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사망자 16명중 단 한명만 신원확인
희생자 보상금 지급받은 유가족 거의 없어
9.11 테러로 사랑하는 아들, 딸, 부모를 잃은 한인 유가족들은 참사가 발생한지 1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떠난 혈육에 대한 그리움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지내고 있다.
슬픔을 이겨내고 새로운 삶을 찾으려고 노력하던 몇몇 유가족은 악몽의 9월11일이 다가오자 또다시 충격에 휩싸여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뉴욕 월드트레이드 센터 테러로 숨진 뉴욕과 뉴저지 일원의 한인 16명 중 현재까지 캔터 피츠제럴드사에 근무하다 희생된 추지현씨 단 한 명만이 DNA 검사 등을 통해 시신 일부가 확인돼 공식 사망한 것으로 기록됐을 뿐 나머지 15명에 대한 사망 확인은 되지 않았다.
테러 사건으로 인해 숨진 피해자의 정확한 수치도 1년이 다가오는 현재까지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뉴욕시 정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사망한 것으로 집계된 명단은 총 2,819명이나 이중 실종신고가 접수된 78명은 사망으로 추정할 수 있는 정확한 정보나 자료 등이 불충분해 아직까지 사망자에 포함되지 않았다.
뉴욕시 정부는 9.11 사건 1주년 기념행사가 열리는 11일 희생자 2,819명의 이름을 한 명 한명 씩 읽어 내릴 계획이다. 이 때문에 한인 유가족 대부분은 고인의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슬픔의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정부나 민간차원에서 이뤄지는 희생자 보상금 지급과 관련해서도 까다로운 보상금 신청등의 문제로 인해 현재 보상금을 지급 받은 유족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슬픔에 잠겨 고통의 나날의 보내고 있는 유가족 중에는 슬픔을 뒤로하고 다른 유가족들에게 용기와 희망, 앞으로의 삶에 대한 의미를 심어주는 이들도 있어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당한 이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아이비리그 코넬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골드만 삭스 등을 거쳐 월가에서 벤처 기업을 운영하다 사고 당일 사업 설명회를 하러 월드트레이드센터를 방문했다가 변을 당한 외아들 스튜어트 리(31·이수진)씨를 잃은 이병교 팰리세이즈 팍 노인센터 관장이 대표적 인물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로 생각해 온 아들을 잃은 충격과 슬픔으로 다른 소중한 삶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다"며 "유가족의 심정을 가장 잘 아는 처지인 만큼 다른 한인 유가족들에게 항상 희망을 잃지 말아달라고 전화도 하고 만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관장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수없이 많았으나 어렵게 살아온 미국에서의 삶에 대한 소중함과 믿음을 잃지 않았고 아들을 위해서라도 항상 기쁘게 생활하려고 노력해 왔다"면서 "그러나 한인 유가족 대부분이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어 너무 가슴이 아프다. 얼마 전에는 당국에서 딸의 신체 일부를 찾았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유가족의 애절한 얘기를 듣고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고 울먹였다.
뉴저지주 전역 각 타운에 있는 노인센터의 유일한 한인 관장이기도 한 그는 테러 참사 이후 아들 시신을 찾기 위한 DNA 테스트 때문에 반나절만 센터를 비우고 단 한차례도 결근을 하지 않았다. 3
00여명에 달하는 노인들에게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정성을 다해 봉사해 왔다. 또한 슬픔을 뒤로하고 노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뉴욕한국일보에 보도돼 한국의 KBS 한민족리포트 프로그램에 1시간여 동안 집중 방영되기도 했다.
9.11 한인유족회 김평겸 회장은 최근 지난 6월 설립한 9.11 한인추모재단이 사회각계에서 귀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슬픔에 잠긴 유족들이 새 삶을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재단의 활성화를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둘째아들 재훈군을 먼저 떠나보낸 김 회장은 "9.11 테러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은 아직도 여전히 남아있다. 비탄에 빠진 한인 유가족들에게 다소나마 용기와 희망을 주고 유족들간에 우애를 다지고 위로하는 차원에서 추모재단을 설립하게 됐다"며 "재단이 추진하는 가장 핵심적인 사업은 유가족 당 보상금의 10% 가량을 모아 어렵고 힘들게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해주는 장학사업이다. 형편이 어려운 희생자 유가족 자녀를 우선 지원한 뒤 일반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희생자 유가족들이 펼치는 장학사업은 사회 어려운 곳에 사랑의 손길을 전한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추진하고 사회의 귀감이 될 수 있는 지원사업으로 육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각오"라며 "실의에 빠진 유가족들이 원만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한인사회의 따뜻한 사랑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인 희생자들의 합동묘역 조성도 한인유족회의 노력으로 가시화 되고 있다.현재 유족회는 유가족 상당수가 노령이고 일부는 휠체어와 간호사를 동반해야 거동이 가능한 점을 고려, 뉴욕이나 뉴저지 일원에 합동묘역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
아직도 슬픔에 잠겨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는 한인 유가족들에게 한인사회의 따뜻한 사랑과 정성의 손길이 전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다함께 노력해야 할 때다. <김대영·정지원 기자>
■ 한인 희생자 유가족들 어떻게 지내나...
테러 발생 직후 사고현장 최근접 지역까지 접근, 생생한 현장 소식을 전한 본보 취재진은 그동안 한인 유가족과 아픔의 세월을 함께 했다.
사고 현장 접근이 완전히 통제된 테러 발생 100일째 본보 취재진이 뉴욕시 당국으로부터 특별 허가를 받아 소형버스로 유가족들이 비탄의 참사 현장을 방문했다.
당시 현장에서 참상을 목격한 유가족들은 통곡을 했고 "내딸, 내아들, 부모님"을 목메어 불렀으며 혹시 살아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믿음, 안타깝고 애절한 사연이 주변을 울렸다.그러나 참사 1년이 흐른 현재 유가족 대부분은 사랑했던 가족이 이 세상에 없고 고인이 됐다는 현실을 인정했다.
유가족들은 가족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또 한번 슬픔에 잠겼으며 수십년 간 피와 땀으로 일군 삶의 터전이 된 비즈니스를 닫은 이들도 하나둘씩 생겨났다.
종가집 장손이자 사고 직전 부모님을 위한 효도관광을 시켜줄 계획을 잡았다가 참변을 당한 강준구(ESPPED사 근무)씨의 부모는 사고 발생 후 100일째까지 아들의 사진을 들고 맨하탄 곳곳을 돌며 슬퍼하다 그 뒤 비즈니스를 정리한 채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LG 화재보험 뉴욕지점장이었던 남편 구본석씨를 잃은 미망인과 자녀들은 사고 이전에 신청해 놓았던 영주권이 아직도 나오지 않아 신분관계까지 겹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회사에서 지원하던 주택거주비용도 중단돼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외동딸 박계형(메트라이프 근무)씨를 잃은 어머니 신정혜씨는 아직까지 건강이 좋지 않아 힘겹게 생활하고 있다. 세탁소에서 일하는 아버지 박명규씨도 생활고에 허덕이며 비탄에 잠겨있다.
유족 대표인 김평겸 회장은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며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으나 부인과 가족들이 항상 슬픔에 잠겨 있어 여전히 아픈 가슴을 쓸어 내리며 지낸다.
외아들을 잃은 이성재 웨스트우드장로교회 목사와 이병교 팰팍 노인센터 관장 부부는 자택에서 틈나는 데로 아들을 위한 기도에 임하는 등 신앙생활을 통해 아픔을 달래고 있다.
이밖에 송원형씨와 이종민씨, 조경희씨, 로렌스 김씨, 린다 이씨 등 참변을 당한 이들의 유가족들도 "가족의 사망을 인정하고 슬픔을 이기기에는 너무도 힘이 들고 가슴이 아프다. 세월이 흘러도 슬픔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며 흐느꼈다.
<김대영·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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