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장 30주년 맞은 ‘나츠 스케어리 팜 핼로윈 혼트’
460여만명 입장한 세계 최초, 최대 핼로윈 파티장
어렸을 적엔 캄캄한 방안에서 친구, 동생들과 이불을 뒤집어쓰고라도 달걀귀신, 몽달귀신, 하얀 보자기-파란 보자기 같은 이야기들을 듣기도, 하기도 잘했지만 철들고 나서는 그런 것들이 정말 싫어졌다. 화제의 영화 ‘엑소시스트’도 반쯤은 보지 않았고, ‘라이언 일병 구출작전’ 조차 소위 사실적 묘사가 돋보인다는 끔찍한 장면들에는 눈을 감았고, 마음을 주지 않으려 애썼었다. 언제고 딸국질이 멈출 정도로만 놀라고 싶은 내게 부에나팍의 ‘나츠 베리 팜‘의 ‘나츠 스케어리 팜 핼로윈 혼트’ 취재는 결코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해마다 핼로윈 시즌에 오렌지카운티의 10대 청소년들이라면 누구나 가서 즐기는 ‘계절의 명소‘가 올해로 30주년을 맞는다니 직업상 가서 봐야할 의무감 비슷한 것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1973년 10월 31일, 이 공원내 ‘고스트 타운’에서 20명의 분장한 괴물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손님들을 놀래킨 일이 놀라운 호응을 얻기 시작, 이제 세계 최초, 최대이자 가장 유명한 오락공원 핼로윈 이벤트로 자리 잡은 이 행사에 자극 받아 디즈닐랜드는 ‘혼티드 맨션 할러데이’, 샌디에고의 시월드는 ‘테러 오브 더 딥’, 칼스배드의 레고랜드는 ‘브릭 오어 트리트’ 같은 비슷한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이유는 물론 입장 수익 때문이다. 올해는 지난 3일부터 매주 목~일요일, 마지막 주는 29일부터 11월 2일까지 21일간 여는 나츠베리팜의 경우 10월은 7, 8월과 맞먹는 바쁜 달이다.
금까지 460만명 이상이 다녀갔으며 주말에는 하루에 2만5000여명이 입장하는 이 행사는 핼로윈이 가까워질수록 미리 사면 38달러, 현장에서 사면 42달러나 하는 입장권 구하기가 힘들어지는데 기자가 간 10일은 목요일인데도 입장객으로 차고 넘쳐 볼 것, 탈 것들마다 줄이 길기가 주말 낮과 비슷했다. 이 행사가 있는 날 나츠 베리 팜은 낮에 온 손님들을 일찌감치 전부 내보내고 새로운 장식과, 새로운 쇼, 새로운 직원들로 단장하고 7시에 재개장하는데 입장에 앞서 시큐리티 체크가 삼엄하다. 술이나 마약은 물론 칼이나 뾰족한 것, 긴 쇠사슬등은 무조건 압수고 가방도 안까지 샅샅이 살핀다. 손님들은 또 핼로윈 분장을 하고 입장할 수도 없다.
공원 측에 따르면 안에서 어슬렁거리는 괴물들만 1000명을 헤아린다는데 입장권을 내면서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입구에서부터 혼비백산한다. 입구에 배치된 괴물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오며 분위기를 잡아주기 때문인데 이들은 공원 측이 사진 촬영으로 과외수입을 올리는데도 크게 기여한다.
아차하는 사이에 비명을 지르고 주저앉은 내 옆에는 20대로 보이는 백인 아가씨 두명이 자기들끼리 다니기엔 너무 무섭다며 남자 친구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고, 중년 아주머니 두명은 서로 등을 대고 서서 망을 보고 있었다. 10대 청소년부터 머리가 희끗한 중년부부들까지 다양한 입장객들은 모두 삼삼오오 떼지어 들어왔다. 팔팔한 10대 아이들도 몰려서 다니는 곳을 중년 아줌마가 겁도 없이 혼자 온 것을 탓하면서, 안으로 들어가는 양쪽 길목마다 짙게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 서성이고 있는 괴물들을 뚫고 들어갈 일이 막막해져 없는 담력을 짜내며 앉아 있으려니 입구의 괴물들은 제법 눈에 익어 쳐다보고 웃다가 말도 걸었다.
올해로 8년째 10월마다 이 일을 한다는 조핸(별명은 그라우치)은 억양이 흑인이었는데 4시간은 입구에서 사진에 찍히고, 나머지는 다른 곳에서 사람들을 무섭게 한다고 했다.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재미있어서 무급으로라도 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는 그는 동물 가죽을 뒤집어 쓴 것 같은 분장도 자기가 직접 만들어 입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그렇게 한참 문 앞에 앉아 있다보니 어디 어디에 괴물들이 있는지, 어떻게 사람들에게 접근해서 놀라게 하는지가 대충 눈에 들어왔다. 슬그머니 다가와 뒤에서 방울을 흔드는, 빨강머리를 양쪽으로 묶은 아가씨, 턱이 빠진 시체 얼굴을 한 말라깽이, 돼지코 괴물분장을 한 뚱뚱한 아줌마, 흉측한 동물 얼굴이지만 체구는 레슬링 선수등 차림새도 가지가지인 이들은 모두 무릎에 패드를 대고 있어 살금살금 옆이나 뒤로 다가와 고함을 지르거나 속삭이기도 하고, 갑자기 밑에서 펄쩍 솟구치거나, 앞으로 고꾸라지듯 뛰어들었다.
아무리 무서워도 문 앞에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라, 몰라서 무서웠던 것이라고 잘난 체하며 들어가다 또 괴물이 놀랄 정도로 비명을 지르기를 서너차례 하며 한바퀴 돌아본 공원 안은 그냥 거대한 놀이터였다. 30주년을 기념하여 새로 ‘거미의 저주’를 비롯한 11개의 무시무시한 미로(maze) 및 핼로윈에 맞춰 이름을 바꾼 탈 것, 4개의 공포 지대, 6개의 라이브 쇼등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모두 정상 운행되는 롤러코스터, ‘엑셀러레이터’’수프림 스크림’등 평소 이 공원에서 인기있는 탈 것들마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넘쳤고, 바비큐 갈비등 먹을 것들도 날개돋힌 듯 팔렸다. 올해는 1달러짜리 3-D 안경을 쓰고 들어가면 더 등골이 오싹하다는 미로들이 추가됐고, 15년동안 인기를 누렸던 ‘암흑의 정부 엘바이라’가 은퇴한 무대에는 대신 마술사 에드 알론소가 대신 섰다. 이밖에 교수형 집행, 마티 퍼츠의 못된 장난 파티, 자모라의 기행등 공연장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일, 화, 수, 목요일은 새벽 1시, 금, 토요일은 새벽 2시까지 열리는 이 놀이터에도 10시가 넘으니 줄줄이 들어오던 입장객들이 뜸해졌다. 처음엔 놀랐지만 이젠 자기들 사이에 섞여 있는 괴물들에게도 익숙해진 입장객들에겐 재미만 보이지 무서움 같은 것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천주교회의 축일인 모든 성인의 날인 11월 1일 전날 저녁에 세상에 나와 활개친다는 세상의 모든 귀신과 괴물들을 한 달 동안이나 사람들과 같이 놀게 만드는데 성공한 상혼이 더욱 빛나는 현장이었다.
<김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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