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져든 것은 지난해 초부터다. 불황을 예고하는 각종 징후들이 나타나면서 서서히 하락하고 있을 즈음 9.11 테러는 미국 경제를 낭떠러지로 밀어버렸다. 특히 직접적인 피해 지역인 맨하탄은 거의 쑥대밭이 되다시피 했다.
다운타운 일대 한인 상가 역시 직격탄을 맞았으며 소호빌리지 인근의 한인상가와 32가의 한인타운 역시 지금까지도 완전 회복을 하지 못한 상태다. 지난 일년동안 주요 한인 비즈니스들이 보인 재기 노력과 앞으로의 전망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 다운타운
월드트레이드센터 부근의 자영업계는 풀턴스트릿과 낫소스트릿에 주로 몰려있다. 한인 상가는 델리와 의류, 네일살롱, 레스토랑, 리커스토어, 잡화점 등 대략 30여곳에 달한다.
9.11 테러는 대부분 소매와 서비스 업종에 집중된 한인 경제에 치명타를 안겨주었다. 테러 당시 인근 업소들은 온통 먼지로 뒤덮였으며 전기가 끊기고 통행이 금지돼 원상태로 복구하는데만해도 상당 기간이 소요됐다.
테러 발생후 한달 가까이 영업을 하지 못한 것은 물론 그 후에도 매출이 급감, 지금까지 회어려움을 겪고 있다.올초만해도 미국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지탱했던 다운타운의 한인 상가는 여름의 증시 폭락 등 경기 불황으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음 고생이 심하다.
풀턴스트릿과 낫소스트릿의 교차로에 위치한 ‘미라 파인주얼리’의 임기호 사장은 "그동안 꾸준히 재기 노력을 했지만 아직도 매출이 예전의 3분의1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계속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지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인근 풀턴스트릿 솔라스델리의 관계자도 "렌트 보조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며 "올해말까지는 매출 신장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불만스러워했다.
다운타운 일대 한인 자영업계의 가장 큰 불만은 정부의 보조가 예상에 못미친다는 것이다. 한인 자영업소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부가 발표한 보조금보다 적은 지원만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업소의 경우 테러 이후 시드코(SEEDCO)에서 받은 1만달러 융자와 다운타운에서 계속 영업을 하는 조건을 받은 무상 보조금 3,000달러가 고작이다.
반면 업소의 세금 보고 실적이나 보험 등에 따라 상당한 액수의 지원을 받은 곳도 있다.
’커레스 네일’의 경우 열심히 발 품을 판 덕에 2-3만달러의 무상지원금을 끌어내기도 했다.그러나 이 일대 한인 비즈니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희망이다.
미국과 맨하탄 다운타운 경기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이 뒤엉켜있기 때문이다.비관적인 입장에서는 월드트레이드센터의 거대한 유동인구가 사라지면서 소규모 자영업계의 생존 코드가 불투명해졌으며 이 지역의 발전 스케줄이 적어도 2-3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주요 고객층인 월스트릿의 인구가 주식시장의 하락으로 소비가 위축된 상태이며 주식시장의 회복 또한 변수이기 때문이다.그럴 경우 소규모 자영업계는 그 기간을 유지할 자본력이 문제가 된다.
반대로 정부와 민간업체의 적극적인 다운타운 활성화 정책으로 빠른 시일내에 경기 회복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있다.
커레스 네일의 여옥구 사장은 "아직까지 희망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제까지 해온 것보다 더 열심히 하다보면 다시 기회가 오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 소호·빌리지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왔지만 이제 부터가 걱정입니다."
9.11 테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테러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소호·빌리지 지역 한인 상인들의 한결같은 푸념이다.
빌리지에서 10년 이상 모자를 취급하고 있는 상인 김 모씨는 장사길에 나선이래 올해처럼 경기가 나쁘기는 처음이라며 한숨을 쉰다."예년 같으면 여름 휴가철이면 밀려드는 고객들로 업소가 북새통을 이루었는데 올해엔 절반 수준도 채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해마다 여름 휴가철을 전·후해 빌리지 지역의 한인 업소 마다 로컬 고객은 물론 타주나 외국에서 관광 온 고객들로 하루 종일 북적였으나 올해엔 찬바람이 불면서 썰렁한 분위
기다.
판매 부진은 빌리지 보다 그라운드 제로에 가깝게 위치한 소호 지역 한인 업소들에서 더욱 여실히 느낄 수 있다.여름 휴가 특수를 겨냥해 상가마다 각종 광고물이 현란하게 내걸려 있지만 정작 상인들에게는 대목의 풍성함은 찾아볼 수가 없다.
소호에서 여성 패션의류 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 모 사장은 "월드트레이드 센터 부근 상인들보다야 낫겠지만 올해 같은 불황은 처음 봤다"면서 "휴가 대목 경기가 아예 사라진 것 같다"며 초조해 했다.
소비가 위축되면서 매출액이 지난해보다 70%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게 이 지역 상인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현재 소호와 빌리지 지역에 운영 중인 한인 업소는 대략 250여개로 주요업종은 잡화 선물, 패션 의류, 그로서리, 네일, 포토, 리커 스토어 등이다.
이들 업소 중 지난 1년사이 불경기로 경영난에 시달리다 문을 닫은 업소는 10여 군데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테러에 따른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돼 고객들의 씀씀이가 작아진데다 이 지역의 주요 고객 층인 관광객이 30% 이상 급격히 감소하는 직·간접 피해로 인해 대부분의 한인 업소들이 여전히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또한 불경기와는 상관없이 꺾일 줄 모르고 오르고 있는 렌트와 인건비 등 영업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것도 한인 상인들을 어렵게 하는 직접적 요인이 되고 있다.
김재일 전 소호·빌리지 상인번영회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9.11 테러로 인한 충격에서 다소 헤어나고 있는 상태이기는 하지만 매출 면에서는 오히려 테러 당시보다 더 고전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지금까지야 간신히 버텨왔지만 만약 가을, 겨울 시즌에도 이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 지역을 이탈하는 한인 상인들이 눈에 띄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소호·빌리지 상인 번영회에 따르면 실제로 타 지역으로 업소를 이전하거나 업종 전환을 고려하는 한인 상인들이 늘고 있다.양명상 소호 빌리지 상인번영회장은 "불경기가 장기화되면서 업소 운영을 더이상 유지하기 힘들어하는 한인 점포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면서 "대부분 퀸즈 또는 뉴저지 지역으로 업소 이전이나 전업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 32가 한인타운
한인타운에 집중된 도매업소와 요식업소, 유흥업소 등은 9.11의 후폭풍을 강하게 맞았다.브로드웨이 지역 한인 도매업체의 매출은 지난 일년동안 격감했다. 9월 이후 추수감사절과 연말 시즌을 공허하게 날려버린 한인 도매업계는 기대를 걸었던 올초부터 기업 회계부정사태로 야기된 증시 폭락으로 여름 시즌마저 낭패를 당했다.
특히 일년내내 며칠 단위로 경기 전망이 엇갈리고 있어 도매업체로서는 상품 주문을 종잡을 수 없다는 푸념이 터져나왔다. 모자를 취급하는 S업소 한 관계자는 "경기에 대한 불안감으로 소비가 위축된 것이 완연하게 느껴진다"며 "심지어 이젠 도매가 아니라 소매하는 것 같다는 말이 자조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관광객의 감소는 한인타운의 요식 및 여행업계에 이중고를 안겨주었다.맨하탄 32가 근처의 한인 식당들은 심각한 경영난으로 매물로 나온 업소가 최근 3~4개에 달하고 있다.
E식당의 P사장은 "한국 관광객 뿐아니라 한인들도 맨하탄보다는 플러싱이나 뉴저지에서 주로 모임을 갖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저녁이면 한인들이 빠져나가 도심 공동화 현상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32가의 한 레코드점 관계자는 "저녁시간이면 젊은이들만이 삼삼오오 모일 뿐 북적대는 모습이 사라졌다"며 "소비성이 강한 30~40대 자영업자 및 관광객들이 확연히 줄었다"고 말했다.
높은 렌트로 한인 도매업소 및 사무실 이전도 늘고 있어 경기가 개선될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현재 브로드웨이 한인 도매업소들이 추진하고 있는 도매상가 이전 계획은 이같은 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또다른 모습이다.
브로드웨이 한인상가 이전을 추진하고 있는 참봉 무역 허순범 사장은 "지나칠 정도로 높은 렌트와 타민족과의 경쟁 외에도 바이어들이 맨하탄에 들어오는 것을 꺼려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맨하탄의 한인 자영업계 경기는 이미 하락세다.
실제로 청과와 식품 등 한인자영업을 포함, 뉴욕시의 소규모 자영업계의 폐업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퇴거 판결을 받은 업소들은 비싼 렌트와 함께 지난해 9.11 사건 이후 매출이 감소, 경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파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뉴욕시 자영업계의 위기는 지난 8일 뉴욕시 감사원이 밝힌 자료에서도 나타난다.감사원의 통계에 따르면 사무실과 자영업소의 공실률은 지난 1년사이 2배 이상 늘었다.
이밖에도 시정부가 예산 적자를 보충하기 위해 담배세 등 세금을 인상하고 자영업소에 대한 각종 티켓을 발부하고 있어 맨하탄 지역 자영업계의 어려움은 더욱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인타운의 한 전자업소 관계자는 "인위적으로 한 두 개 업소들의 노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요즘 최대 관심사가 미국 경기 동향으로 하루빨리 경기가 회복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주찬·김노열 기자>
■[인터뷰]
▲’커레스 네일’ 여옥구 사장
"발품팔며 어려움 슬기롭게 극복"
"열심히 쫓아다니면서 용기와 희망을 얻었습니다."
맨하탄 다운타운 낫소스트릿에 위치한 ‘커레스 네일(Caress Nail)’의 여옥구(45) 사장은 월드트레이드센터 인근 한인들사이에서 ‘억척이’로 통한다.
각종 융자나 무상보조금 등을 꼼꼼히 챙기고 ‘발 품을 팔면서’ 열심히 따라다닌 덕에 테러 초기 비즈니스의 어려움을 나름대로 슬기롭게 극복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엠파이어스테이트디벨롭먼트로부터 5일치 매상을 받은 것을 비롯, SEEDCO의 무상보조금 8,000달러, 구세군으로부터 1,500달러, 비즈니스보험으로 1만달러 등 이용할 수 있는 각종 보상금을 이용,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커레스 네일이 문을 연 것은 지난해 5월, 9.11 테러가 일어나기 불과 4개월 전이다. 월드트레이드센터의 인구가 워낙 많다보니 업소가 위치한 낫소스트릿과 존스트릿 등에 네일업소가 6개 정도 있어도 충분히 장사가 잘 된 편이었다. 직원 5명으로 시작한 업소는 9.11 직전까지 14명까지 늘었을 정도다.
9.11 테러는 여 사장에게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 당시 월드트레이드센터의 붕괴 모습을 출근길에 지켜보았던 여 사장은 큰 쇼크로 건강까지 상했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경제적 어려움은 더욱 무서웠다.
비즈니스를 2주동안 열지 못하고 월드트레이드센터 바로 뒷편의 집에도 들어가지 못했다.좌절감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와 민간 차원의 꾸준한 지원이었다. 여러 단체와 정부에서 찾아와 지원을 약속하고 조금씩 지원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끝까지 내 비즈니스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생활과 재기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지원금을 찾아다니면서 한번에 끝난 일은 없었다고 한다. 이런 저런 서류들을 제출하기 위해 한 곳을 여러 차례 다니면서 점차 용기를 얻었다.지난해 가을부터 봄까지 매출이 60% 이상 떨어졌지만 열심히 홍보하고 일을 한 덕에 지금은 지난해보다 30% 떨어진 매출까지 끌어올렸다.
여 사장은 "지금도 이곳을 떠나려는 한인들이 많이 있다"면서 그러나 "힘들지만 끝까지 준비하고 노력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찾아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주찬 기자>
▲’세자매’ 식당 민병희 사장
"힘들지만 최선댜해 지켜낼터"
“안 떠날 겁니다. 1년 동안 사업이 너무 힘들었고 아직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지만 처음으로 시작한 사업인 만큼 최선을 다해 지켜내고 싶습니다.”
월드트레이드센터에서 한블럭 떨어진 곳에 위치한 유일한 한인식당인 ‘세자매’의 민병희(미국명 대니 민· 32, 스태튼 아일랜드 거주) 사장은 지난 99년 오픈 후 성공리에 운영해오던 식당을 9.11 테러로 한순간에 잃을 뻔해 앞이 깜깜했다며 당시를 회상한다.
민 사장은 테러사건도 충격적이었지만 당장 고객의 90% 이상을 차지하던 월드트레이드센터에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모두 사라져 과연 손님이 한 명이라도 찾아와 줄까 두려워했던 지난해 10, 11, 12월을 기억하면 아직도 아찔하다고 말한다.
사건 직후 한달 동안 문을 닫은 후 다시 오픈했을 때 10월 한달간 식당을 찾아온 손님은 기존의 10~20% 정도, 현상 유지는 커녕 적자경영에 허덕이고 있을 때 민 사장을 지탱해준 것은 가족의 후원과 인근 한인업소 업주들끼리의 정신적 유대감이었다.
우선 랜드로드가 렌트비를 낼 수 있는 만큼만 내라고 해준 것이 재도약의 시작이었다. 또 보험회사로부터 3만달러의 보험료를 WTC 리커버리 펀드와 시트코에서 각각 1만 달러의 보조금을 받았다. 이밖에 1%의 저이자로 9만 달러를 융자받은 것이 민 사장에게는 세자매를 지켜낼 수 있는 큰 힘이었다.
1년이 지난 현재 75~80% 정도 사업을 회복했다는 민 사장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와 메릴린치에서 각각 5, 3년 근무한 경험이 있는 2세여서 언어소통이 쉽고 미국의 제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게 재궤도로 진입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민 사장은 요즘 판매향상을 위해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탕수육과 깐풍새우 등의 메뉴를 추가하고 대형 이벤트를 위한 출장서비스 및 뷔페 도입 등 새로운 사업 구상에 한창이다.
세자매 식당의 분위기를 향상시키기 위해 오디오 시스템을 직접 구입하고 보다 나은 사업관리를 위해 전산관리 컴퓨터 시스템인 POS(Point of Sale)를 다음주 중 도입한다."아직도 힘들지만 할머니가 손수 도와주신 창업 당시를 떠올리며 세자매를 지켜내겠다"고 다짐한다. <김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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