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3년 1월1일 오전 4시 퀸즈 플러싱에 살고 있는 뉴욕한국일보 장미래 기자는 시계 알람소리에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올해 제33회를 맞는 새해 맞이 사진 및 비디오 촬영대회 취재를 위해 뉴욕주 동쪽 끝에 위치한 몬탁에 가야만 했다. 2001년 한국일보가 한인들을 대상으로 시작했던 이 행사는 어느덧 뉴욕주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행사로 커져 전세계의 유명 사진 작가들이 몰려와 일출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입상작은 타임지와 내셔널 지오그래픽 표지 등 주요 잡지에 실리고 있다.
홈 오토메이션 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진 집은 장미래 기자가 눈을 뜨자 자동적으로 작동이
시작됐다. 눈이 부시지 않도록 조명이 서서히 밝아지는 전등이 켜졌고 벽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는 밤사이 일어난 세계적인 주요 뉴스가 요약돼 나왔다. 이미 TV는 컴퓨터와 통신장치까지 합쳐진 소위 ‘텔레컴퓨니케이션 시스템’이다. 뉴스 요약이 끝나자 장미래 기자에게 전달된 각종 화상 메일 목록이 나왔다.
"어! 엄마가 메일을 보내왔네"라고 중얼거리자 센서가 알아듣고 화면에 장기자 부모의 화상 메일을 띄웠다. 배경에 평양 모란봉이 보이고 을밀대에서 장기자 부모가 일출을 맞는 모습이 보였다. 통일 10주년을 맞아 평양시에서 대대적인 새해 행사가 열렸는데 모란봉 해맞이가 그 첫 번째였다.
"미래야 새해에도 복 많이 받고 올해에는 꼭 시집을 가야한다"라는 어머니의 당부에 "엄마는 새해 첫날부터 시집 타령이유?"하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하지만 곧 표정을 웃음으로 바꾼 뒤 "엄마 아빠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곧바로 장기자의 ‘전송’이라는 한마디에 자동적으로 화면 편집이 되어서 어머니 메일 주소로 회신되어졌다.
기지개를 크게 한번 켠 장미래 기자는 아침 요기를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연말을 맞아 친구들과 함께 자주 파티를 하다보니 부족한 게 많았다. 현관의 배달 박스에 가보니 따끈한 베이글과 과일, 음료수 등 필요한 게 모두 도착해 있다. 냉장고가 인터넷에 연결돼 부족한 품목은 단골 슈퍼마켓으로 자동 주문을 하고 기상 시간에 맞춰 이미 배달돼 있었던 것. 모
든 게 척척인 홈 오토메이션 덕분에 장미래 기자는 아침에 일어나서 뉴스 및 메일 검색, 아침식사, 샤워 등을 마치는데 불과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차고에 내려가자 현대자동차의 최신형 ‘쏘나타20’이 이미 시동이 켜진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5년째 미국 내 중형자동차 판매 1위를 질주하고 있는 ‘쏘나타20’은 1980년대 최초 개발돼 20번째 개량된 모델로 자동화 시스템이 완벽하게 구축됐다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는 명차다. 운전석에 탑승해 목적지인 몬탁을 선택하자 자동제어장치에 따라 차가 움직이기 시작
했다. L.I.E를 타고 평균 시속 200마일로 달려 몬탁에 도착하기까지는 불과 두 시간도 채 안 걸린다. 장 기자는 ‘아빠 세대에는 다섯 시간이나 걸렸기 때문에 밤새 잠도 못 자고 직접 운전을 해서 가야 했다던데’라는 생각을 떠올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가장 편안한 자세로 운전석에 몸을 기댄 장미래 기자는 "새해 첫날이니 중요한 행사가 많아. 일정이나 점검해 볼까"라고 혼잣말을 한 뒤 자동차 내에 설치된 인터넷 시스템을 가동시켰다. 오전 6시반부터 8시반까지 일출 현장을 취재한 뒤 행사에 참석한 마이클 파타키 뉴욕 주지사로부터 ‘한인에게 드리는 신년 축하 메시지’를 단독 인터뷰해야 한다.
점심에는 맨하탄 한인타운에서 뉴욕과 뉴저지 지역 한인 정치들이 모이는 행사가 있다. 퀸즈보로장과 버겐카운티장은 이미 10년 넘게 한인들이 맡고 있으며 연방하원의원, 주의원, 시의원 등 한인 주요인사만 30명이 넘는다. 한인 정치인들의 신년 오찬은 뉴욕과 뉴저지 지역의 굵직한 현안 문제들이 다뤄지고 정책에 그대로 반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뉴욕타임
스나 월스트릿저널과 같은 유력지와 TV는 물론이고 각국 특파원들도 참가할 정도로 국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두 번째 뉴욕시장에 도전하는 테렌스 김 전 뉴욕주 상원의원이 참석할 예정이어서 관계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상 첫 동양인 출신의 뉴욕 시장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는 테렌스 김 전 상원의원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차세대 미국을 이끌어갈 지도자로서 그의 말 한마디가 연방정부 정책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오후 7시에 한인 경제계 인사들이 모이는 뉴욕한인회 만찬 행사도 올해는 각별한 관심 속에 열린다. ‘통일 10주년’을 맞아 후유증을 완전히 씻지 못한 한국을 재정적, 정책적으로 도와주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이 논의될 예정이기 때문.
1996년 마커스 놀란드 등 미국경제전문가 3인은 통일 후 25년간 남한이 북한에 투자해야 할 비용을 약 1조2,000억달러로 추산했고 북한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남한의 60%에 달할 때까지 북한 인구의 75%가 남한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이 예측은 그대로 적중해 남한은 반도체, 자동차 등을 수출해 얻은 막대한 달러를 북한에 재투자하면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워낙 경제 시스템이 튼튼해 문제 해결은 시간 문제이지만 한국의 경기 침체가 곧바로 미국과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조기 회복을 위한 다양한 지원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
이미 유태인과 중국계 경제단체들은 통일 한국을 위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이날 한인회 만찬의 결정 사항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수용할 것을 밝힌바 있다. 시티뱅크, 체이스맨하탄 등 주요 은행의 한인 이사진은 물론이고 모건스탠리, 찰스스왑 등 월스트릿의 대표적인 증권사의 한인 이사진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인데 폭넓은 토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휴~. 오늘도 무척 바쁜 하루네"라고 한 숨을 내쉬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한국 평양에 계신 부모님이 장 기자의 화상메일을 받자마자 전화를 건 것이다. 자동차 안에 설치된 화면에 어머니 얼굴이 보였다. "미래야 아침은 먹었고? 엄마가 있었으면 떡국을 끓여줬을 텐데…. 아무리 바빠도 끼니 거르지 말고 운전 조심해서 다녀라"라는 엄마의 걱정이 잇따랐다. "엄
마 지금이 어느 땐데 운전을 걱정하고 그래요? 지금은 모든 게 자동화 시대에요. 쓸데없는 걱정은 마시고 엄마나 감기 드시지 않게 조심하시고 재미있게 놀다가 오세요…."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엔 롱아일랜드시티에 위치한 뉴욕한국일보사에서 호출이다. "장 기자! 지금 어디야? 예정대로 취재는 잘되고 있지?"라는 편집국장의 질문에 "염려 마세요. 지금 몬탁으로 가고 있는 중이고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기사를 보낼 예정입니다. 염려 마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답했다.
아직 몬탁까지는 30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참 내일 저녁 소개팅이 있는데 뭘 입고 나가지. 시간이 조금 남았는데 쇼핑이나 할까"라고 중얼거린 장미래 기자는 인터넷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인공위성을 이용한 무선 인터넷은 서울의 롯데, 런던의 해로즈, 파리의 쁘렝땅, 도쿄 미키모토 백화점의 여성의류 코너를 차례로 검색할 수 있다. 마침 파리 쁘렝땅 백화점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한 장 기자는 3차원 스캐너를 이용해 치수를 잰 뒤 이 옷을 자신의 영상에 입혀보고 잘 어울리자 이를 주문했다.
’24시간 내에 배달되니까 내일 아침이면 직접 입어 볼 수 있겠군. 근데 어떤 남자일까? 한국 출생으로 전세계 유명 미술관의 걸작품들을 3차원 동영상이 가능한 광디스크로 제작하는 예술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는데. 올해 월스트릿에서도 이 회사의 성장 가능성에 가장 주목하고 있다고 하더라구. 정말 이렇게 편한 세상에서 꼭 시집을 가야하나?’라며 상상의 날개
를 마음껏 펴고 있는 동안 차창 너머로는 새해 첫날의 여명이 밝아왔다.
<장래준 기자>
jraju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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