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튼 아일랜드의 한국전참전용사회장인 조셉 칼라브리아(72.Joseph Calabria)씨는 요즘 마음이 착찹하고 편치 않다. 자신이 반세기 전 한국에서 총을 들고 싸웠고 한국의 자유를 지켰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온 그였다.
지난해 한국에 갈 기회에 건강 악화로 가지는 못했으나 비디오를 통해 한국의 발전상을 보면서 한국에 대한 애착을 키워 온 그였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 젊은이들의 반미감정이 격화되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미국을 배척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심한 갈등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맨하탄에서 나서 브루클린에서 살던 칼라브리아씨가 한국에 파병되기 위해 징집된 것은 20세 때인 1951년 10월이었다. 그는 뉴저지의 포트 딕스에서 신병훈련을 받고 다음 해인 1952년 4월 일본과 부산을 거쳐 춘천에 배치됐다. 그는 수송대의 트럭 운전병으로 18개월간 복무했다. 주로 미군병력과 실탄, 식품을 실어 나르는 일을 했다고 한다.
당시 미군의 처지는 오늘날과는 비교 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근무환경이 열악했다고 한다. 군복을 비롯한 대부분의 장비가 2차대전 때 쓰던 재고품이어서 봄에 사용하는 슬리핑 백으로 겨울을 났고 8인용 텐트 속에서 30명이 새우잠을 자기도 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여름은 지독히 무더운데다 겨울은 매섭게 추웠고 도로 사정이 나빠서 고생했던 기억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어려운 여건에서 군생활을 한 탓인지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전우애는 각별히 돈독하다고 했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스태튼 아일랜드 한국전참전용사회의 정식 명칭은 한국전참전용사 키블레한 상병지부(Cpl. Allan F. Kirlehan Chapter)이다. 키블레한 상병은 17세 소년으로 한국전에 참전, 중공군 포로수용소에서 살해된 스태튼 아일랜드 최초의 한국전 희생자라고 한다. 그를 추모하여 스태튼 아일랜드에는 키블레한 스쿨도 있다.
이 참전용사회는 현재 회원이 250여명인 뉴욕지역에서 가장 큰 한국전참전용사회이다. 매년 6.25 때 맨하탄 남단의 배터리팍에서 열리는 6.25 기념식에 참가하고 베테란스 데이에는 맨하탄의 퍼레이드에도 참가한다. 매월 3번째 목요일에는 회원들의 정기모임이 있는데 이 모임에서는 회원들의 우의를 다지고 재향군인들의 관심사를 서로 의논한다.
이 한국전참전용사회의 노력으로 지난 1996년에는 스태튼아일랜드의 간선도로 중 하나인 리치몬드 파크웨이가 코리안 베테란스 파크웨이로 개칭되어 현재 사용되고 있다. 칼라브리아씨는 한국전을 ‘잊혀진 전쟁’이라고들 하지만 참전용사들에게는 결코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고 했다.
칼라브리아씨는 평생동안 부두 하역일을 해오다가 6년 전에 은퇴한 소박한 소시민이지만 미국을 옹호하는데는 누구보다도 열성이다. 한 번은 베테란스 데이에 맨하탄에서 거행된 퍼레이드에 참가했는데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단 러시아 재향군인들이 함께 참가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칼라브리아씨는 미국 베테란스 데이에 러시아의 재향군인이 어떻게 참가했느냐고 주최측에 따졌다. 주최측은 양국의 우의를 위해 찬조 참가했다고 해명했다.
칼라브리아씨의 생각으로는 미국과 러시아 재향군인회가 우의를 다진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소련은 6.25 때 북한을 조종하여 전쟁을 일으켰고 미군이 싸운 북한을 도왔다. 그렇다면 소련이 미국의 적이지 우방일 수는 없었다. 냉전시대에 이 세계에서 미국의 가장 큰 적으로 소련을 빼고는 어느 나라가 있단 말인가. 칼라브리아씨는 주최측에 러시아 재향군인의 참가를 끈질기게 불평했다. 결국 그 후 베테란스 데이 퍼레이드에 러시아 재향군인들은 참가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요즘 이라크전쟁을 앞두고 미국에 반기를 들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에 대해서 유감이 이만저만 아니다. 프랑스는 1차대전과 2차대전에서 미국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베트남에서 공산군에게 당했을 때도 미국이 구원해 주었기 때문에 미국이 은인의 나라인데도 미국의 뒤통수를 치고 발목을 잡아 은혜를 원수로 갚는 나라라고 했다. 독일도 전후 미국의 도움으로 독립하여 경제 대국으로 번영한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지금 미국을 적대시한다고 그는 규탄했다.
칼라브리아씨는 그런 점에서 미국인 중의 미국인이다. 그는 미국이 다른 나라를 돕는 위대한 나라라고 했다. 미국은 결코 세계를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나 다른 나라들이 불행히도 미국의 국부를 질시하여 미국의 지도력에 반감을 갖고 적대시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한국에 대해서도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미국은 6.25 때 한국을 희생적으로 도운 나라이다. 이와 반대로 소련은 6.25전쟁을 일으키도록 북한을 사주한 나라이고 중국은 군대를 보내서 북한을 도운 나라이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 한국이 도움 준 미국과 적대행위를 한 중국, 러시아를 동일하게 대한단 말인가. 미국에 크레딧을 주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지금 한국인들의 생각이 바뀌고 세상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한반도에는 전쟁 위험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주장이고 미군이 계속 주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그는 할 말이 많았다. 지금 남한은 북한이 두려워서 북한을 적으로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참으로 우스운 일이라고 했다. 또 동족이라고 무조건 감싸는 것도 어리석다고 했다. 미국도 남북전쟁 당시 나라가 두쪽으로 갈라져 동족이 총부리를 서로 겨루고 살육하는 전쟁을 했다고 말한 그는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위해서는 희생을 치루어야 할 때도 있다고 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북한에 식량을 주어 북한의 군대를 키우는 결과가 된다면 무조건 식량을 주는 것도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남한이나 미국과 같은 자유국가에서는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을 보내지만 북한이 이를 군량미로 쓴다면 결국 적을 도와주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칼라브리아씨는 한국전참전용사회의 활동을 통해 스태튼아일랜드 지역의 많은 한인 유지들을 좋은 친구로 사귀고 있다고 했다. 그가 겪은 한인들은 모두 착실하고 성실한 사람들이어서 한인들에 대한 좋은 인상만 가지고 있다고 했다. 특히 그는 한국전참전 당시 자신의 하우스보이를 했던 박인선씨(65)와 50년 동안이나 매년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 받고 있다고 했다.
언젠가 한국을 방문하면 그가 공항에서 마중해 줄 것이라고 했다.그래서 칼라브리아씨는 한국이 잘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더욱 좋아지고 동서독처럼 남북한이 통일되어 한국이 더 잘 살게 되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말하기도 했다.
<이기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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