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주 웨체스터카운티의 부촌인 Rye Brook에 살고 있는 Jody Rasch와 Ann Parkin 부부는 전형적인 중년의 백인 인테리 부부이다. 부부는 결혼 20년째인 46세 동갑네기인데 남편인 조디는 맨하탄 다운타운에 있는 금융서비스회사에 다니고 부인 앤은 주얼리 디자이너로 일하다 지금은 가사를 돌보고 있다.
큰 길에서 적당히 들어간 동네에 넓직히 자리잡고 있는 래시 부부의 집 앞에는 서클 도로가 원을 그리고 있고 서클 도로를 따라 큼직큼직한 집들이
들어서 있는가 하면 서클 안은 운동장만한 공원이 있어 아이들이 뛰어놀기 안성마춤이다.
이런 바깥 풍경을 보면서 래시부부의 집안에 들어서면 분위기가 사뭇 색다르다. 부부는 백인이지만 3명의 자녀가 한국 어린이들이기 때문이다. 모두 한국에서 데려온 입양아들이다.
아이들이 집안 1층과 2층을 왁자지껄하며 뛰어다니며 노니 넓은 집안이지만 화기가 느껴진다. 장식장에는 자녀들의 생김새를 닮은 한국민속인형이 장식되어 있다. 아이들이 어찌나 깨끗하고 명랑한지 이 부부의 친자녀로 착각이 든다.
래시 부부가 아이들을 입양할 생각을 한 것은 결혼 후 8년이 지나면서였다고 한다. 자신들의 아이를 갖기를 원했으나 그 때까지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입양하기로 결심하고 맨하탄에 있는 100년 전통의 유명한 입양 에이전시인 Spence Chapin을 찾았다.
이 부부가 한국어린이를 입양한 것도 특별한 이유가 있다. 래시씨는 입양을 결심한 후 한 가지 원칙으로 국제입양을 원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를 국내에서 입양할 경우 아이가 자라나는 동안 친부모와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기 쉬워 정신적 부담이 커지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제입양 중에서도 한국아이를 택한 것은 래시씨의 형이 이미 한국아이 두 명을 입양하여 기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1년이 넘는 수속끝에 생후 5개월의 남자 아기가 입양돼 왔다. 래시 부부가 2년쯤 아기를 길러보니 육아 경험이 어느 정도 생겼고 아이를 기르는 즐거움을 알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 아이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두번째 입양을 추진했다. 이번에는 여아를 입양했는데 그 아기가 어느 정도 자라자 또 여아를 입양했다.
이렇게 하여 이 가정에는 각각 다른 친부모를 가진 3남매가 함께 살게 되었다. 맨 위에 9살난 큰 아들이 니콜라스(한국명 영무), 6살난 큰 딸이 에마(영채), 3살짜리 작은 딸이 미란다(난희)이다. 래시 부부는 이 아이들을 모두 5,6개월짜리 갓난아기 때 입양했기 때문에 미국과 새 가정의 분위기에 적응하기 위한 갈등을 겪지 않고 자연스럽게 친자녀와 친남매로 자
라났다는 것이다.
래시씨는 나라마다 입양제도가 다른데 한국의 입양제도는 아주 잘 되어있다고 했다. 입양 자격으로 결혼부부, 연령 등의 제한이 있고 경제수준도 중요시 하지만 특히 안정적 생활을 할 수 있는 집안 분위기에 중점을 두고 입양 가정을 고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 조사를 하고 종교 배경도 보고 입양자의 견해도 듣는다고 한다. 그리고 입양아들도 한국의 병원에
서 출생한 기록이 있기 때문에 정확한 생년월일을 가지고 있으며 친부모의 신원도 입양가정에 확실하게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입양되는 아이들은 20~30년 전 입양아들처럼 배경이 애매모호하지 않다고 말했다.
래시씨는 어린 미란다만 빼고 다른 아이들은 자기들이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한다. 이 아이들이 자라나면 언젠가는 자기의 모국을 알고 싶어할 것이기에 래시 부부는 아이들에게 한국을 가르치고 있다. 이 부부는 5년 전부터 매주 토요일 아이들을 데리고 뉴욕한국학교(교장 허병렬)에 나가 한국말을 가르치고 있다. 래시부인도 아이들과 함께 클래스에
들어가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데 이제부터 4학년 클래스가 되어 한국역사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래시부인은 특히 아이들을 통해 한국 학부모들과 친구가 되어 다른 문화에 접하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이 부부는 2년 전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코리안 퍼레이드에 나와 눈길을 끌기도 했다.
래시 부부가 아이들을 기르는데 아직까지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다행히 웨체스터 카운티에는 아시아계 학생들이 많아 학교를 보내는데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오히려 한국학교에 가서 한인학생들끼리, 또 한인교사와 학생들이 한국말로만 이야기를 할 때 잘 알아듣지 못해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래시씨는 뉴욕에서 나서 자란 토박이이다. 어릴 때는 퀸즈와 리버데일에서 살았고 결혼 후에는 맨하탄에서도 살았다. 그리고 몇년 전 아이들의 교육환경이 좋은 이 곳으로 이사 왔다. NYU에서 MBA를 한 그는 금융회사와 자문회사, 은행등에서 일하기도 했고 닷캄회사를 설립하여 경영하다가 처분한 후 현재 맨하탄 다운타운에 있는 무디스 인베스터스 서비스 회사
에서 금융 트레이닝 전문가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금융 트레이닝 세미나를 위해 한국을 다녀왔는데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고 한다. 안내판이나 간판에 영어가 많아서 친밀감이 들기도 했지만 세 자녀가 태어난 나라이기에 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돌아올 때 한국 도자기와 나무로 만든 상자를 선물로 사 왔다고 한다.
래시 부부의 아이들에 대한 자랑도 대단하다. 큰 아들인 니콜라스는 어린 나이인데도 빌딩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앞으로 건축 계통을 하게 될 것 같다는 것이다. 둘째인 에마는 매우 영리하여 글을 빨리 깨우쳤고 벌써 독서를 좋아한다고 한다. 자전거를 20분만에 배워 혼자 타고 다녔다고 래시부부는 기특해 했다. 셋째인 미란다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모든 것을 잘 할 것 같다고 부부는 말했다.
세 아이를 기르고 교육하는데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래시씨는 “아마 그래야 되겠다”며 크게 웃었다.
아이들을 기르는 래시 부부는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마음껏 뛰노는 세 아이들은 더욱 행복해 보였다. 지금 여기에 없었더라면 어느 곳에 있을지도 모를 이 아이들에게 보금자리가 되어준 래시 부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세 아이의 장래를 간절히 축복해 주고 싶은 마음도 또한 들었다.
<이기영 본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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