 호황으로 미국인 성년의 절반 이상이 주식을 보유하고, 개인 자산에서 주식 비중이 부동산만큼 높아졌다. 따라서 증시 폭락은 개인의 자산 감소의 효과를 가져와 소비 심리를 둔화시키고, 금융거래 감소로 세수부족을 초래하고 있다. 미 연방정부는 증권 거래가 급감, 올해 1,650억 달러의 재정 적자가 발생, 지난 4년간의 흑자시대를 마감할 것이라
고 밝혔다.
또 증시 폭락, 회계 부정 등으로 소비자심리지수가 최근 들어 급락하고 있다. 증시 하락은 기업들로 하여금 직원을 더 자르고, 투자를 지연시킬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지금 미국 경제에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상당부분 지난 90년대 일본이 장기불황에 진입하던 초기의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미국 경제가 일본처럼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그 첫째 이유로 미국은 일본보다 경제 위기를 재빨리 인식하고 대처하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지난해 FRB는 역사상 가장 급진적으로 금리인하를 단행했고, 연방정부가 재정정책을 취했다. 미국은 일본보다 신속하게 경제 위기에 대응했기 때문에 최근의 주가 하락이 극복되면 경제가 그린스펀 의장의 말대로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견해다.
둘째, 일본은 부동산 거품이 커져 80년대말에 도쿄 황궁 부지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전체 땅값보다 비쌌을 정도로 일본의 부동산 거품은 걷잡을수 없이 커졌다. 지금 미국 부동산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지만, 10년전 일본처럼 거품이 형성되지는 않았다.
셋째, 일본은 은행이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다가 부실에 빠졌으나, 미국의 은행은 건실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국 경제가 잘못될 경우 그 파장은 일본의 그것보다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장기불황은 90년대말에 고정환율제를 채택해온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로 하여금 외환위기에 노출시킨바 있다.
일본의 장기침체는 아시아의 문제로 그쳤지만, 미국 경제가 최대 경제국가라는 점에서 최근의 경제 둔화와 금융시장 불안이 세계를 불확실성으로
몰아넣고 있다. 전세계가 미국 경제가 쳐다보며 잘 되길 바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in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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