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11테러로 희생된 아들을 추모하여
▶ 이화옥 <9.11테러 희생자 한인유족회 김평겸회장 부인>
나의 사랑하는 아들 앤디에게
1년 전 지금 이 순간, 넌 사무실에서 그 날의 일을 막 시작하고 있을 시간이네. 몇분 후에 있을 우리와의 이별도 모른 채 넌 평범한 또 하루를 맞이하고 있었겠지.
아, 꿈이어라. 가슴을 찢고 울부짖은 들.
오늘 새벽 우리 세 식구는 함께 예배를 보고 아빠와 형은 그라운드 제로로 갔어. 엄마는 아직도 도저히 그 곳을 가볼 수가 없어 집에서 너와 함께 하기로 했단다. 시간이 지난 후 기념비가 선 후에 가 볼게.
혼돈과 불확실, 절망과 좌절의 한 해. 아스라이 스며드는 연민에 가슴이 젖어들고 그리움은 어느새 슬픔이 되어 가슴을 파고 들고...
어찌 하오리까.
어쩌다 내 아들 ANDY가... 안아보고 싶고 뺨을 비벼보고 싶구나.
외할머니는 하늘 나라에서도 악보를 들고 열심히 일하는 너의 모습만 보인다 하신다. 널 키워준 외할머니가 얼마나 널 보고싶어 하시는지 알지?
나의 자랑스런 아들 ANDY야, 네가 봉사하던 Bethany 교회에서의 Memorial Service 때는
교회 문밖까지 의자를 놓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오셔서 우리의 슬픔을 같이 하여 주셨지.
아빠 친구, 친지, 교우들, 형 친구들, 그리고 Youth Group 아이들, 컬럼비아 친구들, 애통해 하는 그들로 너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볼 수 있었단다.
그 날, 너와의 추억이 담긴 조그만 책자를 친구들과 학생들이 만들어서 우리들을 감동시키고 지난번 직장이었던 G.S. Cowen Co.에서 온 Secretary는 처음부터 끝까지 흐느끼더란다.
매일 아침 너의 방에 들어가 너를 본 후 하루를 시작하는 아빠. 너의 방은 네가 떠난 그 날과 변함없이 네가 놔두고 간 그대로 있고 분신같이 교회 갈 때면 꼭 들고 다니던 기타는 외로이 주인을 기다리고, 신나서 새로 산 테니스 라켓을 설명하던 그 모습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는데... 몇번 사용하지도 않은 스노우 보드 등 모든 것이 슬프디 슬프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건만 주인인 너만 돌아오지 않고 있구나.
3월25일은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새 교회의 헌당예배에 참석했어. 심수영 목사님께서 아빠, 엄마, 형을 초청하여 갔었지. 친구 전도사가 있는 그 곳에 무보수로 3번 부흥회에 음악을 인도 했었다구. 10시간씩 드라이브로, 혹은 비행기로.
그러나 그 교회가 입당 2주만에 전소되어 아픔속에 있을 때 너는 헌금과 편지로 위로를 드렸고, 네가 보내드린 헌금이 성전 건축의 씨앗이 되었다는 목사님 말씀. 너의 노랑 메모지, 편지를 성경책 안에 넣고 다니셨는데 이런 일이 일어났다며 묻어나는 너의 따뜻한 마음에 가슴이 저며들고, 목사님께서 네가 올 때마다 얘기 나누시는 중에 자주 쓰던 ‘awesom’이라는 단어를 기억하셔서 성전 오른쪽 벽에 커다랗게 ‘God is Awesome’이라고 써 놓으셨더라. 엄마도 네가 그 단어를 잘 쓰는 걸 알고 있었기에 기억해 주시는 목사님이 고마워서 울컥 가슴이 메어 오더라.
그 날 헌당예배(Inaugural Service)는 너의 메모리얼 서비스 같았어.
나의 awesome한 아들아, 너는 짧은 생애였지만 숭고하고 고귀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 떠난 것 같아 너의 Scholarship Fund에 보탬이 되라고 봉투까지 주시고 몇 번 안되는 너와의 만남이었음에도 오랜 만남이었듯 awesome이라는 단어도 기억해 주시는 목사님들과 교인들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우리 가족의 연중행사로 정해 놓았던 푸른 숲길, 맑은 공기, 많은 바위 Mohank 하루의 Trip. 그동안 하지 못했던 서로의 얘기를 나누며 지내는 날로 정했던 그 날도 네가 없음에 의미를 잃고 지나가고,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아물지 않는 상처는 언제나 새 살이 돋아날까.
주어진 삶을 질질 끌고 황폐해진 삶을 힘겹게 일으켜 세우며 살아온 한 해. 도저히 이해, 용서할 수 없는 그들의 만행을 복수할 수도 없으니 어찌 해야할까.
아, 긴 악몽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이라 믿고 싶고 애원했건만.
없어진 사람에게 가장 감사한 것은 잊어주는 것이라고 누가 얘기했다는데 잃음을 당한 사람의 말이었을까? 담담히 세월이 흐르고 흐른들 어찌 너를 잊으리.
절망과 좌절의 한 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변하게 하시는 주님, 그날 그 시간에 어디 계시다 온 시간 정성 다 바쳐 사랑을 드린 그 분. Andy는 짝사랑한 것이었을까.
네가 없어도 창문 밖으로 먼 하늘은 성큼 다가오고 맑고 파란 창공에 두둥실 떠있는 구름, 오늘은 맑은 날씨인데 웬 바람이 그렇게 불어댔는지. 죄없이, 티 없이 순간에 사라져버린 영혼들의 몸부림이었을까.
그라운드 제로.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추모행사. 성조기, 애국심, 추모열기, 비통해 하는 희생자 가족의 모습들. 한 사람 한 사람 희생자의 이름이 호명되고 너의 차례, Andrew Jae Hoon Kim 온몸이 슬픔으로 철철 흘러 넘치고 내 작은 가슴속엔 너와의 추억으로 출렁이고 아직도 네가 없음이 믿기지 않는데.
너와의 아쉬운 26년 동안의 만남. 너의 사진을 붙여놓고 매일 본다는 PAT NAM 전도사는 아들을 낳으면 Andy라고 이름을 짓겠다며 너와의 진한 사랑을 나타내시고. 네가 꿈에 나타나 아빠, 엄마, 형에게 ‘Good bye’를 못하고 떠나와 미안하다고 했다면서 “이 녀석아, 뭐가 그리 급해서 엄마 앞에 너의 생을 끝냈니?
엄마의 조그만 소박한 행복, 분노와 서러움으로 바뀌게 하고 너의 흔적으로 쓰라린 가슴 붙들고 살게 만들어 놓고 지금 Gill 엄마가 아픈 몸으로 저녁준비 하지 말라며 여러가지 샐러드를 만들어 왔어. 따뜻한 사랑에 또 한번 붙들고 같이 울고, 나와 같이 오늘 지내겠다며 day off까지 받은 Albert 엄마, Benjamin 엄마, Henry 엄마. 오늘 너와 둘이만 있겠다며 혼자 있게 해 달라 했지.
고마운 사람들.
역경을 통해 진정한 친구를 안다고 했지. 사방이 다 어둡고 캄캄할 때 초롱불 하나 들고 홀연히 손잡아 주는 그들이 있기에 따뜻하고 넓은 언덕 뜰이 있어 기대고 같이 울 수 있는 그들이 있기에.
테러가 왜 일어났느냐는 숙제,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숙제. 여러 모양의 아픔과 고통이 있겠지만 어떻게 그런 간악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까. 탄저균과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려웠던 나날들. 공포와 불안의 1년. 어떻게 이해하며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화합할 수 있을까.
민족과 종교, 골 깊은 갈등, 파괴, 증오의 불을 어떻게 끌까. 인류문명의 영원한 화약고인 중동지방, 인류 평화의 절대적 열쇠를 쥐고 있는 그 곳. 힘겨루기 보복과 분쟁의 주고 받음이 언제 끝날까. 공존하는 평화로운 세상은 언제 이루어질까. 질그릇 보다 연약한 인생.
먼 훗날 뒤돌아 보며 후회할 일이 많지 않길 바라는 우리의 바램인데.
형보다 어릴 때 잘 먹고 잠 잘 자고 순하고 튼튼하여 엄마를 힘들지 않게 했던 너. 이 때까지 잘 커 줘서 자랑스러웠던 너. 퇴근하여 매일 집에 오는 너를 몇달 못 본듯 내가 반긴다며 엄마 친구가 놀렸었지.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을 감출 수가 없었나봐.
Andy야, 엄마는 너한테 얘기해 주고 싶어. 지나온 세월이나 지금이나 미래에도 너는 나를 자랑스럽게 만들었고 항상 자랑스럽기만 한 나의 둘째 아들이라고.
우리 온 가족이 힘들지만 오늘도 감사하며 충실히 사는 것이 너를 더 기쁘게 할 줄 믿어. 네가 남기고 간 너의 모든 것을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쓸려고 하고 있어. 네가 온 정열을 기울여 가르쳤던 ‘Youth Group’과 ‘Praise Team’ 아이들에게 그들이 먼 훗날 성장했을 때에도 따스함으로, 온유함으로, 그리움으로 곱게 물들은 Andy 선생님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Andy야, 너는 나의 곁에 항상 함께 있고 나는 너와 항상 함께 한다는 거 잊지 마. 자꾸만 보고 싶으니 어쩌니. Andy야! 의연하게 살게.“내 황폐한 영혼의 뜰에 단비 내려주소서”창밖의 먼 하늘을 아픈 가슴으로 쳐다보며.
아빠, 엄마, 형
200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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