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물 산책
▶ "탈북자 돕는 일이야말로 통일운동"
“중국에서 숨어지내는 약 20만명의 탈북자는 21세기의 노예입니다. 마음대로 팔고 부려먹고 죽여도 말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런 탈북자들에게 살 길을 찾아주어야 합니다.”
유엔 고등판무국에 탈북난민 1호로 등록하여 지난 95년 한국에 들어온 이민복씨(46)는 이렇게 탈북난민의 처참한 실정은 전하면서 지원대책을 호소하는 탈북난민 수호자가 되었다.
그는 지난 16일 탈북난민보호 뉴욕협의회의 회장인 손영구 목사의 초청으로 3주간 방미, 뉴욕, 뉴저지, 커네티컷의 한인단체와 교회를 돌며 탈북자의 실상을 알리고 보호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오는 주말에는 워싱턴DC로 가서 연방의원 등 정계인사들과 민간단체를 찾아 탈북난민에 대한 지원을 호소한다는 것이다. 이씨가 이렇게 미국을 방문한 것이 이번으로 벌써 세번째이다.
황해도 서흥 출신인 이씨는 북한에서 누구 못지않은 열렬한 충성분자였고 엘리트 과학자였다. 김일성을 우상으로 숭배했던 그는 “쌀은 공산주의이다”는 김일성의 교시 한 마디에 전자공학을 하려던 꿈을 접고 농업연구원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생활을 희생하고 오직 농업 연구에만 매진하여 종자 개량에 매달린 결과 그는 북한 과학원의 준박사 연구원으로 종자분야의 권위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좋은 종자를 개량했는데도 실제 수확량은 30%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현장에서 식량증산 방법을 찾기 위해 지방근무를 자원했다. 이리하여 양강도의 김정숙군에서 6년의 세월을 보낸 후 얻은 결론은 공산주의의 집단농이 문제였다는 것이었다.
시험적으로 개인농을 하니 수확이 3~5배나 증가했다. 집단농을 개인농으로 전환하면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찬 그는 1990년 5월 이 결과를 김일성에게 편지로 썼다. 북한에서 중앙당 제 1호 편지라고 하는 것이다.
그 편지에 대한 회답은 의외였다. 3개월 동안이나 아무 소식이 없더니 과학원의 지도국장이 이씨를 직접 찾아왔다. 대답인 즉, 개인농 주장은 정치적 문제이니 다시는 그런 주장을 거론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명한 대책인데도 정치적 문제로 채택할 수 없다는 말은 절망적이었다.
그리고 그보다도 정치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건드린 이씨는 위험인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는 사실이 더욱 절망적이었다. 표면상 더 이상 처벌은 없었지만 그는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예감하게 되었다. “탈출을 하자” 이씨는 이제 살 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탈북 경위는 목숨을 건 탈출이었다. 탈출을 하다가 자신이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가족 연대 처벌을 하는 북한에서 가족이 겪을 일이 걱정이었다. 다행히 이혼한 경우는 처벌받지 않기 때문에 부인과는 이혼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탈북한 후 당국에 고발하라는 말까지 일러뒀다고 한다.
또 자기를 담당하고 있던 당비서, 행정책임자, 보위부원, 안전원(경찰)이 처벌받지 않도록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는 구실로 적을 뗀 후 아무 곳에도 등록하지 않은 무적 상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난 후 1990년 11월 19일 야밤에 벼랑을 타고 내려가 살얼음이 언 압록강을 헤엄쳐 건너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탈북 하루만에 길림성 장백현 장백시의 거리를 방황하다가 중국 국경수비대에 잡히고 말았다. 중국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수갑을 찬 채 북한에 압송되어 정치보위부 감옥에 수감됐다. 과학자로서 중국에 개방 이후의 농업정책을 보러 갔었다고 우겨댔지만 통할 리가 없었다.
아우슈비츠 보다도 더 무시무시한 보위부 감옥에서 인간 이하의 수모와 굶주림, 절망, 고통 속에 3개월을 지냈다. 그런데 때마침 유엔과 국제인권단체 관계자들이 북한을 방문하여 인권문제를 거론하자 김일성은 수감자들을 근로단체 조직에 맡겨 개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래서 이씨는 운 좋게도 3개월만에 석방됐다고 한다.
석방 후 3개월이 지나 어느 정도 건강이 회복되자 그는 재탈북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중국 조선족 동포의 도움을 받아 탈북했는데 사기에 걸려 여비를 날리기는 했지만 북한을 벗어날 수는 있었다.
연길과 훈춘, 길림 등지에서 농사일과 허드레일을 하면서 전전하다 보니 북한에서 일류 신사였던 그가 중국의 상거지 신세였다고 한다. 어떻게 하든 남한으로 가려고 남
한 방송국을 통해 망명의사를 전해도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남한 공관을 찾기로 했다.
중국에는 국교 수립 이전이므로 공관이 없었다. 모스크바에는 남한 공관이 있다고 해서 러시아로 가기로 했다.중·소 국경을 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련의 국경 초소를 피하기 위해 차가운 강물속에서 4일 동안 표류한 끝에 러시아 땅을 밟았다고 한다. 그는 하바로프스크에서 만난 캐나다의 한인 유영길 선교사의 극진한 간호로 건강을 회복하여 유 선교사의 안내로 모스크바의 한국공관을 찾아갔다.
그런데 한국공관에서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탈북자를 받아줄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빨리 공관을 나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는 으름장에 그는 한없는 실망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유영길 선교사를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기독교와 교인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열렬한 공산주의자였던 그는 비록 조국을 배신했지만 기독교에 대한 편견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유 선교사의 극진한 도움을 받으면서 이 의심이 차차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러시아에서도 북한으로 잡혀가는 탈북자의 신세는 중국이나 마찬가지였다.
갈 곳 없는 탈북자들이 위안을 받고 탈북자끼리 만날 수 있는 곳은 교회 뿐이었다. 그는 뉴욕에서 선교사로 온 조영철 목사의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그는 이 교회에서 한국 기자들을 만나게 되었고, 한국 언론에 북한 벌목공의 실태를 알렸다.
외국 언론에서도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취재했다. 한번은 월스트릿 저널의 여기자와 인터뷰를 하다가 자신의 신분문제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유엔 고등판무국에 등록하라고 일러주었다. 그래서 그는 탈북난민 1호로 등록을 했다.
이씨는 이런 과정에서 탈북자들이 가만히 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단결하여 떠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모스크바 탈북난민자협회를 만들어 탈북자 인권을 호소했다. 그 결과 이씨는 1995년 2월 18일 드디어 한국땅을 밟았고 다른 협회원들도 모두 한국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씨는 첫 눈에 보아도 사리 분명하고 영리하고 외곬의 엘리트 인상이다. 그는 두 체제를 넘나든 체험 속에서 공산주의는 공상주의라고 허상을 지적한다. 북한에서는 모두 누구의 것도 아니며 수령 한 사람의 것이며 금강산 관광대금으로 옥수수를 사서 인민을 먹이면 굶주리지 않을 수 있는데 그 돈이 군대에 들어가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북한인들은 중국을 천국이라고 하지만 중국에서는 남조선이 30년 앞서 있다고들 한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비교해 보니 남조선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니더라. 러시아와 미국을 비교하면 러시아인의 별장이 미국인의 허름한 창고도 못된다고도 그는 말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면서 공산주의의 실패 원인을 알았다고 했다.
공산주의는 인간이 영적 존재라는 본질을 무시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한국이 탈북자 문제를 이른바 ‘조용한 외교’로 다루려고 하는데 그건 틀린 생각이라고 했다.
다행히 국내외 인권단체의 활동과 국제여론 때문에 한국의 정책도 많이 달라졌다고 보는 그는 탈북난민보호 뉴욕협의회(회장 손영구), 탈북난민 셀터건립추진위원회(회장 이기천, 임형빈)와 같은 한인사회의 지원활동에 기대를 걸고 있단다.
“탈북자를 돕는 운동은 결국 통일운동입니다” 그는 북한인의 탈북은 막을 수 없는 추세이며 이것은 통일의 서곡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최근 통일출판사를 설립, 자신의 탈북 체험을 담은 「하늘아! 날 좀 살려다오」와 「당면 북한 선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란 책을 펴냈다. 앞으로 그의 행보는 탈북자 문제의 향방을 가름하는 이정표로 주목거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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