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역사의 유물 미국 부호들의 대 저택
▶ (10) 글렌코브 섬, J.P. 모간 가
주니어스 스펜서 모건은 J. P. 모건의 아버지다. 영국에서 조지 피바디와 함께 투자은행, 국제 무역보증, 채권보증, 보험업 등에 종사했다. 아들에게서 미국의 경제 동향 및 분석을 들으면서 사업을 번창시키다 사망했다.
J. P. 모건은 집안 어른으로서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모건의 둘째 부인은 늘씬한 키에 계란형 얼굴 모양을 한 절세의 미인이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나 남편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았다. 모건은 보다 많은 시간을 새로 구입한 배, 콜새이어에서 혼자 지내게 되었다.
사망한 전 부인 미미만 생각하며 지내다 어느 날 베니스의 상인에서 주연 폴티아역을 했던 연극배우 맥신 엘리옷(Maxine Elliot)과 만나 염문을 뿌리기 시작했다. 모건은 어느 날 별안간 딸만 데리고 유럽여행을 훌쩍 떠났다.
모건은 자기가 여행으로 비게되는 자리를 아들 잭 모건(Jack Morgan)에게 맡기고 떠났다. 아들은 여동생 앤(Anne)과 모친 페니(Fanny)와의 틈에서 요령껏 일 처리를 해 나갔다.
모건은 바람을 핀다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한 얄팍한 술수로서 딸을 데리고 유럽에 간 것이었다. 이때 유럽 사람들은 증기기관을 이용해 기선을 만들고 있었다.
특히 엄청나게 크고 화려한 여객선 타이타닉호(The Titanic)가 출범 직전에 있었다. 모건도 이 배를 타고 귀국하려고 했다. 그러나 사정이 있어 예약해 놓은 좌석에 앉아보지 못한 타이타닉은 빙산과 부딪쳐 박살 나고 전대미문의 참사가 발생했다. 이 참사로 1,500명이 사망하였다.
이때 뉴욕 부동산의 거부 아스토(Astor), 아스토리아 호텔의 증손자인 존 제이콥 아스토(John Jacob Astor IV)와 그의 나이 어린 부인, 임신한 부인과 함께 타고 있다가 참변을 당했다.
아스토는 첫째 부인이 사망한 후 자기의 막내딸 보다 2살 어린 여자를 부인으로 맞이했었다. 이를 두고 주위에서 말들이 많고 가십(gossip)에 자주 오르내리자 여행삼아 유럽에서 살았다. 부인이 임신하자 급히 귀국하다 이런 비극을 당하게 됐다. 뉴욕의 신문들은 한동안 이들 기사로 전면을 덮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은행조직이 불완전할 때고 새로운 시스템이 생성돼 가는 초기 단계여서 많은 반대와 시행착오가 따랐다. 모건은 이같은 은행을 경영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체계와 조직을 갖추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미국 은행은 정부보조를 받는 반관반민 회사가 아니고 100% 개인 재산이다. 이익이 많으면 주주가 돈 벌고, 손해가 나면 주주가 피해를 입는 것이지 이를 정부가 보조해주는 장치가 없다.
그러므로 높은 양반을 위해 은행돈을 왕창 꺼내 주고 공적자금으로 메우거나 다른 은행과 합병, 이름이나 바꾸는 식의 행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국에는 없다 하겠다. 한국의 일부 은행의 운영 행태는 이곳에서 볼 때 ‘날강도’에 준하며 반드시 감옥행이다.
모건은 막내딸 앤과 사이가 아주 나빴다. 뉴욕 사교계에 나온 앤은 아버지 일에 항상 반대해 노인의 속을 많이 아프게 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뉴욕 사교계 여자들의 치마바람이 전쟁 일선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독일과의 전쟁에 적십자기를 달고 부상병을 돌보는 천사 역할을 했다.
프랑스 정부가 이 아주머니들(앤 모간도 포함)에게 프랑스 최고 훈장을 주기로 했으나 아버지 모건이 알고 손을 써 못 주게 하였다.
1913년 3월31일 저녁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모건은 생을 마감했다. 그는 숨지기 전 갸냘픈 목소리로 “얘들아 저 언덕을 넘어가야 해”라며 출생지 하드포드의 어릴적 친구들을 찾다 화려한 인생의 막을 내렸다.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모건이 사망할 때까지 모아놓은 예술품(당시 싯가 5,000만달러 상당)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평소 차가운 표정으로 유명했던 그가 예술을 사랑했고 사랑했던 예술품을 기증한 것은 원래 착한 성정을 가졌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사후 그의 재산은 6,800만달러였고 3,000만달러는 뉴욕과 필라델피아 은행의 주식이었음이 밝혀졌다. 카네기 등 다른 부자들과 비교해 보아 그렇게 큰 부자가 아니었음에 놀라는 사람이 많았다.
아들 잭 모건에게는 300만달러와 증기선 콜새이어를, 딸 루이사에게 100만달러, 또 그의 남편들에게도 100만달러씩을 유산으로 주었다. 말썽 많았던 딸 앤에게는 300만달러를 주었다. 남편도 없고 애들도 없으니 자선기관에 다 주어버릴 지도 모른다고 다른 자식들보다 더 많은 돈을 준 것이었다.
자기 도서관 사서였던 흑인여자 벨 코스타 그린에게 5만달러를 주고 일평생 도서관 사서를 하라고 당부했다. 여기다 아들 잭이 5만달러를 더 주었다.
성 누가 장로교병원(59가 소재)에 투자케 한 주치의 마코에게 평생 매년 2만5,000달러씩, 만약 마코가 죽으면 그의 부인이 이를 승계토록 했다. 마코의 부인에게 유산 승계권를 준 것은 그녀가 모간의 옛 애인으로 모건의 중매로 결혼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의 배 콜새이어의 선장에게 1만5,000달러, 100만달러를 하바드대에, 56만5,000달러를 St. George Church에, 50만달러를 뉴욕 세인트 요한 성당에 기부했다. 미국과 영국에 있는 모건회사의 종업원 전체에게 일년치 월급을 일시불로 주기도 했다.
모건의 대부(Loan) 철학은 대출자의 사업에 두지 않고 그 사람의 성격에 두는 것이었다. 모건이 해온 굵직한 사업은 정부의 채권 발행을 보증하며, 카네기 철강(Carnegie Steel)을 사서 유 에스 철강(US Steel)으로, 토마스 에디슨사를 사서 오늘의 General Electric으로 발전시켰다. 그의 사업 확장은 가히 앞을 내다보는 큰 경영자의 비전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J. P. 모건의 시대는 가고 아들 잭 모건의 시대가 도래했고 이어 후손들은 오늘날과 같은 모건 은행 시대를 이어가고 있다.
<윤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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