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동네 장식으로 유명한 파운틴 밸리 ‘크리스마스 트랙트’
33년전 3가구가 시작, 많을 땐 3,000여명이 구경 오는 명소
추수감사절이 지나고 지붕 위에 방금 산 크리스마스 트리를 싣고 가는 자동차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면 어느새 동네의 야경이 바뀌기 시작한다. 처마 밑으로, 나무 위로 알록달록 불빛들이 반짝이고 지붕 위에는 방금 내려앉은 썰매와 불룩한 주머니를 짊어진 산타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미국의 주택가치고 할러데이 시즌에 집 안팎을 장식하지 않는 곳은 없지만 이맘때면 할러데이 장식 경연대회도 열리는가 하면 몇채의 주택에 할러데이 장식을 해놓고 관람료를 거두어서 불우이웃을 돕는 여성 단체도 나온다. 한 골목에 사는 사람들끼리 경쟁이라도 하듯 자기 집들을 멋지게 장식해 다른 동네 사람들까지 일부러 구경하러 오게 만드는 곳들도 도시마다 한 두 곳은 있게 마련이다.
운틴 밸리의 ‘크리스마스 트랙트’도 그런 곳이다. 브룩허스트 스트릿과 헤일 애비뉴 북서쪽에 위치한 동네 주민들이 30년 넘게 자발적으로 공들여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다보니 해마다 수천명의 외부 사람들이 구경하러 모이는 곳이다. 골목골목 걸어다니면서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하도 많다보니 지난 주말에 이어 이번 주말에도 저녁 6시30분부터 9시30분까지는 경찰이 발행한 퍼밋을 소지한 주민이 아닌 사람의 차량 진입은 금지시킨다.
무심히 풀을 뜯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사슴이나 막 탄생해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장면처럼 단순한 것부터 지붕 위에는 산타의 작업장에서 선물을 만드는 요정, 굴뚝에는 순록이 끄는 썰매에서 내린 산타 할아버지, 전체가 선물 상자인양 리본이 매어져 있는 차고 앞에는 커다란 눈사람, 앞마당의 알록달록한 사탕과 리본들이 매달린 나무 아래 잔디밭에는 진저브레드 하우스등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온갖 것들이 총출동해 있는 집까지 저마다 개성있는 장식들이 사람들의 찬탄을 자아내는 곳이다.
주인들의 기호대로 천사나 산타 이외에 칩멍크, 달메이션 같은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영화 주인공까지 모두 등장한 이 동네의 명물은 백설 위에 얼음집 이글루 옆으로 스키 리프트가 인형들을 실어 나르고, 차고 문 앞에는 산타에게 보내는 편지들과 우체통, 즉석에서 편지를 쓰도록 테이블과 종이, 연필까지 준비되어 있는 댄들리온 애비뉴의 코너집들과 달리아 서클의 커다란 하얀 집이다. 비슷비슷한 인근 집들보다 월등히 큰 덩치에 온통 하얗게 칠해 눈에 띄는 이 집은 전체를 장식했을 뿐만 아니라 길가로 난 대형 창 3개에서 밤이면 대형 테디베어들이 저마다 춤추며 노래해 시선을 모은다. 앞 마당에는 우물가에 테디 베어 한 마리가 기다리고 있다가 관중이 동전을 던져주면 물을 긷는데 여기서 모인 동전들은 모두 희귀병 재단에 기부한다고 쓰여 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이 골목엔 사람들이 모여든다. 모든 흉한 것을 감춰주는 어둠 속에 오직 예쁘고 즐거운 것들만 찬란하게 오색으로 펼쳐지니 누구나 기분이 들뜨는 표정인데 저녁 먹고 아이들과 산보 나온 차림의 가지각색 사람들 중에는 “이곳에 구경온지 벌써 10년”이라는 가든그로브 거주 한인 문성용, 현선씨 부부와 아들 샘도 있었다. 대낮처럼 환하게 불이 비치는 산타 우체통 옆으로는 편지를 쓰는 아이들, 아이가 편지를 잘 쓰도록 도우면서 내용을 훔쳐보는 엄마들로 붐비고, 캐럴라인 김이라는 이름의 한인 어린이가 한글로 또박또박 쓴 것을 포함, 전시된 10여통의 편지들은 웃음을 머금게 한다.
파운틴 밸리의 명물이 된 ‘크리스마스 트랙트’는 1969년에 16449 댄들리온 애비뉴의 새 집에 입주한 조 피넬(69)이 양옆의 두 집 주인들과 같이 시작했다.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는 피넬은 맨 처음엔 지붕 위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쓴 점멸등부터 얹었다. 그때만해도 트래블링 라이트가 없어서 켜졌다 꺼졌다 하는 등을 두 줄로 돌리고 시차를 조정했다. 지금은 모두 기성제품이 나와 있지만 ‘산타의 작업장’이라는 사인판과 산타, 썰매 등등도 모두 합판을 사다가 잘라서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해서 지붕 위에 고정시켰다.
해마다 조금씩 피넬이 손수 만든 장식품은 늘어났고, 댄들리온에서 시작된 할러데이 장식은 달리아 서클을 거쳐 모두 꽃 이름을 단 이 동네 골목골목으로 번져나갔으며 그 일 때문에 서로 의논하고 돕는 가운에 이웃 주민들간에 대화와 사교가 증가했다. 피넬의 경우만 해도 12년전 옆집 주인과 두집 사이에 스키 리프트를 만들기로 합의했는데 그 아이디어를 낸 옆집 주인이 그 2년후엔 부인이 됐다. 스키 리프트도 설계는 1996년에 맥도넬 더글러스사의 엔지니어링 매니저로 은퇴한 피넬이 했지만 제작은 달리아 서클의 큰 집 주인인 철강회사 사장의 도움을 받았다. 집 앞 잔디를 덮어 눈이 온 것 같은 효과를 내고 있는 흰 폴리에스터 솜 역시 동네 사람의 소개로 매년 싸게 단체 구입한다.
30여년 세월이 흘렀어도 이 세 집의 할러데이 정신에는 변화가 없다. 10년전 팔린 16461호는 새 주인인 폴린 누엔이 계속 나름대로 장식을 하고 있고, 두 집 주인이 결혼하는 바람에 빈 16439호에는 16461호 원래 주인의 큰아들이 결혼해서 렌트로 입주, 계속 손재주를 발휘하고 있다. 점차 자발적으로 할러데이 장식에 참여하게 된 동네 사람들은 추수감사절 주말이면 저마다 바쁘다. 아무 의논을 하지 않아도 장식들을 내걸기 시작한다.
차츰 구경오는 사람들도 대를 물리는등 늘어나고 언론 매체에도 소개되어 관람객이 연 3,000명까지 되자 차량 통제도 하게 됐다. 주민중에는 물론 장식도 안 하면서 시끄럽고 불편하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지만 마이크 거니건(50) 같은 사람은 20년전 달리아 서클로 이사와 동네 분위기에 익숙해지면서 15년전부터 참여하기 시작했고 10년전부터는 집 앞에 통을 마련, 구경꾼들에게 깡통음식을 기증 받아 해마다 500~3,000파운드를 걸스카웃, 교회등에 보내고 있다.
해마다 귀찮은 줄 모르고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면서 피넬씨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이 와서 보고 즐거워하면서 하는 말을 듣는 것, 또 이웃 사람들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일이다. 모두 단골들로 함께 나이 들어가는 구경꾼들 중에는 서로 얼굴을 알아보고 인사하는 이들, 어떤 장식품이 작년에도 있었다느니 없었다느니 말다툼을 하는 사람도 있다.
12월에 둘째주 주말부터 모이기 시작하는 구경꾼들은 크리스마스 2~3일전에 크게 늘어나 24일에 피크를 이룬다. 이때쯤이면 핸드벨이나 합창등 공연팀들도 모인다. 여기서 공연한 후 너무 이름이 알려져 다른 곳에 불려 가느라 다시 못 오는 그룹도 있을 정도. 그러나 25일 밤부터는 모든 불이 꺼진다.
해마다 꺼내 달았다 떼어 보관하는 수고에, 새로운 장식들을 추가하고 조명 때문에 한달에 몇백달러씩 더 드는 전기료도 기꺼이 감수하며 크리스마스를 세상 사람들과 아름답게, 즐겁게 나누려는 사람들. 이들이야말로 세상이라는 작업장의 요정이 아닐까 싶다.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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