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불우한 어린 시절을 고집과 뚝심 하나로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극복하고서 세계적인 발명왕의 별명을 갖게 된 토마스 앨바 에디슨은 토마스 에디슨 전기회사를 창립하고 자신은 연구에 몰두하고, 그의 부인은 경영을 책임지고 부부 주식회사로 시작하였다.
토마스 에디슨은 1847년 2월 11일에 오하이오주의 밀란이라는 조그만 동네에서 부친은 사무엘 에디슨, 모친은 낸시 엘리옷 사이의 7남매 중 막내동이로 태어나서 교실 하나에서 전교 학생을 전부 수용하는 교실에서 공부를 할 때에 너무나 질문이 많고 오로지 자기가 알고 싶은 것에는 양보 없이 너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질문에 질려버린 선생이 다른 학생에 방
해가 심하다고 퇴학을 시키려 하자, 에디슨의 어머니가 집에서 직접 가르쳤다.
어머니는 그 곳의 유명한 장로교 목사의 딸로서, 타고난 선생이어서 에디슨의 교육 지도를 착실히 준비시킬 수 있었다. 12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그 동네의 도서관에서 필요한 책을 빌려볼 수 있도록 지도하여 에디슨은 수학 뿐만 아니라 세익스피어 작품까지 모조리 섭렵하고야 말았다.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면 보통 12시간 이상을 하나에 매달려 미친듯이 집중하여 결국은 끝장을 보고야 마는 성격 때문에 짧은 시간에 많은 문학과 역사책까지 통독하였다.
현재 선거할 때의 투표 기계를 발명하여 22살에 처음으로 발명 특허를 받은 후로 일생에 1,093개의 발명을 하고 1,093번째 발명특허는 83세에 받고 84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에 사그러지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하는 말 “그곳은 참으로 오묘하고 아름다웠다”라고 속삭이면서 숨을 거두었다.
그는 혼자서 프린트하는 법을 알아가지고 당시 남북전쟁으로 뉴스에 민감한 시민들이 신문을 사보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서 중서부에서 캐나다까지 운행하는 기차에서 weekly herald라는 주간신문을 만들어 팔아서 매달 10달러 정도의 수익을 올렸다.
그런데 어느 날 실수로 차칸에서 불이 나서 그 칸을 전부 태우고 연착 신고를 저질러서 그곳에서 좋아하는 신문도 못 팔고 차장에게 따귀를 세차게 맞아서 이로부터 2년 후에는 왼쪽 귀를 완전히 불구가 되고 오른쪽은 10퍼센트만 들리는 반 귀머거리가 되어 일생을 지났으나 그는 축음기, 영사기, 영화 촬영기 등을 만들어 귀 안먹은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였다.
그의 이러한 핸디캡을 딱하게 여긴 사람들이 “귀가 안들리는데 얼마나 괴로우십니까?” “뭘요, 세상의 잡소리가 안 들리니 마음이 편하고 오직 연구에만 열중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가난해서 신문을 팔고 어려서부터 돈벌이를 했다고 착각하고 있는데 실은 그 자신의 자립정신과 시장성 있는(사람들에게 필요한) 발명을 하기 위한 한 방법이었다.
그 후에 기차에는 오르지 못하고 역에서 기차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있는데 이곳 역장의 어린 아들이 기차길 위에서 도저히 피할 수 없음을 느낀 에디슨은 번개처럼 뛰어들어 어린애를 밀어내면서 자기가 대신 경상을 입었다. 이 사건으로 다시 그는 기차에서 신문을 팔게 되었고, 역장의 배려로서 전보치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결국은 자동 전보기계를 발명하였고, 큰 뜻을 품고 당시에 제일 예쁘고 인구가 많은 뉴욕으로 올라왔다.
오하이오의 시골뜨기가 뉴욕에 오니 사고무친으로 돈도 없고 친구도 없고 남의 아파트 지하실에 고장난 보일러를 고쳐주며 있을 때 맨하탄의 증권시장에 사건이 생겼다. 증권거래에서 증권거래를 기록 계산해야 하는 기계가 고장이라 증권시장을 닫아야 되는 문제가 심각한 기사를 보고 한숨에 달려가서 내가 고쳐보겠다고 자원하고 그 지하실에서 밤낮으로 연구하여
이것을 순식간에 고치고, 이 때에 Universal Stock Ticker라는 기계를 만들어 판권을 다른 증권회사에 4만달러에 팔고(지금 가격 약 800달러) 은행에 저금을 하려니 은행에서 그 수표 받기를 꺼리므로 현금으로 받아서 자루에 돈을 넣고 친구에게 가니 친구가 은행에 가면 볼트에 넣어두고 나면 도둑맞을 수도 없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는데 마침 부친이 은행에 복직되
어 아들에게 돈을 좀 보내주겠다고 편지가 왔을 때 에디슨은 부친에게 발명품을 어느 회사에서 엄청난 돈을 주고 사갔으므로 돈이 많이 있다고 하자 아버지가 와서 아들의 돈 관리를 코치해 주고 돌아갔다.
이 때에 에디슨은 좋은 경험을 하였다. 자기 생각은 4,000달러 정도 받으려 했던 것인데 이 회사는 열배를 더 주고 사갔으니 이제부터는 필요한 것만을 발명해야겠다는 상업성(Marketable)이 있어야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원칙론을 배우게 되었고, 그는 돈에는 무서울 정도로 엄격하고 짠돌이였던 것 같다.
그는 많은 발명으로 인간생활 발전에 큰 공헌을 했을지라도 그 자신의 인간성에는 우리 일반인과 똑같은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돈에는 짠돌이요, 경쟁에는 이겨야 되고, 전구 발명에 6,000번 실험 실패 후에 이루는 것처럼 고집쟁이요, 남과 공유하는 미덕을 갖는 성정에는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전기와 배터리와의 전력의 편리와 힘을 비교하는 경쟁을 당시에 웨스팅하우스의 테슬라라는 학자와 경쟁하여 에디슨이 지고 말았는데 이 때에 노벨 물리학상이 주어졌다. 웨스팅하우스의 테슬라와 토마스 에디슨이 함께 받아서 상금을 나누어야 되므로 이를 강하게 거절하여 둘 다 못 받게 한 사람이다. 이 경쟁에 지고 난 후에 전기를 다루지 않고 영화 촬영기를 만
들었고 오늘날 우리 생활에 없으면 안되는 텔레비전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하루는 그의 실험실을 방문한 손님이 감탄하여 “당신은 참으로 천재이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이에 에디슨의 대답은 “천재란 1%의 영감이고 99%가 노력이거든요”라고 했다고 한다.
에디슨의 얘기는 너무 많아서 전부 기록이 불가능하나, 몇 개를 예를 들면 “바보들은 현자를 바보라고 부르나, 현자는 사람들을 바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300살까지 살고 싶다. 내가 갖고 있는 아이디어를 전부 발명하려면 300년이 필요하니까”에디슨이 돈을 벌고 결혼하여 아이들 3남매를 낳고 에디슨이 39세 되는 해에 병으로 사망하였으니 고집쟁이 발명왕이 홀아비가 되어 다시 미나 밀러라는 20세 연하의 처녀와 재혼하여
현재의 West Orange에 29개의 방이 있는 저택을 짓고 이사를 갔다.
똑같은 집을 플로리다의 포트 마이어에 지어서 세계 각국에서 이상한 식물을 수입, 재배하여 요상한 정원도 만들어 놓고 있었는데 그의 이웃 중에 포드 자동차회사 창업자인 헨리 포드, 파이어스톤 타이어 창업주인 하비 파이어스톤 등이 있었다.
그의 집 앞 정원에 커다란 바위는 포드가 선물한 것인데 하루는 아무런 글자도 색인되지 아니한 바위덩이가 배달되면서 종이쪽지에 써 있기를 <시골뜨기가 가난하여 바위에 글자 새길 돈이 없어 그냥 보냅니다. 헨리 포드 당신의 이웃으로부터>이들은 항상 교류하면서 발명거리를 찾아서 얘기를 즐겼던 것 같다.
여러 투자자들이 모여 Edison General Electric Corporation을 창업하고 에디슨이 가장 큰 지주가 되어 발전시켰다. 이어 제이 피 모간이 회사를 인수하여 오늘날의 제네랄 일렉트릭 회사로 성장시켜서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되었다. 이제는 제네랄 일렉트릭이 망하면 미국이 망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가 됐다.
에디슨은 뉴저지 웨스트 오렌지에 저택이 있고, 플로리다주, 포트 마이어에도 있어 지금은 두 곳 모두가 박물관으로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이 괴상하던 천재, 세상에 편리한 발명을 많이 한 발자취를 어린 자녀에게 교육시키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윤병희>
■ 가는 길
Thomas Edison Glenmont Eastate
Main & Lakeside Ave.
West Orange, N.J.
973-736-0550(Garden State Parkway Exit 145)
Port Meyers, Florida Seminole Lodge
2350 McGregor Blvd.
941-334-3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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