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처럼 자기가 하는 착한 일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지극히 꺼리는 사람들이 있다. 거짓을 동원해서라도 자기 자신을 과대포장해 선전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신선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야말로 세상에 제대로, 크게 알려져야 하는 존재라서 안타까움을 느끼곤 한다. 대부분 당사자의 고사로 선행이란 바로 저렇게 하는 것이라고 다른 사람들, 특히 후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조바심을 억눌러야하기 때문이다. 라미라다 소재 의류 및 식품류 수출입업체 ‘브래드캘’을 지난 24년간 운영해온 사업가 박병식씨(52·사진)가 올해 처음 시도한 방식은 ‘자선’에 관심을 가진 다른 업체들도 한번 눈여겨볼 만 하다.
이 회사는 지난달 27일, 부에나팍 로스 카요티스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어린이를 위한 자선 콘서트를 열었는데 이 일을 지난 5월부터 4개월동안 이 회사의 전 직원 14명이 모두 매달려 준비했다. 박 사장을 제외하면 최고령자가 35세고 평균 연령이 29세인 1.5세, 2세 한인들로 구성된 이 회사 직원들이 ‘자선’을 회사 전체의 목표이자 방침으로 받아들이고 1년에 한번씩은 추진하기로 결정했던 결과였다.
1971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백양 메리야쓰 무역부를 거쳐 당시 무서운 기세로 크던 신흥재벌 율산으로 옮겨 LA에 미주본부를 설립했던 박사장은 율산이 망하면서 브래드캘을 창업했다. 처음엔 백양의 미주본부 일에 주력하면서 완구, 원단, 전자등 한국 중소기업이 미국에 판매하기 원하는 것을 다양하게 수입, 판매하며 순탄하게 커 온 박사장의 회사는 현재 한국의 경쟁업체인 백양과 쌍방울의 공급업체일 뿐만 아니라 박세리 선수가 입어서 유명한 삼성 아스트라 골프 셔츠 마케팅에도 참여하고 있고, 아시아나 항공의 기내식 및 미국내선 항공기 케이터링, 한국의 호텔 식당 같은 곳에 각종 식품 및 식자재들을 수출하고 있다. 또 ‘켄우드’ 포도주의 한국내 공급권을 갖고 있기도 하다.
박사장은 80년대부터 거래하는 미국 회사들의 정착된 기부 문화에 접하고 참여하면서 언젠가 자신의 주도로 한미 커뮤니티에 기여해 볼 생각을 해왔는데 사업이 차츰 영어권으로 커가면서 4년 전 직원들을 2세 위주로 물갈이한 후 새로운 기업 문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2세들은 사고나 업무처리 방식이 우리 1세들과 아주 틀리더군요. 주어진 근무시간에만, 남에 상관 않는 개인주의적 자세로, 분업화된 자기 일만 하는 의식을 바꿔 놓아야할 필요를 느꼈습니다”고 말하는 박사장은 회사에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회사 업무 전반을 처리할 수 있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멀티 플레이어’ 인력을 키우는 일의 일환으로 ‘자선행사’를 도입하게 됐다고 했다.
“사회에서 돈을 버는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안 되는 기업이 있으니까 잘 되는 기업도 있는 것이니 사업이 잘될 때는 세상에 빚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도 기업이 사회에 하는 공헌이지만 내 사업과 직접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으면 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이 배운 다음에는 직접 수혜자와 만날 수 있는 비영리단체를 만들고 싶지만 우선 당분간은 비영리단체들을 돕기로 했다. 처음 시작은 작게, 경비를 제외한 이윤으로 ‘전국소아암재단’과 ‘동부한국학교’에 각각 1만달러 정도쯤 기부하기로 목표를 세웠다. 요즘 흔한 골프대회등 모금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콘서트로 정한 것은 참가자들이 돈만 내는 것이 아니라 대화하고 참여하며 삭막한 이민생활에서 정서적 공감대를 갖기를 바라서였지만 그보다는 박 사장 개인의 취향 때문이었다.
유치원 때부터 노래 잘한다는 소리를 줄곧 들으면서 광주에서 초, 중, 고교 내내 성악으로 입상도 많이 했던 박사장은 일반대학으로 진학한 대신 외국어대학 재학시 학비를 노래로 조달했다. 오디션을 거쳐 미 8군 무대에 섰고, 셸부르, 태평양, 유네스코 회관, 대연각 호텔 바이킹 클럽에서 팝송들을 불렀다. 1971년에는 당시 TBC 주최 대학생 재즈 페스티발에 나가 2등을 하기도 했다. 그때 1등은 연세대 학생으로 칸초네를 기가 막히게 불렀던 이미배씨(51)였다.
무엇이든 배울 기회가 많은 미국에서 박사장은 여가 시간을 이용해 레슨도 받고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이론등 음악 공부를 했다. 집에서도 매일 저녁 7시부터 2시간 정도는 공부와 연습에 할애하는등 음악에 우선순위를 둔 생활을 하며 가끔 결혼식 축가도 불렀고 성가와 자작곡으로 CD도 2장을 냈다. 그러다 2년 전에는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고집스럽게 자기 개성을 지키는 노래를 계속하고 있는 옛 친구 이미배씨를 LA로 초청하여 디너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광고도 내고 열심히 표를 팔았어도 경제적으로는 손해를 봤지만 옛 친구를 초청해 기쁘게 했고, 그의 노래를 듣는 이들에게 추억을 되살려준, 돈으로 살 수 없는 일을 했다는 만족을 대신 얻었다.
그때 찬조 출연을 했던 박사장은 이번 콘서트에도 이미배씨를 부르고 자신도 함께 무대에 섰다. 한국 가요계에서 상업성에 외면당해온 개성과 실력 있는 가수들에게도 무대에 설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어서였다. 오렌지카운티 주민들이 조금 더 생활이 자리잡히고 여유있을 것 같아 자신이 회원인 골프장 클럽하우스를 장소로 택했고, 티켓 판매는 비즈니스 관계가 있는 회사, 골프장 회원, 개인적 안면도 대거 활용했다.
결국 100달러짜리 입장권 350장이 모두 팔렸고, 거기에 무성경매, 경품권 판매등이 더해졌다. 당일 진행은 모두 직원들이 맡았다. 부인 헬렌 박씨(50)와 이 회사 직원이기도 한 두 딸등 세 딸도 모두 참여했다. “박사장도 알고 이미배씨도 대학 동문이라 김병철, 계영무, 강종구씨등 서울고 20회 동기들과 부부 동반으로 왔다”는 제임스 리씨(남가주 ROTC 골프회장)처럼 손님들은 대부분 중년층. 이미배씨의 우리 귀에 익은 칸초네, 샹송 명곡들에 이어 박사장의 클래식 팝송과 한국가요 메들리로 1부가 끝나고 2부는 관객들과 같이 즐기고 싶어 일부러 댄스곡으로 꾸몄다는 이미배씨와 박사장이 차차차, 블루스, 트위스트 리듬의 노래를 부르자 무대 앞은 춤을 즐기는 관객들로 가득 찼다.
주말 저녁에 생음악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는 것은 누구에게나 즐거움일 것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놀이를 제공하면서 모은 돈으로 남을 돕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을 준비하는 수고도 힘은 들었겠지만 즐거웠을 것이다. “좋은 경험이었어요. 내 아이들에게도 교육이 되어 보람 있었고 앞으로 500명, 800명도 모을 희망이 생겼어요”라고 말하는 박 사장은 언제고 은퇴하면 이 회사에서 비영리사업 자문으로 일하고 싶은 꿈도 키우고 있다. <김은희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