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 생사 확인해달라’ 진정서 들고 대사면담 요청
지난해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망명해온 장길수(17)군이 6일 오후 주유엔북한대표부(대사 박길연)를 방문, 현재 북에 있는 가족들의 생사여부를 확인해 줄 것을 공식 요청하는 진정서를 전달했다.
에드워드 케네디(민주·메사츄세츠) 상원의원, 샘 브라운백(공화·캔사스) 상원의원 및 미국 북한인권위원회(회장 프레드 이클레 전 국방차관)의 공동 후원으로 미국 상원 별관 러셀 빌딩에서 그림전을 가진 장군은 이날 뉴욕에 도착해 북한대표부를 찾은 것이다.
장군은 이날 오후 4시 ‘길수구명본부장 문국한씨, 뉴욕사업가 박효현씨 등과 함께 820 2애비뉴 건물 13층에 소재한 북한대표부를 방문, 박길연 북한대사와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 앞으로 자필로 쓴 진정서를 박 대사에게 직접 전달하려했으나 대표부 여직원으로부터 쫒겨났다.
장군은 대표부 출입문밖에서 인터컴으로 탈북자 장길수라며 "편지를 전하러 왔다"고 말했다. 대표부 안에서 한 남성 직원이 "우리는 그런 사람 모른다"고 답하자 "그럼 문 밑으로 편지를 집어넣겠다"며 문 밑 틈새로 밀어넣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를 향해 돌아서는 순간, 편지가 대표부 안에서 다시 문 밖으로 돌려 나오자, 급히 다가가 다시 문 밑으로 밀어넣었다.
장군이 전달한 진정서는 자신이 2001년 6월26일 중국 베이징 주재 유엔고등난민판무관실(UNHCR)을 통해 한국으로 입국한 사실을 알리고 자신의 어머니는 1999년 8월 탈북, 중국은신처에서 함께 숨어지내다 2001년 3월 중국 경찰에 체포돼 북한으로 강제송환 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진정서는 이어 "그후 어머니는 함경북도 은성보위부를 거쳐 화대군 보위부에 수감돼 있다 총살형을 받았다고 알고 있다"며 "2001년 6월25일까지 화대군 보위부 감옥에 있다는 소식 이후는 생사여부를 알 수가 없어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표부에 계신 여러분들에게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의 생사여부를 확인해 주실 것을 정식 요청한다"고 적고 있다.
장군에 따르면 함경북도 화대군 석성리 3반에 거주하는 아버지 장용준씨는 52세, 어머니 정순애씨는 47세, 형 장창선씨는 22세이나 현재 이들의 생사여부를 모르고 있다.
장군은 "어머니가 감옥에서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죽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내가 이렇게 해서라도 살릴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군은 대표부 방문에 앞서 만일 안에서 붙잡힐 수도 있는데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나는 잡혀도 겁나지 않는다. 여기가 미국인데 자기네들이 나를 어떻게 하겠느냐"고 대담성을 보였다.
한편 이날 오후 12시 뉴욕에 도착한 장군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유엔을 둘러보았으며 7일 워싱턴DC로를 거쳐 8일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문전박대 당하자 절망감 애써 자위
"우리 어머니를 살려주세요. 어머니는 나와 함께 중국에 숨어 있다가 밀고를 당해 지난해 3월 북한으로 강제송환 됐습니다. 화대군 보위부에 수감돼 총살 판결을 받은 것까지는 알고 있는데…. 제발 우리 어머니를 살려주세요."
2001년 6월 중국 베이징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 가족과 함께 진입, 한국으로 망명한 장길수(17)군은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를 얻고서도 북으로 끌려간 어머니 정순애(47)씨에 대한 죄책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길수 구명운동’을 펼친 문국한 본부장과 함께 숙소인 남부 뉴저지에서 기차를 타고 뉴욕으로 와 6일 정오 맨하탄에 도착한 장길수 군은 가장 먼저 김치찌개부터 찾았다.
지난 4일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미국 상원의원들과 인권단체의 초청을 받아 상원 별관 건물인 러셀 빌딩에서 그림 전시회를 개최하기 위
해 워싱턴DC에 온 장길수 군은 그 동안 빡빡한 일정으로 입맛에 맞지 않는 양식으로 식사를 해왔던 것이다.
펜스테이션에 마중 나온 뉴욕사업가 박효현씨는 장길수 군과 문씨를 코리아타운이 위치한 맨하탄 32가 금강산 식당으로 안내했다. 이어 일행은 코리아타운을 둘러보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 올라가 뉴욕 전경을 감상했다. 기념품 판매소에서 간단한 쇼핑 시간도 가졌다.
잠시 휴식을 가진 뒤 일행은 맨하탄 1애비뉴와 42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장길수 군이 빠듯한 일정에서 짬을 내 굳이 뉴욕을 가겠다고 결심하게된 이유가 바로 맨하탄에 위치한 유엔 본부를 방문하기 위해서였기 때문. 자신이 중국에서 도움을 받았듯 북한에 있는 어머니를 모셔올 수 있는 방법은 유엔의 도움으로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유엔을 둘러보면서 이것저것 설명을 듣던 장길수 군은 여기에 북한대표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얼굴 색이 달라졌다. "찾아갑시다. 우리 엄마와 아버지, 형 소식을 알려달라고 요청하겠어요. 망설일 것 없이 서둘러서 갑시다"라며 문국한 본부장과 박효현 사장을 재촉했다.
잠시 머리를 맞대고 절차를 의논하던 세 사람은 우선 유엔 로비에서 유엔사무총장과 북한대사 앞으로 보낼 진정서를 작성한 뒤 이 뜻을 관계자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유엔 측으로부터 사전에 약속 없이 만날 수 없다는 설명을 듣자 사무총장에게는 우편으로 접수하기로 하고 북한대표부로 향했다. 장길수 군은 "조금 떨리지만 괜찮아요. 잡혀도 겁나지는 않아요, 미국 땅에서 자기네들이 어떻게 하겠어요"라며 스스로 용기를 불어넣기도 했다.
세 사람이 북한대표부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45분. 예상하긴 했지만 북한대표부 역시 대사와의 면담을 거절했다. ‘어머니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이곳에 도착한 장 군은 밖에서 기다리라는 안내원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문을 강제로 열려고 시도했지만 굳게 닫힌 문은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실랑이가 벌어졌지만 북한대표부가 끝까지 응대를 하지 않자 장길수 군은 진정서를 대표부 문 아래 틈새로 밀어 넣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장 군은 "어머니가 북한을 벗어나지는 못하더라도 죽지 않기만 빌겠습니다. 이 편지가 북한 대사와 관계자들에게 전달돼 제 소망이 이뤄지던지 안되던지 간에 마음의 부담은 약간 덜었어요. 자식으로서 엄마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노력을 결코 중단하지 않겠다는 제 자신과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라며 울먹였다.
<신용일 기자>
yish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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