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S사의 서진형(53. 롱아릴랜드 거주) 공동회장은 일반 한인들이 하는 비즈니스와는 한참 다른 독특한 사업을 하고 있다. 그가 주력하고 있는 비즈니스는 일반적으로 손에 만질 수 있는 물품이나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것이다. 해당분야는 은행 전체의 컴퓨터에 관한 전산시스템.
그는 이 분야에 관한한 한인사회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IMS사를 착실히 키워가고 있다. 초기에는 아주 작은 규모로 시작한 것이 지금은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했다. 전세계에서 10개 정도 밖에 안 되는 관련 업계에서 그의 회사는 8강에 들어갈 정도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서 회장의 회사가 여기까지 오기에는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인내, 지치지 않는 도전정신이 밑받침 되었다. 덕분에 그의 회사는 지금 동남아 일대는 물론, 유럽, 심지어 폐쇄적이고 보수적이기로 이름난 일본 은행계에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서 회장이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게 된 것은 70년대 말이었다. 한국에서 연대 상대를 마친 후 직장생활을 하다 78년 가죽 및 오리털 자켓을 제조하는 회사의 뉴욕지사장으로 온 것이 계기였다. 처음 이 회사에서 84년까지 일하다 미국에 눌러 앉아 적은 규모의 가죽옷 수입상을 차렸다. 이 사업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84년 IMS사를 운영하
고 있던 경복고 선배 임화 회장을 만나 공동회장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현재의 사업에 뛰어 들었다. 이는 정보화 시대에 앞서가야 한다는 그의 판단력과 통찰력이 가져다 준 결정이었다.
사업 초기에는 무역을 하는 회사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7th 애비뉴’를 개발, 수출입을 하였다. 그러다 은행용 소프트웨어 쪽으로 방향을 전환, 해외지점용 프로그램으로 ‘플라톤’을 개발, 판매를 하였다. 지금은 ‘뉴톤’이라는 시중은행용 소프트웨어를 개발, 팔고 있다. 현재 이 회사의 연 매출액은 약 1,000만 달러에 달한다. 사실 이 사업은 개인회사가 하
기에는 너무나 벅차고 힘이 든다.
쉽게 말하면 제품이라는 것이 하나의 금융시스템을 파는 것이어서 큰 빌딩을 짓거나 거대한 나무를 수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상품을 팔자면 어느 한 나라의 금융 인프라 시스템을 바꾸어 주는 일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 이 사업의 특성이다.
예를 들면 그 나라 중앙은행의 금융관행과 법규, 금융제도, 은행이 이용하는 모든 관습을 전부 알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야만 거기에 맞추어 프로그램을 바꿔 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전환하자면 해당국가나 지역이 관계법규를 대폭적으로 바꾸어야 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법규를 바꾸고 관행을 맞추고 하는 현지화 작업을 전
면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작업은 너무나 힘이 들고 기간이 길다. 물론 노력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은 엄두도 내기 힘든 사업이다. 특히 이 비즈니스는 은행의 속성이 가장 보수적인 산업이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이 말은 아무리 테크놀로지가 바뀐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장, 단점이 검증되지 않으면 절대로 바꾸지 않는 곳이 바로 은행계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서 회장이 하는 사업은 한마디로 까다롭고 힘이 드는 분야다. 계약을 하기까지에도 최소 1~2년이 소요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데 만도 1년 반 이상이 걸린다. 결국 하나의 상품을 계약에서 판매하기까지 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총 3~4년이 걸리는 프로젝트인 것이다. 그래도 서 회장은 줄기차게 이 일을 한 걸음, 한 걸음 신념과 집념으로 밀고 왔다.
그 결과 지금 IMS사는 인도와 중국. 베트남 등에 본격 진출하게 되었다. 지난 3년 동안 엄청난 노력 끝에 올 7월 일본 금융사상 제일 큰 계약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이 프로그램의 전체규모는 1억 달러 이상이고 순수한 로얄티 만도 2,000만달러 이상이다.
IMS사가 이만큼 될 때까지 서 회장은 일년에 보통 반 이상을 출장, 집을 떠나 있었다. 지난 5년 동안은 출장일이 연 200일이 넘었으며 지난해 경우 최고 기록으로 뉴욕에 머문 것이 60일 밖에 안됐다. 300일을 해외출장으로 밖에서 지낸 셈이다. 서씨는 뉴욕에 있을 때도 쉴새없이 바쁘게 생활한다. 집에서 매일 6시 반에 나서 7시 반이면 어김없이 사무실에 도착, 하
루종일 자료 읽기와 분석, 직원 및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과 회의, 토론, 의견결정 시간을 갖는다. 이렇게 눈코 뜰새 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서는 보통 8-9시가 돼야 퇴근한다. 이 일을 그는 지금까지 20년간이나 지속해 왔다고.
현재 그의 회사는 본사가 서울에 있으며 그곳 직원만도 은행출신 컴퓨터 기술자가 100명이 넘고 해외 직원까지 하면 총 150명에 이른다. 전문인력을 이렇게 많이 보유하고 있는 회사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IMS사는 독보적인 회사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00년부터 IMS사는 홍콩의 GEMS사로부터 주식을 주고 800만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대부분 해외 투자가들이 투자할 때는 유형의 자산이 있는 곳에 투자한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만 있는 IMS사 같은 중소회사에 이만한 거액을 투자하게 된 것은 당시 아시아에 외환위기가 났을 때 잘못된 뱅킹 시스템을 선진화하는데 IMS사가 관련 제품을 보유하고 있고 확실한 시장성과 경영이 투명했기 때문이었다.
서 회장은 지금도 금융시스템을 중동과 동유럽, 아프리카 쪽에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위해 계속 시장을 확장, 개척 중이다. 그는 또 2년 전부터 AZYZO INC.벤처회사를 3명의 동업으로 설립했다.
IMS사가 기술을 투자해서 인터넷상의 크레딧카드를 통해 현금을 결재하는 시스템을 창업, 매우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 이미 시티뱅크나 체이스뱅크 같은 유수한 금융기
관과 시장성이 4조억 달러에 달하는 크레딧카드 회사가 IMS사의 프로그램을 쓸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한다. 이대로만 발전한다면 앞으로 온라인 시장에서 AZYZO사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것이 소위 차세대 금융시스템으로 제조에서 정보화사회로 추세가 바뀌면서 컴퓨터와 디지털 업종이 무한한 성장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 회장은 "앞으로 한인들도 정보화 사회에서 통신사업이 확대, 발전됨에 따라 참여할 길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라며 "정보화의 핵심도시인 뉴욕에서 이런 걸 한다는 건 대단히 축복받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
다.
평범한 생활 속에서 모든 일을 항상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처리한다는 서 회장은 바쁜 와중에도 한인사회 봉사를 마다 않고 지금까지 꾸준히 해오고 있다. 경제인 협회 회장, 팬 아시아 은행 설립이사로 제2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한국정부로부터 제27회 무역의 날에 최다수입액을 올려 석탄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이민 백주년 기념사업회 공동 후원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출장길에는 항상 서점에 들려 신간이나 전문서적을 많이 사서 읽는다. 그는 특히 시간만 허락되면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많이 한다. 이유는 여행을 하게 되면 편견이 없어지고 자신의 좌표를 알게 돼 상당한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틈만 나면 가족과 함께 여행을 많이 할 계획이라고 한다.
부인 백경원(49)씨와의 사이에 NYU 유니버시티 스턴 스쿨을 졸업하고 언스트 영 시니어 텍스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 큰 아들 성호(24, 제프리)씨와 컬럼비아 엔지니어링 스쿨 4년에 재학중인 딸 성은(21, 케롤라인)양과 초등학고 5학년에 재학중인 늦둥이 아들 준호(11, 앤드류)군이 있다.
<여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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