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람.사람들
▶ 남편은 시내버스기사. 부인은 홈 에이드
이민 온 한인들은 대부분 처음에는 주급생활을 하다 경력이 쌓이면 더 큰 부를 얻기 위해 비즈니스 길로 들어선다. 이런 상례를 벗어나 나이가 들어도 끝끝내 직장생활을 고집하며 또박또박 살고 있는 노부부가 있어 눈길을 끈다. 주기주(73). 주정순(65. 플러싱거주)씨 부부가 바로 주인공이다. 이들 부부는 노년임에도 불구, 미국의 한 시민으로서 당당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직장과 가정생활을 잘 해나가고 있는 한인이다.
덕분에 이들에게는 당장 손에 잡히는 큰 돈은 없지만 미국사회가 제도적으로 마련한 은퇴연금을 열심히 적립하고 세금도 차곡 차곡 내온 관계로 은퇴를 한다해도 아무런 걱정이 없는 상태다. 그래서 이들 부부의 마음은 이 세상 누구보다 부자고 언제 어느 곳에 간다 하더라도 떳떳하고 남부러울 게 없다.
노씨 부부가 특별히 자랑스럽고 보람되게 생각하는 것은 건강한 몸으로 일할 수 있는 데다 직장에서 부부가 모두 직원들이 마스코트로 여길 만큼 인기가 대단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슬하의 3남2녀가 잘 자라 부모처럼 미국 속의 한 직장인으로 성실하게 살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씨 부부의 집안은 부모 자녀 모두 다 주급생활일지라도 보람을 가지고 미국 생활을 안정되게 다져가고 있다. 주씨 부부의 직업은 남편 주씨가 퀸즈 운행 Q25 시내버스 운전기사이고 아내 주정순씨는 뉴욕시와 반관반민으로 운영되는 홈 케어 전문기관 해낙 사무실(아스토리아 스타인웨이 소재) 소속 홈 에이드(Home Aid). 주씨는 미국에 와 10여년간 일본회사 관광버스 기사로 일하다 공항버스로 옮겼다. 그러나 회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65세 때 은퇴했다 지금의 버스 회사에서 일하기를 요청받아 다시 운전대를 잡게 됐다.
주정순씨가 홈 에이드가 된 것은 95년 우연히 한 홈 케어 에이전트를 찾아가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소정의 교육을 거쳐 시험에 통과된 후 그는 정식 홈 메이드로 지금까지 보람있게 일해오고 있다. 물론 이들 부부도 지금의 일을 하기까지 많은 고생을 하였다.
남들처럼 남편 주씨도 처음에는 이민 와 세탁소에서 옷 픽업 등 온갖 막일을 다 했다. 부인도 처음에는 허드레 일을 닥치는 대로 맡아 했다. 주정순씨는 이미 한국에서 8군에 다닐 때 어느 정도 익힌 영어로 70년부터 미국 골프장에서 일했으며 닥터 사무실 청소, 주유소기름 급유 및 세일 등 세 가지의 잡을 뛰었다. 하루 8시간 일하고 나서는 저녁 또 청소 일을 하였으며 주말에도 파트타임으로 기름 넣고 판매하고 하면서 또순이처럼 열심히 일했다.
덕분에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으나 이들 부부는 절대로 비즈니스는 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미국 사람들의 생활방식대로 사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로지 아이들을 돌보면서 미국인들처럼 직장을 다니며 연금을 들어두고 세금을 꾸준히 내면서 생활했다.
은퇴 후 편안하게 살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재산을 쌓은 것이다. 남편 주씨도 마찬가지다.그렇게 하다 보니 실제로 이들 부부에게는 많은 베네핏이 따랐다. 비즈니스를 할 경우 시간도 달리고 여유도 없고 한데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미국인들처럼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생활을 고집한 탓인지 비즈니스에만 매달리는 한인들을 보면 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것. 직장에 다니면 가족들의 건강보험은 물론 자녀들을 여름 캠프에도 보낼 수 있고 본인이 공부하고 싶으면 학자금도 지원 받을 수 있다. 철철이 휴가도 받는 등 직장생활에서 얻는 베네핏을 설명한다. 이들 부부는 그동안 미국에 와 자신들이 해온 생활이 너무나 잘했
다고 생각한단다.
주씨는 "미국에 와서도 한인들은 한국 직장만 고수하고 죽어라 일만하면서 세금도 잘 안내는 경향이 있다"며 "일단 미국에 사는 한은 돈을 얼마 받든 미국 속에 파고 들어가 적은 돈이라도 정식으로 세금을 내면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만 크레딧도 쌓고 은퇴 후에 안정되게 살수 있다면서 자기네는 이렇게 한 결과 누가 뭐래도 지금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주정순씨가 하는 홈 에이드 잡은 회사가 지정해주는 대로 환자의 가정을 직접 찾아가 돌보는 일이다. 말하자면 병원에서 간호원이 하는 일을 대행하는 것이다. 그가 현재 보살피고 있는 환자는 90세의 한국 할머니다. 훗날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느끼는 점이 많다고 한다. 그는 이 할머니를 주 5일 60시간씩 돌보고 있다. 일은 힘들다기는 하지만 보람을 느낀다
는 것. 이 직업은 환자를 보살피는 일인만큼 참을성도 있어야 되고 마음에 봉사정신이 없으면 곤란하다고 말한다.
주정순씨는 "이 잡이 너무 좋아 한인들도 여러 명 소개한 일이 있는데 대부분 한번 왔다가는 모두들 그만 둬 두 번 다시 소개는 하지 않는다"며 "문제가 기본적으로 영어가 안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간혹 미국 와서 인종차별을 받았다는 한인들을 보는데 나는 아직껏 한번도 인종차별을 받은 일이 없다"며 "모든 것이 다 주는 대로 받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는 "대체로 미국 본토인은 모두가 좋은데 뉴욕이 온갖 인종들이 다 모여 살다 보니 가끔 정서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인종 차별같은 말이 나오게 된다"며 "요즘 들어서는 살기가 더 힘들고 메말라지다 보니 더욱 문제가 많은 것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뉴욕은 젊어서 막벌이 하는데는 좋지만 아이들을 낳고 제대로 살려면 조용한 외곽지로 가 미국인들과 같이 섞여 사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의견도 내놓는다. 주씨는 또 "20년 넘게 미국에 살아도 영어 한마디 못해 쩔쩔매는 한인들이 많다"면서 "미국에 사는 상당수 한인들이 한국인끼리만 만나고 한인교회, 한인식당, 한국 식품점만 왕래하고 있다"며 안타까워 한다.
주정순씨는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이런 대접을 받고 일하겠느냐"며 "내 자신 떳떳하고 또 3
개월에 한번씩 특강으로 건강에 관해 공부하니 건강에 대한 상식도 많이 늘었다. 결과적으
로 보면 보고, 듣고, 배우고 실제 경험함으로써 남의 건강 돌보고 내 건강 지키고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니겠느냐"고 흐뭇해한다. 즉 남을 도와주니 기분 좋고 돈도 벌고 편하니 사는
게 그저 즐겁고 기쁠 뿐이라고 한다.
직장이 재산인데 한국사람들은 그걸 잘 몰라 덮어놓고 당장 현금만 많이 주는 곳에 가서 일
하는 경향이 있는데 제대로 된 미국 직장에 들어가면 베네핏이 너무 많다고 주씨는 귀뜸한
다. 특히 장사하면 아무래도 걱정이 많은데 직장생활을 하면 돈은 적어도 계획적인 생활을
할 수 있으므로 마음 조릴 일 없고 시간과 돈 때문에 쫓기거나 남에게 돈 빌리는 일이 없어
이래저래 좋다고 말한다.
주씨 부부는 서로 8년 차이지만 언제나 친구처럼 마음을 터놓고 산다고 산다. 이들은 하루
에 일어났던 일이나 서로 갖고 있는 생각을 항상 흉허물없이 터놓는다. 밖에서는 서로가 존
칭을 썼다가도 집에 와서는 친구처럼 격의 없이 말을 한다. 서로가 마음을 열고 살아야만
정이 더 가까워지고 장벽이 없어야 문제가 생기기 않기 때문이라는 것.
이들 부부는 서로간의 사이에 감춰진 것이 없다. 문제가 있을 경우 상대방의 이해를 구하고
싸우고도 대화로 화를 풀고 한다는 것이다. 서로간에 신뢰감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
이다.
주씨 부부의 삶을 보면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배울 점이 많다. 부부 관계는 물론, 자녀교육 , 건강관리, 그리고 돈 버는 법, 노후 대책 등등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한 마디로 평범 속에 진리가 들어있다.
<여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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