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인 관리소를 탈출,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정착한 전 북한 국가안전보위부(한국의 국정원과 기무사를 합쳐놓은 조직)의 중좌(중령급) 김 용씨는 북한동포의 참상을 고발하고, 특히 북한의 아우슈비츠인 관리소의 실태를 폭로하기 위해 세계를 누비고 있다.
지난달 26일 탈북난민보호 뉴욕협의회(회장 손영구 목사)의 초청으로 뉴욕에 온 그는 뉴욕과 워싱턴, 사우스 캐롤라이나, LA 등지를 돌며 북한의 실상을 동포들에게 알렸다. 워싱턴에서는 미국 정치인들을 만났고, 헐리웃에서는 북한의 참상을 알리는 영화 제작을 추진했다.
누구보다도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실태를 잘 알고 있는 그는 슈피겔 감독을 만나 영화 제작을 위해 모든 자료를 제공하겠다고 했다.김씨는 지난 1998년 9월, 평남 개천에 있는 관리소를 탈출하여 두만강을 건너 중국땅을 밟았다.
한 번 들어가면 죽어서 밖에 나올 수 없다는 관리소를 탈출한 경위에 대해서는 석탄 운반 열차를 이용했다고만 할 뿐 다른 사람들의 탈출을 보호하기 위해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한국 선교사의 도움으로 몽고로 넘어간 후 몽고를 통한 난민 1호로 한국에 귀순했다. 그 후 다시 중국에 건너가 탈북자 2명을 연길에서 몽고로 무사히 갈 수 있게 돕기도 했다.
김씨의 부모가 지어준 본명은 김봉수, 그리고 두번째 개명한 이름은 박봉수이다. 한국에 온 후 주민등록을 발급 받으면서 과거를 잊기 위해 스스로 지은 이름이 김 용이다. 3개의 이름처럼 김씨는 3가지 인생을 살아왔다.
김씨는 6.25가 나던 해인 1950년 황해도 신계군 적여면 대평리에서 출생, 올해 53세가 되었다. 6.25전란 때 고아로 황해남도 벽성 애육원(고아원)에 기탁되어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만 배우며 자라났다. 초등학교를 나와 나진항과 웅상상 건설현장에서 일하기도 했고, 1970년 군에 입대하여 호위총국의 소위로 임관했다. 그 후 김책공대에서 6년간 공부했고 1980년부터 87년까지 인민군 중좌로 인민 무력부 청사관리국 원산 출장소장을 지냈다.
그런데 1986년, 사망한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가 나타나면서 가족의 내력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6.25 전 38선을 넘나들면서 무명 장사를 했는데 미국 스파이로 활동하다가 북한군에 총살당했고, 어머니는 신의주 교화소로 끌려갔었다. 외할머니는 굶어 죽을 위기를 모면키 위해 김씨 형제를 고아원에 맡겼다는 것이다. 김씨의 형은 후에 이 사실을 알고 월남하려다
발각되어 총살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절망끝에 어머니와 상의하여 호적을 위조하여 신분을 바꾸기로 했다. 어머니가 같은 고향 출신이며 도 부위원장을 지냈던 박복덕과 불륜관계를 맺어 자신을 낳은 것처럼 꾸며 이름을 박봉수로 바꾸었고, 1만달러의 뇌물을 써서 호적을 바꾸는데 성공했다.
그러자 그는 성분이 우수한 사람으로 신분이 상승했다. 1988년에는 일본과 해산물을 거래하는 서해 아사히 무역주식회사의 대리인(부사장)으로 영전했다. 무역일꾼으로 맹활약하며 김정일에게 36만달러의 충성자금을 바친 공로로 1990년에는 혁명열사증을 받았다. 그리고 이 회사가 국가
안전보위부로 이관되면서 고위층의 특별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신분 위조가 들통나면서 그는 하루아침에 반혁명분자로 낙인 찍혔다. 1983년 5월 체포된 그는 이력을 속이고 국가안전보위부에 침투한 목적을 대라는 3개월간의 모진 고문 끝에 평남 개천에 있는 국가안전보위부 제 14호 정치범 관리소로 끌려갔다. 그는 무진 2갱 굴진조에 배속되어 탄광 노역을 하게 됐는데 당시 조장은 인민군 소장으로 인민무력부 대외간
첩양성소의 책임자로 있다가 숙청된 김재근이었다고 했다.
14호 관리소는 정치범 수용소 중에서도 가장 처참한 곳이라고 한다. 수용자는 정부제도에 반대한 자, 김일성·김정일을 모독, 비판한 자, 간접관련자, 기독교를 믿다가 발각된 자, 공장 기계를 파괴한 자 등인데 김일성·김정일을 비판한 자와 군사정변을 기도한 자를 가장 악질범으로 다룬다는 것이다.
김씨가 처음 본 관리소의 모습은 지옥 그대로였다고 한다. 사람들의 몸은 인간의 형체만 있을 뿐, 살점이라곤 없었고 누더기 차림에 석탄가루를 뒤집어 쓴 모양이 장작처럼 보였다고 한다. 한 끼 음식은 통강냉이 20~30알에 소금국이 전부이니 이런 식사로 영양실조가 되어 1백미터를 걸어가는데 15분도 더 걸리고 사소한 부상을 당해도 회복되지 못하고 사망한다는
것이다.
굶주림이 얼마나 심한가 하면 목욕을 안 시켜 이가 생기면 이도 고기라고 입에 넣고 씹어먹는가 하면 쥐를 잡아먹을 수 있으면 행복으로 여겼다고 한다.
수감자를 감시하는 보위원들은 수감자끼리 서로 밀고하게 하고 수감자들을 파리 목숨처럼 죽이기도 했다고 한다. 한 번은 석탄 운전공이 석탄을 운반하고 돌아오다가 전차길에 떨어진 밤알을 주웠다고 보위원이 사정없이 때리고 발길질을 한 끝에 권총을 뽑아 쏘아 죽이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또 농구선수 출신인 갈리영은 보위원이 잊고 놓고 간 소꼬리 채찍을
물에 불려 뜯어 먹었다가 매를 맞고 후유증으로 3일만에 사망했다고 한다.
한 인민군 출신 수감자는 주머니 검사에서 손바닥만한 신문지 조각이 나온 죄로 이틀동안 나무에 매달아서 죽이기도 했다고 한다. 김씨는 2년간 이 관리소에 있는 동안 25명 정도가 즉결처분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렇게 사람이 죽으면 죽은 사람의 옷을 서로 가지려고 싸우고 소똥에 박힌 강냉이를 서로 먹겠다고 싸운다고 그는 말했다.
김씨는 14호 관리소에 있을 때 단 한번 무진2갱 밖으로 나간 적이 있는데 그 때 여자 수감자를 보았고, 미군이나 영국군 포로로 추정되는 외국인 3명을 보았다고 했다. 김씨로부터 3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작업을 했던 그 외국인은 나이 70세 전후에 키 180cm 정도였고, 파란 눈에 허리가 휘어져 있었다고 했다. 김씨는 조장인 김재근으로부터 장전호 전투에서 미군들을 포로로 잡았는데 이들이 강제노동에 투입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김씨는 1995년 5월 도로확장공사를 하고 있을 때 거대한 철제 시설물을 실은 대형 위장 트레일러 15대와 냉동트럭 5대가 지하시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후에 18호 관리소로 이감된 후 그것이 핵시설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18호 관리소에는 영변 원자력시설에 근무하다 수감된 김종훈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도 이 이동을 보았다면서 핵시설이라고 귀띔해 주더라는 것이다.
그 후 김씨는 운 좋게도 대동강을 끼고 14호 관리소와 마주한 18호 관리소로 이감되었다. 국가보위부 시절 자신을 총애했던 고위간부의 배려였던 것 같았다고 했다. 18호 관리소에서는 산나물을 뜯어먹을 수도 있고 집단으로 라디오와 TV를 시청할 수 있었다. 14호 관리소에서는 남녀를 격리 수용했는데 18호 관리소에서는 한 가족에 방 한간을 배정해 주었다.
김씨는 이곳에서 어머니를 만나 40년만에 모자가 함께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이곳에서 탈출을 시도하다가 잡히면 공개총살되었고 도주자 가족은 나무에 매달아 죽였다.
김씨는 탈출을 결심하고도 어머니를 사지에 두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남쪽으로 가라, 남에는 6.25때 월남한 외삼촌이 있고, 아버지 친지들이 있다”면서 김씨의 등을 떠밀었다고 한다.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는 영화는 북한 과학자 출신으로 탈북한 이인복씨와 함께 추진중이다.
김씨는 한편으로 목회자의 길을 준비중이다. 몽골 국경을 넘기 위해 비바람이 몰아치는 칠흑같은 고비사막을 밤새도록 헤매면서 하나님에게 부르짖었을 때 불기둥의 안내를 받았다는 그는 이 체험을 통해 기독교를 영접하여 현재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졸업 후에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여생을 바치는 것이 소망이라고 했다.
<이기영 주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