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대1 경쟁률 뜷고 당당히 입사
한국관련 뉴스 표현할 땐 더 신경
자신작품 전국방영될때 힘든만큼 보람
미국 3대 방송의 하나인 채널 4 NBC-TV의 메인 뉴스인 저녁 6시 30분 NBC 나이틀라인 뉴스시간, 간판 앵커맨인 톰 브로코가 미국과 세계의 뉴스를 전할 때 배경에는 뉴스의 내용을 한 눈에 전달하는 그림과 글자가 화면으로 뜬다.
뉴스가 바뀔 때마다 배경 화면은 그 뉴스의 내용을 압축한 그림과 글자로 바뀌는데 간결하게 표현된 이 한 컷의 화면은 뉴스의 내용과 성격을 너무도 생생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뉴스를 듣지 않아도 화면만으로 금새 그 내용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이 뉴스 화면을 만들고 있는 사람이 NBC 뉴스의 그래픽 디자이너인 제니 최씨(55.한국명 최정완)이다.
제니 최씨는 26년간 이 뉴스시간을 맡아온 베테란 디자이너이다. 1976년 NBC 뉴스에 처음 발탁되어 당시 유명 앵커인 존 첸슬러, 데이빗 브링클리 등과 일해 왔는데 현재 NBC 뉴스 이외에 주중 아침 7시부터 10시까지 진행되는 투데이 쇼와 주말 아침에 진행되는 위크엔드 투데이 쇼의 그래픽 디자인을 맡고 있다.
그는 아침 10시 라커펠러센터에 있는 NBC-TV 본사에 출근하면 뉴욕타임스를 보면서 뉴스를 대충 체크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뉴스룸에서 그 날의 보도용 뉴스를 하루 두 차례 받아 그 뉴스를 토대로 방영될 뉴스 그래픽을 제작한다.
NBC-TV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달되는 뉴스가 그의 해석과 표현을 빌린 작품에 실려 전달되고 있으니 그는 미국에서 한인으로는 보기 드물게 성공한 캐리어 우먼인 셈이다.
최씨는 1965년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홍익대학에 진학, 도안을 공부하다가 대학 2년을 마치자 도미하여 NYU에서 커뮤니케이션 아트를 전공했다. 대학 졸업후 곧바로 채널 11 WPIX 취직한 그는 당시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보난자’와 ‘패리메이슨’의 그래픽 디자인을 맡아 재질을 보이기 시작했다. TV에서 일하면서 한편으로는 School of Visual Art에서 미디어 아트를 공부했고 컬럼비아대학원에서 미술교육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School of Visual Art에서 TV 그래픽 디자인 과목을 가르치기도 했다.그러던 중 그에게 행운의 기회가 왔다. WPIX에 나오는 그래픽 디자인을 본 NBC-TV에서 뉴스 그래픽 디자이너로 채용하고 싶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그래서 20점의 작품을 챙겨 NBC방송국의 디렉터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를 한 후 한달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서 다시 NBC에 연락을 했더니 방송국 측은 그래픽 디자이너 1명을 채용하기 위해 그동안 400여명을 인터뷰 했다는 것이었다.
최씨는 이렇게 심한 경쟁을 뚫고 NBC 뉴스에 발을 들여놓는데 성공, 76년 당시 뉴욕서 개최된 민주당 전당대회를 첫 작품으로 뉴스 그래픽 디자
이너의 캐리어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NBC 뉴스에서 그는 반짝 아이디어로 기발난 작품을 만들어내면서 독보적인 자리를 굳혔다. 박동선 사건 때는 미 의사당을 배경으로 태극기에 싸인 돈을 주고 받는 그림을 만들었고 레이건 행정부 당시 예산삭감 기사에 1달러짜리 지폐를 면도칼로 자르는 그림을 쓰는 등 히트작을 냈다.
한국선거 뉴스에는 태극기로 싼 투표함을 그리기도 했는데 그는 특히 한국관계 기사를 표현할 때 더 신경을 썼다고 한다. 미국 기자들이 틀리기 쉬운 한국사람의 이름을 고쳐주기도 했고 평소에 한국관계 사진자료를 충실하게 모아두었다가 사용했기 때문에 한국관계 뉴스에서는 NBC 뉴스의 그래픽이 단연 돋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최씨는 한국의 KBS-TV에도 여러번 소개됐는데 KBS 뉴스는 10여년 전 복사해 간 최씨의 작품을 지금도 한미관계 뉴스에 자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스 보도에서 그래픽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그는 앵커맨을 비롯하여 제작부장, 편집부장, 취재부장 등이 참석하는 뉴스제작회의의 멤버이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회사 내의 의사 교류가 컴퓨터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회의가 없어졌고 그래픽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프로듀서와 직접 상의한다고 한다.
배경 그림으로 지도를 쓸 것인가, 인물을 쓸 것인가를 결정하고 틀리기 쉬운 외국 지명의 스펠링 등을 정확히 체크하는 것도 그래픽 디
자이너가 결정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하여 작품이 완성되면 제작부서로 넘겨지고 여기서 테크니션이 기계에 입력하여 뉴스시간에 화면이 뜨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참으로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즐기고 있다. 자신이 좋아해서 전공한 분야의 일을 평생 하고 있다는데 대단한 만족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 보였다. 젊었을 때 부모가 맺어준 결혼에 실패한 후 지금까지 독신생활을 해오고 있는 힘이 바로 일에 대한 열정에서 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집에 있는 것 보다 방송국에 있는 것이 더 좋다는 그의 말은 보통사람으로서는 실감하기 어려울 정도이다.토요일에는 새벽 2시에 출근하여 밤 늦게까지 일한 때도 있다. 어떤 날은 하루 18시간 동안 일을 했는데도 지치지 않은 자신을 보면서 자기 자신이 놀라울 때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 9.11 테러가 났던 날에는 매시간 뉴스에 나가는 그래픽을 만드느라고 밤 12시가 넘어 퇴근했는데 맨하탄 34가 남쪽의 교통이 차단되어 그래머시 팍에 있는 집까지 걸어가기도 했다. 그는 그 때의 보람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소수민족 출신으로서 일하기에 방송국은 다른 직장에 비해 좋은 점이 많다는 것이 최씨의 말이다. 다른 직장에 비해 인종차별을 덜 느끼고 있으며 좋은 의견이 있으면 언제든지 상사에게 건의하여 채택되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씨에게는 뉴스 그래픽 디자이너로써 일에 대한 보람 때문에 방송국을 더 좋아한다. 자신의 작품이 뉴스와 함께 전국에 방영될 때, 그리고 프로그램 말미에 자신의 이름이 나올 때 일한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다.
언젠가 한 번은 아칸소를 여행하다가 그 지방의 NBC 방송국에 들렀는데 직원들이 자신을 알아보아서 기뻤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최씨의 할아버지는 서울대 초대 총장을 역임한 백농 최규동씨이고, 아버지는 중동고 교장을 지낸 최성악씨이다. 미국생활 35년을 미국인 사회에서 살아왔지만 그는 교육자 집안 출신답게 “한국인임을 잊지 말라”는 아버지의 당부대로 너무도 한국적인 면을 간직하고 있다.
자신이 한국음식을 즐길 뿐 아니라 직장 동료들에게 한국음식을 소개하기도 하고 웃어른들에게는 큰 절을 한다. 한인교회에 나가기도 하고 학창시절의 한국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많이 갖기도 하며 휴가 때는 주로 한국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지낸다고 한다.
최씨가 말하는 직장관은 미국직장의 벽이 높긴 하지만 자기 분야의 실력을 감추고 열심히 노력하면 그 벽을 뚫을 수 있다는 것. 젊은 시절 반추상 작품으로 몇 차례 전시회도 가졌던 최씨는 그동안 바쁜 생활 때문에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면서 앞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정열을 쏟고 싶다는 소망을 말하고 있다.
<이기영 본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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