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핀리 브리스 모어스(Samuel Finley Breese Morse)는 전보통신기기를 발명했다.
그는 1791년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찰스톤시에서 태어나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의 로얄 아카데미에서 미술을 공부한 화가다. 그리고 뉴욕 NYU에서 미술과 디자인을 강의하였고 Vassar College의 교수이며, 학교의 창립 이사였다.
모어스는 주로 초상화를 그려서 제법 유명해졌는데 사진기가 발명되면서 초상화가의 운명도 마감되고 말았다.’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모어스가 배를 타고 여행하다 집에 연락할 일이 생겼다. 그러나 연락할 방법이 없어 안절부절 못했다. 이를 계기로 원거리 통신 연구에 몰두, 전보기를 발명하게 되었다.
모어스의 부친은 유명한 목사였다. 친구가 많아서 아들의 출세에 도움을 많이 주었다고 할 수 있다.모어스는 전보기 뿐 아니라 전보통신 암호도 발명하였다. 서부활극에 은행강도가 은행을 털어서 기차로 달아날 때 철로 옆에 있는 전신주에 올라가 전선을 끊고 나서 달아나는 장면을 보았을 것이다.
이것은 모어스의 전보통신장치를 마비시켜 추격대를 따돌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모어스는 이러한 폐단을 우려해 전선줄을 땅속에 묻었다. 이 공사를 하면서 고소사건으로 법원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모어스의 전보통신은 국회의 동의를 거쳐 전국을 거미줄처럼 연결했다. 바야흐로 세상에서 가장 빠른 통신시대가 열렸다. 이것도 서로 빼앗고 빼앗기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가장 친했던 친구인 동업자 스미스가 배반했다.
전선을 묻어주던 컨트랙터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결국 모어스를 몹시 괴롭히던 갖가지 사건이 마무리돼 통신이 시작되었다.이 기계의 발명은 세계통신혁명 시대로 이끌었다. 결국은 건전지를 이용한 무전 전보통신도
할 수 있게 되어서 전쟁 때도 아주 중요하게 사용하는 발명품이 되었다.
이러한 통신기기 발명에 힘입어 오늘날 한국의 초등학교 학생도 갖고 다니는 핸드폰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전쟁시에는 아직도 비밀암호문을 이용하여 통신을 해야 할 때는 모어스 부호(Morse Code)를 사용하므로 군대에서 통신병이 되면 반드시 모어스 부호(Morse Code)를 배우게 된다.
어쨌든 모어스는 화가로서가 아니라 통신기 발명으로 거부가 되었고, 세계적인 명성도 얻게 되었다. 그러나 하늘의 질투인지 그의 부인이 해산을 하다 사망하니 혼자서 많은 자녀를 기르는 홀아비 부자가 되었다.
1세대 리빙스톤의 손자인 헨리 리빙스톤(1714~1799)은 1751년에 이곳의 땅을 구입하여 두었다. 그의 아들 헨리 리빙스톤 2세(1748~1828)는 이곳을 아카시아 숲(Locust Grove)이라 명명하고 물레방아도 만들어 놓고 농사를 지었다. 그후 1830년에 뉴욕의 신흥 부자인 존 비 몽고메리(몽고메리 장군과 관계없음) 부부가 이곳을 구입, 허드슨강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박스(페더랄 스타일)같은 집을 지었다.
56세의 부자 홀아비인 모어스는 뉴욕 사교계 여성들 사이에서 선망의 신랑감으로 부상하였다. 모어스는 이곳을 보고나서 동생 시드니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이곳의 이용도와 아름다움을 어떻게 설명할지를 모르겠다. 영국에서는 많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그런 곳임에도 이곳에서는 싸게 살 수 있단 말이야. 그리고 언덕과 대지의 조형미가 여러가지 모양으로 되었고 건너편엔 피시 킬 산이 있고 가끔 증기선이 허드슨강으로 지나가는 것이 그림처럼 보인단다 ---헨리 리빙스톤 2세의 증 외손녀딸은 사라 엘리자베스 그리수얼드(Sara Elizabeth Griswold, 1822~1901)였다. 당시만 해도 많이 가난해진 리빙스톤 가문의 후손들이 신흥 부자들과 결혼하여 다시 뉴욕 사교계를 주름잡았다.
사라는 모어스 보다 31세나 어린 나이로서 모어스의 애들을 무척 좋아하더니 그와 결혼했다. 현재에도 리빙스톤의 후손 중에 유명인사는 루이지애나주의 하원의원인 밥 리빙스톤이 있다. 그는 클린턴 대통령이 여자관계로 망신을 당할 때 따발총 쏘는듯한 어조로 강력 비판하면서 등장해 사표 낸 하원의장 깅그리치의 뒤를 이어 국회의장 물망에 올랐다.
이때 ‘팬트하우스’발행인 풀린씨가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비판하는 당신들의 뒤를 내가 파헤치는데 백만달러의 현금을 걸겠다"고 발표했다. 이같은 발표가 나오자 바로 리빙스톤 의원의 여자관계가 들통이 나서 국회의장 출사표를 내버리고 사라지고 말았다.
다시 모어스로 돌아간다. 56세에 여러 자녀와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산 것이 이 집이다. 그림공부할 때의 친구인 건축가 알렉산더 데이비스의 도움으로 양쪽의 증축 건물을 이층으로 올렸다. 2층과 3층의 탑을 올리고 일대 수리를 하여 지금의 형태가 된 것이다.
방의 그림이 어두운 색깔이 많아서 약간 노란색을 사용하여 밝은 그림으로 보이도록 하였다. 이층에는 커다란 당구대가 놓여있어 평소 친구들과 당구를 즐겼던 것을 짐작케 한다.1872년에 모어스가 죽자 미망인 사라는 1901년에 이 집을 포킵씨시와 관계가 있는 부자 윌리암과 마타 영(William & Martha Young)에게 팔았다. 이들은 북쪽에 있는 식당을 헐어버리고 더 크고 편리하게 집을 고쳐서 현재의 집 모양이 되었다.
이 저택을 구경하면서 신기하게 느낀 것은 모어스의 3 자녀와 두 내외 합쳐서 5명에 그의 장모까지 6명이 사는데 변기가 있는 화장실은 하나 뿐이었다.
이곳에서 전보 기계를 발명하느라 호되게 고생하며 전기도 모르던 화가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해 준 것이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간단하게 ‘동기(Motivation)’라고 말하던데…. 옛날의 선각자를 생각해 보며 모어스 도서관에 전시된 모어스의 그림 작품과 텔레그램 기계의 전시와 모어스 부호를 배우기 위해 컴퓨터가
양쪽에 설치되어 있다.
■ 가는 길
뉴욕주 I-87 North로 I-87 East로 가다 Mid-Hudson Bridge를 건넌다. Route 9 North로 약 11마일 올라가다 왼쪽에 있다.
주소 : Locust Grove, 370 South Rd., P.O. Box 1649, Poughkeepsie, N.Y. 12601-0649전화 : 914-454-4500 팩스 : 914-485-7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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