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이브센트 등교길 참사 목격 스티브 박. 서민지군
"가족. 주위분 소중함 깨달아"
“앞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전문인으로서의 길을 걸어도 지난해 9월11일 학교 건물 구름다리에서 목격한 9.11 테러 사건은 항상 가장 큰 기억으로 저희를 따라다닐 것 같아요.”
무너진 월드트레이드센터와 2∼3 블럭 떨어진 곳에 위치한 명문고 스타이브센트 12학년에 진학하는 스티브 박(17, 베이사이드 거주)군과 서민지(17, 맨하탄 거주)군이 9.11테러 1주년을 맞는 기분은 남다르다.
대학진학과 진로고민 등으로 바쁜 11학년 신학기가 1주일도 채 지나기 전 발생한 테러사건을 인근에서 직접 목격, 대피했을 뿐 아니라 학교가 문을 닫아 3개월간은 브루클린 테크니컬 고교에 임시 등교하고 정기 카운슬링을 받는 등 특별한 1년을 지냈기 때문이다.
스티브 박군은 “학교 건물을 잇는 구름다리 사이로 보이던 월드트레이드센터가 사라진 게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며 “테러사건으로 정신적 충격도 받고 학업에 지장도 있었지만 200여명의 한인 학생들이 서로 도와가면서 대학진학을 위한 시험준비와 정보교환을 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뜻깊은 계기도 됐다”고 말한다.
콜럼비아 공대 또는 카네기 멜론 공대를 진학해 공학박사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서민지군은 “테러 이후 가족과 주위사람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며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고 한다.
힘들 때일수록 서로 도와야한다는 것을 체험한 이들은 이번 9월 신학기에 선배로서 한인 후배들의 진학과 학교활동을 도와주고 동급생끼리는 정보교환, 의사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스타이 한인학생클럽’을 발족할 계획이다.
한인학생들이 명문대 진학을 위한 수험생활로 바빠 기존에 있던 한인 학생회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계획을 세웠다는 이들은 “9.11사건은 명문대에 진학해 전문인으로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중한 사람들끼리 서로 돕는 것이 더욱 보람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고 입을 모은다. <김휘경 기자>
■출근늦어 목숨구한 그렉 남씨
"여유가지고 즐겁게...인생관까지 변해"
월드파이낸셜센터 내에 위치한 딜로이트&토쉬사에서 시니어 애널리스트로 근무하고 있는 그렉 남(27, 브루클린 팍슬로브 거주)씨는 9.11 테러 이후 달라진 점을 묻자 지난 1년 동안 변하지 않은 점을 찾기가 더 어려울 만큼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대답한다.
“가족, 동료, 교우 관계뿐만 아니라 인생관 자체가 완전히 변했다”며 “성공과 명예, 자아실현을 위해 확실히 짜여진 인생계획을 갖고 살았었는데 테러 이후 가족과 주위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며 가능하면 여유 있고 활기찬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건 당일 출근이 조금 늦어 9시15분께 파이낸셜센터 인근에 도착한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는 남씨는 “불이 붙어 연기가 솟아나는 건물에서 수십명이 뛰어내리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 나면 누구나 각박히 경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어 “그날의 경험이 너무나 생생해 벌써 9.11 테러 추모 1주년이 다가온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지난 1년 동안 당시 상황을 말하기 꺼려하던 동료들이 요즘은 부쩍 9.11 테러 사건을 화제로 삼는다”고 이야기한다.
남씨가 근무하는 딜로이트&토쉬사는 사건 직후 4개월간 뉴저지로, 그 이후에는 타임스퀘어에 위치한 메리옷으로 사무실을 옮겼으며 지난 5월20일에야 다시 파이낸셜센터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사건 때문에 겪은 정신적 충격 뿐 아니라 테러 여파로 인한 불경기와 미 경기 침체로 지난 12월 있었던 대량 감원 때가 가장 힘들었다”며 “현재는 태풍이 지나간 후 일상으로 돌아온 자세로 일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 “어려운 시기를 함께 보낸 동료들과 더욱 가까워지고 긴밀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작업환경이 마련된 것이 테러 이후 변한 가장 긍정적인 점”이라고 덧붙었다. <김휘경 기자>
■출근길 법원들러 화피한 앤드류 박 변호사
"다운타운에 대한 강한 애정이..."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 같습니다."
데이빗 피터슨법률회사의 앤드류 박(한국명 박인호) 변호사가 맞는 9.11 테러 1주년의 감회는 남다르다.
박 변호사 자신이 지난해 테러 사건의 희생자가 될 뻔했기 때문이다.
당시 박 변호사가 근무하던 회사는 월드트레이드센터 1호 건물(노스타워) 84층에 있었다. 오전 8시45분 첫 테러 비행기가 충돌한 곳은 이 건물의 86층이다.
일상적인 날이었으면 박 변호사는 이미 오전 8시30분에 출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날 밤 갑작스럽게 법원에 갔다가 출근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테러 소식을 법원에서 들었다.
이 때문에 9.11 테러 첫날 박 변호사는 사망자로 분류되기도 했었다. 바로 옆 사무실에는 LG증권이 있었다. LG 증권의 구본무 지사장은 변을 당했다.
’기적적으로 살았다’는 개인적인 안도감은 1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하지만 달라진 것은 가족과 동료,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다.
박 변호사는 "아직도 꿈같다"고 말한다. 인생이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그의 아내는 당시 임신 7개월째였으며 이후 태어난 아들은 어쩌면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할 뻔했다.
사는 방법도 달라졌다고 한다. 가능하면 여유있게 넉넉한 마음으로 산다. 또 맨하탄 다운타운을 더욱 사랑하게 됐다.박 변호사는 "3,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희생된 것을 잊지 말고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이곳을 다시 부흥시켜야 한다는 강한 애정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빌리면 ‘죽을 뻔도 했고 직장(회사)이 망할 뻔’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여준 애정과 긍지, 애국심이라면 다운타운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을 갖고 있다.
사고 직후 큰 어려움에 처했던 데이빗 피터슨법률회사 역시 브루클린이나 뉴저지로 이사하지 않았다. 각종 관련 파일 등이 모두 날라가면서 파산 위기에까지 몰렸지만 피터슨 변호사가 사재를 털어 재기의 힘을 모았다.
박 변호사는 생후 7개월된 아들이 너무도 사랑스럽고 가족과 주위 친지, 동료 등 모든 사람들이 좋다. 그리고 1년전 전망 좋은 84층에 있던 그의 사무실은 현재 5층이다. 그래도 마냥 좋다. <김주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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