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흑 연대기구’ 창설자 소니아 장씨
지난 6일 저녁, 퀸즈의 베이사이드에 있는 뉴욕한민교회에서는 이색적인 행사가 벌어졌다. 한민교회 성가대와 할렘의 흑인교회인 가나안 침례교회 성가대가 찬송가와 복음성가를 불렀고 이중창, 삼중주 등 다채로운 음악 프로가 진행됐다.
한인들의 찬송가를 처음 들은 흑인들과 흑인 성가대를 처음 만난 한인들은 경탄을 금치 못하면서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날 헌금으로 모은 돈은 북한 어린이들에게 보내기로 했다. 또 이날 행사에 참석했던 흑인들은 앞으로 흑인교회를 통해 북한 어린이 돕기운동을 펴기로 했다.
이 행사는 지난 1993년 시작된 한흑연대기구(OAKS, Organization for
African-American/Korean-American Solidarity, Inc.)가 연례행사로 10번째 개최한 한흑 문화행사였다. OAKS는 브루클린에서 발생했던 레드 애플 분규 사건을 본 소니아 장씨(60)가 한흑 대화의 필요성을 느낀 끝에 만든 단체로 한흑간 대화의 창구 역할을 해 오고 있다.
옥스의 창설자인 소니아 장은 1964년 이대 신문방송학과 1회 졸업생이다. 그는 66년 유학생으로 도미, 뉴욕대학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그러나 곧 백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면서 뉴욕에 정착하고 말았다.
IBM회사의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던 남편이 결혼 후 목사가 되어 알제리에 선교사로 파송되자 그도 미연합감리교회의 선교사가 되어 부부 선교사로 알제리에서 살았다. 회교가 국교인 알제리에서 선교활동이란 버림받은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주중에는 공립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한편으로는 빈 땅에 집을 지어 버림받은 사람들을 수용하여 돌보았다고 한다. 남편은 유럽인들이 운영하던 보건소의 책임자로 일했는데 그는 이 보건소를 찾는 환자들을 상담하면서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소외된 여자들을 모아 자본을 대주면서
수예품을 만들게 했고, 이 수예품을 정부가게에 납품시켜 소득을 올리게 해 주었다고 한다.
3년 동안 이런 생활 가운데서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생활을 해오던 중 그는 아이를 난산하면서 건강문제 때문에 뉴욕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남편도 뉴욕에 돌아와 목회를 했다.
그 후 남편은 변호사가 되어 개업을 했다. 그러나 소니아 장은 교회 일을 계속 했다. 1984년부터 92년까지 선출봉사직인 미연합교회 세계 선교부의 이사로 활동했다. 주로 아프리카 지역을 여행하면서 흑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92년 LA폭동이 발생했을 때 구호품을 보내자고 교단에 제의해 감리교에서 한달 안에 10만달러의 구호품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는 브루클린 한흑 분규사건을 보면서 흑인문제는 대화와 교류를 통해 상호 이해함으로써 친목을 도모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1993년 3월 옥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옥스의 이사진에는 한인사업가와 흑인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사장은 와이어 워커 목사이다. 워커목사는 알 샤프턴 목사를 키운 사람인데 한흑 대화를 위해서는 샤프턴 목사와 손을 잡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소니아 장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데모대장인 샤프턴 목사를 끌어들이지 않고는 한흑 대화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옥스를 시작하자마자 샤프턴 목사를 찾았다. 그러나 샤프턴 목사는 한인을 만나려 조차 하지 않았다. 가까스로 만나고 나니 그는 한인에 대한 심한 편견을 드러냈다. 한인들은 흑인을 무시하면서 흑인의 피를 빨아먹고 살을 갉아 먹는다고 비난했다.
소니아 장은 그런 말을 하는 샤프턴 목사에게 “사람마다 다 같지 않고 다르다. 어느 민족에나 나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좋은 사람도 있다. 흑인들이 다른 인종을 탓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잘 교육시켜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런 대화 속에서 샤프턴 목
사의 반응은 달라지기 시작했고 서로 이해가 깊어지면서 가까워져서 지금은 옥스의 활동을 도와주고 있다고 한다.
소니아 장은 샤프턴 목사와의 대화를 통해 한흑문제는 상호 이해로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인종간의 이해를 위해서는 문화교류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매년 10월 한흑문화행사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음악과 무용은 말 없는 대화처럼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이 하는데 더할 수 없이 좋은 매개체가 되고 더구나 복음성가를 함께 부르다 보면 종교적 일체감을 느낄 수 있어 더욱 가까운 관계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2년 전에는 흑인교회의 성가대 35명이 기독교방송의 초청으로 방한하여 서울의 세종문화회관 등 10개 도시를 순회공연했는데 이 방한을 통해 흑인 성가대의 한국관과 한인관이 180도로 바뀌었다고 그는 말했다.
옥스는 1996년부터 완구협회에서 제공한 장난감으로 매년 크리스마스 때 할렘 어린이들의 토이파티를 열어주고 있는데 지금까지 5,000여명에게 2만개의 장난감을 선물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완구 도매업을 하고 있는 임영재씨가 몇년째 장난감을 제공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옥스는 또 8년째 한흑 장학금을 지급해 오고 있다. 매년 봄 장학금 모금파티를 열어 조성한 기금으로 매년 한인, 흑인, 히스패닉, 아메리칸 인디언 장학생 7명을 선정, 1,000달러씩 지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1996년 미국 남부지역에서 흑인교회의 방화사건이 잇달아 발생했을 때는 흑인교회 돕기 모금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또 한흑 대화를 하면서 소니아 장이 보고 느낀 흑인은 지금까지 눌려 살아왔고 인정이 많은 점 등 한국인과 흡사한 면이 너무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인들이 흑인에 대해 나쁜 인상을 갖고 있는 것은 제도적 편견에 기인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즉, 백인은 외교관, 선교사 등 지식층으로 접했고 흑인은 GI처럼 하층민으로 한인들에게 인식되어 흑인이라 하면 노예 후예, 게으르고 무식한 인종으로 정형화 되었다. 게다가 한인들이 미국에 와서 대부분 흑인동네에서 장사를 하다 보니 흑인 강도와 절도에 시달리게 되면서 흑인을 상종 못할 저질 인종으로 낙인찍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니아 장의 생각은 색다르다. 흑인은 좀도둑에 불과하고 오히려 큰 도둑은 백인이라고까지 말한다. 흑인들이 민권운동으로 유색인종의 지위를 높혔기 때문에 오늘날 한인들이 미국에서 잘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한흑관계를 풀어가는 첩경은 이처럼 흑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고치는데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편견이 사라지고 서로 깊이 이해할 때 한흑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볼 때 지금 실정에서 어려운 과제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옥스가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막중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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