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450여 클럽 활동 걷기단체 ‘미국대중운동협회’
자기 페이스로 걸으며 건강과 오락, 친교와 재미 즐겨
기상천외의 극한 스포츠들이 날로 보급되는 요즘 세상에 ‘걷기’가 운동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릴 때 학교에서 하던 국민보건체조에 ‘숨쉬기 운동’이 당당히 순서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걷기는 훌륭한 운동이다. 그뿐이랴, 매일 하루 30분씩 꾸준히 운동할 것을 권하는 최신 건강지침들도 하나같이 운동 종목으로 걷기를 추천하고 있다.
사실 걷기는 운동이라기보다 인간의 본질에 가깝다. 서서 걸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인간은 비로소 동물과 구분되는 고유한 자질을 갖게 되고 두뇌발달의 길이 열리게 됐다는 인류학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인생은 혼자 걸어 다닐 수 있을 때부터 시작되어, 혼자 거동하기가 불가능해지면서 막을 내리기 시작한다. 인간을 지구와 연결시키는 두 발에는 움직여 다니라고 뿌리가 돋지 않는다. 새해를 맞아 비록 작심삼일이 될지언정 건강증진, 체중조절을 위해 운동을 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에게도 걷기는 가장 만만해 보이는 운동이다.
아침, 저녁으로 동네를 한바퀴 돌거나, 헬스클럽 트레드밀 위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테니 말인데 그것이 운동은 될지언정 재미는 덜할 것이 염려되면 야외로 나갈 일이다. 책방에는 남가주 인근의 하이킹 코스를 자세히 안내한 책이 즐비하고, 걷기관련 단체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웹사이트에서도 트레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지난 11일과 12일 이틀에 걸쳐 라구나비치 물튼 메도우스 팍에서 주말 이벤트를 주최한 ‘라구나 터프 앤 서프 워커스 클럽’은 걷기를 통한 건강과 오락, 친교와 재미를 표방하는 미국대중운동협회(American Volkssport Association) 산하단체다. 1979년에 창설된 이래 미 전국과 해외 미군주둔지에 450여개의 로컬 클럽들이 해마다 3000여회의 참가자 스스로 길을 찾아 걷는 비경쟁성 대회를 개최하는 비영리단체 AVA의 이벤트들은 걸을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즐길 수 있다.
보통 아침 8시부터 하오 1시까지 정해진 출발지점에서 이 클럽 회원들이 등록도 받고 안내도 하는 주말 이벤트나, 정해진 출발 지점에 지도가 비치되어 있는 연중 코스들은 5킬로미터 아니면 10킬로미터 거리고, 지도에 코스와 난이도, 경사, 주의할 곳, 반환점등이 미리 표시돼 비교적 안전하며, 초행길을 모험하듯 같이 걷다보면 모르던 사람들과도 친해지게 된다.
12일 아침 8시 30분쯤 짙은 안개 속에 오르락 내리락 경사가 심한 길을 운전해 물튼 메도우스 팍에 도착해보니 접수대에 앉아있는 이들은 모두 나이가 들어 보였다. 오렌지카운티 유일의 AVA 클럽 ‘라구나 터프 앤 서프’는 7년전 라구나 니겔에 사는 밥 로스록(72)이 라구나 힐스에 사는 밥 다이크와 함께 라구나를 이름에 공유하는 인근 4개 도시에 사는 이들을 중심으로 창설했다. 40~80세인 현재 회원은 45명 정도고 연중 6번의 주말 이벤트를 주최하고 대나 포인트(자전거 코스도 있다), 라구나 니겔 및 뉴포트 비치, 샌 후안 카피스트라노에 3개의 연중 코스를 관리하고 있다.
연중 코스는 아무나 지도를 집어들고 가면 되고 주말 이벤트는 약간의 회비를 내고 등록을 하면 출석부처럼 생긴 수첩에 기록도 하고 선물도 받는 회원이 되고 싶지 않으면 무료로 그냥 걸으면 된다. 거기서 주최측이 제공하는 25개 클럽이 활동하고 있는 캘리포니아대중운동협회가 발행하는 계간지 ‘컴패스’를 하나 집어 들면 3개월동안 가주내 다른 지역에서 열리는 주말 이벤트들까지 자세히 안내되어 있다.
화창했던 11일엔 148명이 참가해서 ‘탑 오브 더 월드’라 불리는 이 코스를 만끽했는데 마침 안개 낀 날에 온 것을 안타까와하는 로스록씨를 뒤로 하고 함께 걷게 된 사람은 전 직장 동료사이라는 중년여성들인 로니와 아멜리아였다. 건강 및 취미 생활을 겸해 일주일에 최소한 하루라도 걸으려고 8개월전에 회원이 되었다는 이들중 아멜리아는 10번쯤 이벤트에 참가했지만 로니는 이번이 3번째라는데 공원에서 출발하여 약간의 산길을 오른 후 계속 주택가를 거쳐 다시 산꼭대기 공원을 돌아오는 10K 코스의 길안내는 아멜리아가 도맡았다.
안개 속을 걷다보니 로니는 어릴 적 가족들이 함께 산보를 나가면 언제나 이렇게 안개가 끼었다며 고향인 독일의 바바리아 지방을 회상했고, 아멜리아는 소나무 가지마다 이슬이 맺힌 길가 주택 마당에 핀 꽃들의 이름을 가르쳐주기 바쁘다.
예술가들이 많이 산다는 라구나 비치의 명성에 걸맞게 설계가 남다른 집부터, 유리창마다 스테인드 글래스로 장식한 집까지 집구경도 할 만 했는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우체통들이었다. 평범한 흰 우체통에 꽃, 나뭇잎을 그린 것은 열손가락으로 세기에 모자랐고 펠리컨의 머리와 날개, 다리를 붙여 놓은 것, 사람과 개가 탄 작은 서프 보드를 붙여 놓은 것, 우체통 주위로 꽃밭을 꾸민 것 등 이색적인 것이 많았다.
오르내리는 길 중간에 바라다 보이는 경치는 물론 반환점에 서면 사방으로 바다와 산이 한눈에 들어와 ‘탑 오브 더 월드’라 불린다는 이 코스의 정점인 해발 1002.5피트의 알타 라구나 팍에 도착했는데도 안개는 걷히지 않아 북쪽으로는 윌슨과 샌 안토니오 마운틴, 동쪽으로는 산티아고 봉, 바닷가를 향한 서남쪽으로는 산타 카탈리나 섬은 물론 오른쪽으로 팔로스 버디스까지 보인다고 적혀 있는 안내판만 잘 읽고 돌아서야 했다.
3시간쯤 걸려 6.2마일을 걷고 출발지점으로 돌아와 보니 낮 12시경. 안개는 그제야 조금씩 걷혀가고 있었는데 이날 참가자 수는 179명으로 어제보다 많았다고 했다. 안개 속을 함께 걸은 인연으로 로니, 아멜리아와는 이메일로 연락해 다음 좋은 코스에서 열리는 이벤트에 같이 참석할 것을 모의키로 한 후, 로스록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뜻밖에도 한인 부부가 등장했다. 1개월 전에 이 클럽을 알아 여러 코스를 다녔다는 애나하임 거주 김병철(54), 상영(48)씨 부부였다. 매일 조깅을 하는 자신과 달리 운동을 하지 않는 아내를 위해 주말에 함께 걷는다는 병철씨는 AVA 코스들이 걷기 편하고 아름답다며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 좋다고 추천한 남가주 인근 코스들을 모두 가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갑자기 6마일을 걷고 보니 며칠동안 다리는 뻐근했지만 몸도 마음도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몸도 마음도 좋은 운동을 한 증거였다. 인생이라는 여정, 사람들과 어울려 주위 경치 보아가며 재미있게 한발자국 두발자국 걸어가는 것이라 생각하니 사진 때문에 걱정돼 답답하기만 하던 안개조차 아름답게 회상됐다.
미국대중운동협회 (210)659-2112 www.ava.org
캘리포니아대중운동협회 www.walkcalif.org
라구나 터프 앤 서프 워커스 클럽
(949)448-8345 www.members.cox. net/laguna-walkers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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