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송년행사로 들뜨기 쉬운 연말. 술 한두 잔쯤 들이키고 운전대를 잡는 일은 흔하다. 설마 내가… 이 쯤이야… 하기 쉽지만 그게 그렇지를 않다. 각 지역 경찰과 셰리프, 캘리포이나 고속도로 순찰대(CHP) 등은 부쩍 음주운전 단속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CHP와 함께 지난 주말 LA 다운타운 프리웨이 망을 누비며 단속의 현장을 취재했다.
지난 주말 28일 밤 9시30분. LA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엉켜있는 110번, 101번, 5번, 10번 프리웨이를 관할하는 CHP 센트럴 LA 스테이션. 야간근무를 담당하는 20여 경관들이 사전트 레이에스로부터 브리핑을 듣고 있다. 핵심은 테러경계 강화와 연말 음주운전(DUI) 단속. 주말에 연휴까지 겹쳐 ‘대목’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로버트 카타노와 세실 홀랜드 경관과 함께 순찰차량에 올랐다. 고속도로 순찰대가 운전자를 잡는 경우는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거나, 속도제한을 넘어섰거나, 음주운전을 한 경우. 특히 불안한 운전은 대형 사고로 연결되기 때문에 야간순찰은 음주운전자 검색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된다.
다운타운 110번과 101번 북쪽 방면 도로가 교차하는 지점. 두 경관이 거의 동시에 차선변경 때문에 관할구역 내에서 사고가 가장 많은 곳이라고 말하는 순간, 검은색 SUV가 차선을 조금씩 이탈해 가며 불안한 상태로 앞서가는 것이 발견됐다.
음주운전 가능성이 크다고 감지한 순찰차는 1차 신호를 보냈지만, 차량이 어떤 기색도 보이지 않자 카타노 경관은 사이렌을 킨 채 차를 지그재그로 움직이면서 본격적인 차량 추격을 위한 소위 ‘청소’ 작업을 시작했다. 뒤차들과의 간격이 벌어지자 순찰차는 사이렌을 울리며 본격적인 추격에 들어갔다.
귀를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 출구로 빠져나가라는 경고방송에도 불구, 멈출 듯하던 차량은 결국 110번 프리웨이가 끝난 패사디나에서 멈춰 섰다. 이미 지원차량 여러 대가 도착해 기관총을 운전자에 겨눈 채 운전자 체포에 들어갔다. 경관들의 명령을 불응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들은 운전자를 땅에 누인 채 수갑을 채우고 차량을 수색하는 등 냉혹할 정도로 ‘원칙대로’ 행동했다.
운전자는 노령의 히스패닉 백인 여성. 음주도 아니었는데 사연을 들어본 즉, 순찰차가 쫓아오자 어찌할 줄을 몰라 계속 직진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는 것. 즐거운 주말 저녁 총구 앞에서 수갑까지 차게 된 여성은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이 여성에겐 가주 차량국(DMV)에서 다시 면허시험을 보라는 티켓이 발부됐다.
카타노 경관은 스페인어 교육을 따로 받지만 다인종이 섞여 사는 LA에서는 역시 언어가 근무의 큰 장벽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프리웨이 위에서는 절대 차량을 멈추면 안되기 때문에 가까운 출구로 나가도록 유도하는데 운전자들이 이를 잘 몰라 무척 당황스러워 한다고 말했다.
순찰차는 음주운전자들이 가장 많이 애용(?)한다는 101번 프리웨이로 방향을 틀었다. 조금 비틀거리며 운전하는 백색 차량이 나타났다. 차량을 세우고 운전자가 술을 마셨는지 확인 절차에 들어갔다. 경관의 손전등에 따라 눈과 혀를 이리저리 굴리고 한 다리를 들고 자신이 정상임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굴욕적이기까지 한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한 흑인 운전자는 그래도 ‘땡큐’를 연발하며 잽싸게 떠나갔다.
잠시 후 55마일 지역에서 75마일 이상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 청색 알티마 차량이 발견됐다. 히스패닉 여성 운전자는 음주운전 테스트를 받은 후 경고를 받고 무사 방면됐다. 홀랜드 경관은 낮이라면 딱지감이지만 저녁에는 음주만 아니면 경고를 주고 보낸다. 밤에는 사고를 막는 것이 더 급선무라고 나름의 순찰원칙을 밝혔다.
CHP 순찰차가 조용히 프리웨이 한편을 달리고 있더라도 그건 ‘나’도 감시당하고 있다는 증거다. 카타노와 홀랜드 경관은 프리웨이를 달리며 끊임없이 차량의 상태를 점검해 조금이라도 의심이 될 경우 근접해 운전자의 상태를 파악했다.
새벽 1시, 110번 프리웨이. 타이어가 펑크난 듯한 고물 차가 시야에 들어왔다. 우여곡절 끝에 프리웨이를 내려선 차에는 5명의 히스패닉이 타고 있었다. 차량의 원래 주인이 한잔 들이켜 친구가 대리운전 했는데 불법체류자로 면허증이 없었다. 홀랜드 경관은 음주측정을 마친 후 차 주인이 운전하도록 명령한 후 보내줬다.
홀랜드 경관은 저런 차량 운전자들은 대부분 벌금을 낼 능력이 없고, 운전자가 면허도 없는 불체자여서 큰 문제가 없어 보내줬다고 설명했다.
잠시 지루한 듯 여겨지던 새벽 3시, 사고 현장으로 이동하라는 무선이 들어왔다. 5번 프리웨이 로스펠리츠 남쪽 출구. 벤츠 한 대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있다. 사고를 먼저 목격한 LA 경찰국 경관으로부터 사고를 인계 받은 카타노 경관은 조사에 착수했다. 부주의로 인한 사고 같았지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카타노 경관은 음주운전 테스트를 실시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단순사고로 처리될 줄 알고 동승자와 함께 웃고 떠들던 백인 남성 운전자의 손목엔 차가운 수갑이 채워졌다. 카타노 경관은 운전자는 다운타운 구치소로 보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밤 센트럴 스테이션에서 투입된 순찰차는 9대, 경관은 18명. 잘 훈련된 36개의 눈초리들은 아침 6시 교대시간이 되기까지 한인타운에 인접한 4개의 프리웨이 곳곳에서 타인까지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음주운전자들을 찾아내기 위해 번뜩이고 있었다.
<글 배형직·사진 이승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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