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은 날이 갈수록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더불어 여기 저기서 일어나는 사건들도 수없이 많다. 이 사건이나 정보들을 우리는 신문을 통해 쉽게 접한다. 매일 매일 발행되는 이 많은 소식들을 오늘도 최진석(44). 김현숙(40. 베이사이드)씨 부부는 독자들에게 전달해주기 위해 새벽공기를 질주한다.
최씨 부부의 잡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상관없이 한인가정에 신문을 배달해주는 신문 직배원. 이들 부부는 이 일을 본보가 처음 직배 시스템을 시작한 2000년 월에서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다. 말하자면 본보의 직배시스템 시도의 첫 모델케이스다.
그러고 보니 최씨 부부가 신문배달을 한지도 어언 3년이 다 되었다. 처음엔 어려움도 많았지만 지금은 자리가 잡힌 탓에 보람도 느끼고 사명감도 갖고 있단다.
최씨 부부가 신문배달을 하기 위해 일어나는 시간은 매일 새벽 3시부터 3시 반 사이. 이들은 집을 떠나 4시 반경 한국일보사에 도착, 신문을 받은 즉시 차에 싣고 쏜살같이 그들의 직배지를 향한다. 차를 타
고 가면서 하는 일은 남편 최씨가 운전하는 동안 부인이 신문을 플라스틱 백에 일일이 넣는 작업을 대신한다.
그들이 매일 아침 신문을 배달해주는 곳은 베이사이드 11360, 11361지역의 270가구 한인가정이다. 처음 이들 부부가 받던 신문은 150부였는데 점차적으로 120부를 더 늘린 결과다. 최씨 부부가 부지런히 신문을 돌리고 나면 끝나는 시각이 7시 반경. 이 때부터 이들 부부는 함께 집에 돌아와 각자가 맡은 임무로 돌아간다. 신문배달 작업은 이들 부부에 있어서 시간
을 활용하기 위해 가진 일종의 파트타임 잡이다. 최진석씨의 본업은 헤어 전문회사의 총 매니저. 경제적 여유를 갖기 위해 최씨는 하루에 두 가지 잡을 뛰고 있는 것이다.
부부가 합작으로 새벽잠을 줄여 신문배달을 하는 대신 아내는 집에 남아 집안을 돌보면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는 책임을 맡게 된다. 배달을 마치고 집에 오면 남편 최씨는 오전 10시 시작되는 다음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 천천히 준비를 해나간다. 아이들이 아직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있을 경우 아이들의 학교준비를 도와주고 식사를 마친 후 집을 나선다. 그러
면 최씨의 아내는 잠시 눈을 부치고 다시 일어나 아이들이 오면 그들을 돌보면서 집안 일을 해나간다.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된 이들 부부에게는 자녀들의 교육문제도 중요했다. 그래서 아내가 집을 지키며 아이들이 이 나라 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쪽으로 의견을 같이 했다. 덕분에 최씨 부부는 신문직배를 하고 부터 경제적 여유도 많이 생겼고 아이들의 교육에도 지금까지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부부가 함께 뜀으로써 부부애를 더 다지고 자
녀들에게도 모범을 보인다는 점에서도 효과가 만점이라는 게 이들 부부의 설명이다.
특히 운송도중 차 속에서 아이들 문제나 집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털어놓고 상의할 수 있어 더 없이 이 시간이 유익하다고 말한다. 최씨 부부는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함께 봉사 활동을 하다가 눈이 맞아 결혼한 커플. 이들은 최씨 집안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 꾸준한 설득 끝에 89년도에 결혼, 당시 대학원에 재학중인 최씨와 일정한 직업이 없던 아내 김현숙씨와 지독하게 가난한 생활을 시작했다.
할 수 없이 결혼과 동시, 최씨는 학업을 중단하고 여행사에 3년 근무후 스테인레스 스틸 파이프 판매대리점을 운영했다. 그리고 7년 후 사업을 정리하고 지난 2000년 2월 미국 행에 올랐다. 아내의 반대가 있었으나 대학시절 신앙을 이끌어준 목사의 권유로 부부가 함께 오랜 기도와 대화를 거친 후 자신감을 갖고 미국에 오기로 결심했다는 것.
최씨 부부가 신문배달을 하게 된 것은 가족보다 먼저 미국에 들어온 최씨가 보험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아내가 뒤이어 들어와 함께 어학원에 등록, 영어공부도 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 교제를 하던 중 우연히 본보의 배달원 모집광고를 보고 지원한 것이 계기가 됐다는 것. 신문배달을 시작한 지 얼마 안돼 최씨는 또 낮 시간을 이용, 같은 교
회(뉴욕참교회)의 교인이 운영하는 세탁 도매업소에서 세탁물 운반 일을 하다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인 헤어 전문 업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최씨는 현재 직장이나 신문배달업무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내인 김현숙씨도 일을 할 것을 강력히 원했으나 최씨가 전적으로 반대, 아내의 역할은 아이들을 돌보는 것으로 결정했다. 너무도 달라진 언어, 문화 등에서 오는 이질감으로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있었으나 그들이 잘 적응하도록 아내가 도와 아이들은 무난히 미국생활에 잘 적응해
나가고 있다고 최씨는 말한다.
미국에서 살아가면서 이들 부부가 정한 방침은 우선 가족 각자가 신앙생활을 바로 할 수 있도록 늘 기도하며 가족간에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여 교회나 학교 등은 물론, 이웃과의 관계를 넓혀 가는 생활을 해나가는 것이다.
가족이 함께 공유하며 강조하는 것은 다른 환경에 대한 생활의 기회를 낭비하지 않고 가능한 철저하게 소유하고 참여하고 즐기는 생활이라고 한다. 또 책이나 자유로운 토론을 통한 꾸준한 의식개발도 중요한 생활양식의 하나로 꼽고 있다.
최씨네 가족은 늘 아침에 일어나면 한국에서부터 해온 성경 읽기, 잠자리 들기 전 함께 기도하기 등을 하면서 한국판 드라마 보지 않기, TV는 시간을 정해놓고 적당히 보기 등을 실천하며 나머지 시간은 가족간의 대화 및 정을 돈독히 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가능한 모든 생활의 초점을 가정과 가족에 맞추는 생활, 즉 온 가족이 수영을 배운다든지 하는 식으로 살고 있다. 그 이유는 최씨의 삶의 목표가 가족에 있고 아내인 김씨로부터 매력 있고 멋진 남편으로 인정받는 것과 아이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아버지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슬하의 큰 딸 예은(13. 7학년), 작은 딸 하은(8. 3학년)양이 집이 학교, 교회보다 더 재미있다 할 정도로 최씨네 가족은 화목하다. 부부도 가능한 대등한 인격체로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특히 남편인 최씨가 호칭이나 말투가 고압적이거나 권위적이지 않게 신경을 쓰고 있다.
또 아이들이 실수를 할 경우도 충동적으로 매를 드는 것 잘못을 따지면서 개선방안을 찾는다. 그리고 가장인 최씨를 포함 누구든 잘못했을 경우 처벌규정을 정해 예외 없이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최씨네 가정은 최씨를 중심으로 온 가족이 서로 사랑으로 똘똘 뭉쳐 모든 일을 민주적으로 해나간다고 한다.
이런 집안이기에 최씨가 하는 밖의 일도 모두 다 잘 돼간다. 매사를 착실하게 한 덕분에 주 직장인 헤어 업소에서도 인정을 받아 배달직에서 얼마안가 총 매니저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신문배달직도 맡은 바 업무를 하루도 빠짐없이 충실히 해 그 동안 신문직배가 더 많은 지역으로 확산되는데도 큰 몫을 담당했다. 때문에 최씨는 "남다른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헤어 전문업소에서 배달직으로 채용된 최씨가 어느 날 갑자기 매니저가 되자 히스패닉, 흑인 동료들로부터 질시를 받아 어려움도 많았다. 그러나 최씨는 끝까지 참고 성실하게 일해 이제는 이런 문제점이 다 해소되었다고 한다. "신문배달을 처음 시작할 때는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일이 좀 어렵긴 했지만 이제는 많이 숙달돼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최씨는 "자신의 노력으로 독자가 신문을 받아 보는 것이 너무나 기쁘다. 그러나 이따금 배달된 신문이 분실되는 사고가 있을 때는 정말로 속상하다"고 말한다.
뉴욕타임즈의 경우 배달된 신문을 가져가면 2백 달러의 벌금이 물려진다면서 이민성숙기에 접어든 한인들은 이런 불미스런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라고 최씨는 덧붙인다.
최씨는 "남의 것을 집어 가는 것도 분명히 절도행위인데 한인들 가운데는 그런 관념이 없기 때문인지 때로는 배달을 했는데도 안 왔다는 독자들의 불평을 듣는 경우가 있다"면서 오늘도 그런 어느 독자의 집에 저녁 때 다시 신문을 갖다주어야 한다며 신문 몇 부를 따로 챙겨놓는다.
어둠이 짙게 깔려 있는 새벽 길, 한파도 마다하고 열심히 뛰는 이들 부부의 삶 속에선 이민자의 진정한 노력과 땀이 베어있음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여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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