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이 저물어 간다. 지난해에도 크고 작은 일이 끊임없이 벌어져 희망과 웃음, 우려와 슬픔이 교차했다. 지난 1년간 현장을 누볐던 사회부 일선 취재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면에 미처 옮기지 못했던 못다한 얘기들을 통해 한해를 정리한다.
<참석자>
안상호 사회부장, 김정섭 부장대우, 황성락 차장, 구성훈 차장대우, 김종하·김경원·김상경· 배형직·이오현 기자.
-벌써 한해가 지나갑니다. 항상 이 맘때면 아쉬움이 크게 남는 것 같습니다. 올해도 크고 작은 일이 수없이 많았는데 우선 한인사회 애기로 시작해 봅시다.
-아무래도 ‘미러클마일 모녀피살사건’을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전혀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 사건은 아직도 한인들 사이에서는 범인이 누군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가시지 않고 있는데 해를 넘긴다는 생각을 하니까 가슴이 답답해 집니다.
-지난 5월 팜 스프링스 근처에 있는 라퀸타시에서 발생한 한인 브루스 이 경관 피살사건은 한인경찰이 근무중 피살됐다는 것이 이유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사건발생 소식을 접한 뒤 피해경관이 한인인지 여부가 도무지 확인이 안돼 애를 태웠지요. 때문에 인터넷은 물론 사건발생 지역내 로컬TV 방송국과 비슷한 이름을 가진 주민들의 자택에까지 일일이 전화를 거는 원시적인 방법까지 총동원하느라 진땀을 뺏습니다.
-단체들도 탈이 많았습니다. LA한인회는 험난한 한해를 보냈습니다. 전무후무한 회장당선 무효판결을 받아 항소심까지 갔고 이사장 직무정지에 자격박탈이란 사상초유의 결정을 내려 26대 임기 막판에 이래저래 구설수를 자초했습니다. 새 회장단이 들어설 내년에는 사랑과 화합으로 감싸주는 한인회를 기대합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다는 평통 역시 여행경비 위장 수령파문에 이어 술집사건으로 한바탕 곤욕을 치렀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젊은 위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내년에는 알찬 모습을 보여줄 것이란 희망을 걸어 봅니다.
-이민 100주년의 뜻깊은 해에 이민 기념사업을 두고 탈도 많고 말도 많았습니다. 로즈퍼레이드 꽃차 출품을 두고 벌어졌던 해프닝은 주최측의 원칙 없는 운영에 내분까지 겹쳐져 힘든 고비를 넘길 때도 있었어요.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돼식의 아집 때문에 흔들린 사업도 있었지요. 잘한 일 뒤에는 부족한 점이 있는 법 아니겠어요. 지적하고 넘어 갈 일들입니다.
-대한인국민회 기념관은 폐관 30여년만에 올해 재개관 됐습니다. 아쉬운 것은 국민회관 관리 책임이 있었던 흥사단이 아직도 제 역할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한인사회의 중지가 모여지는 사업인 만큼 흥사단의 조속한 역할 분담이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한인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라서 그런지 100주년이 들어가는 타이틀을 단 행사가 참으로 많았죠. 물론 100년간의 성과를 종합하는 성격의 행사도 있었지만, 너도나도 ‘100주년’이란 거창한 이름을 갖다 붙이는데 열심이지 않았는지 반성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도 주민의회에 대한 한인사회의 이해와 관심이 저조합니다. 내년 3월에 35명의 대표를 뽑아 매달 정기 회의를 통해 타운내 현안을 토의하게 됩니다. 한인타운의 목줄을 잡게 되지요. 내년 초 한인사회가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재외동포법 개정문제도 올 한해 한인사회의 깊은 관심을 모았던 사안이었습니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12월31일까지 개정안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자동폐기될 위기에 놓였던 이 법은 법무부 시행령 개정안 마련으로 미주한인사회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게 됐지요. 하지만 중국동포 등은 법적용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돼 법제정에 앞장섰던 미주한인들이 눈총을 받고 있습니다.
-온다 못온다 말도 많았던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방미에 관한 주류언론의 관심은 기대이하였습니다. 일각에서는 신변문제 등을 집중 거론하면서 ‘김빼기 작전’을 펼친 한국정부의 작전이 성공했다는 볼멘 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산불취재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었지요. 한밤중에 현장에 도착해 한인피해자를 찾는 것은 마치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이곳 저곳을 죽어라 뛰다가 마침내 첫 피해자를 접할 수 있었을 때 정말 뿌듯했습니다.
-연기 속을 헤집고 다니다 보니 어느새 귀와 코 속에 재가 들어가 손가락으로 만지면 검게 될 정도였습니다. 자동차도 며칠동안 냄새가 빠지지 않아 밤에는 항상 창문을 열어놓곤 했지요.
-11월초 실시됐던 주지사 소환선거는 배우 출신 아놀드 슈워제네거 후보 당선 등 숱한 뉴스를 만들어내며 한인들에게도 관심을 끌었죠. 그 과정에서 불법체류자 운전면허 발급법이 다시 철회되는 소동이 일어나 기대를 걸었던 불체자들을 더욱 실망시키는 결과만 낳았습니다. 한편 무효화 전까지 한인 봉사단체에는 2,000명이 넘는 한인들의 문의가 쇄도, 운전면허증이 없는 불체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소환선거를 치르며 이민자 입장에서는 반이민 정서와 함께 사회적 약자들에게 불리한 정책들이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커졌습니다. 공화당 참모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슈워제네거 주지사는 취임하자마자 예산난 타개책으로 저소득층과 이민자, 장애인 대상 의료·복지 프로그램을 대거 삭감하는 정책을 추진, 소수계 및 이민자 권익단체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특히 장애인 관련 프로그램을 삭감안에 포함시켰다가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자 자신도 모르게 삽입됐다며 슬그머니 꼬리는 내리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죠.
-2003년은 LA시의회 물갈이, 사상초유의 주지사 소환 등 정국이 요동친 한해였습니다. 이에 따라 정치인들의 부침이 심한 한해이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한인타운 유흥·요식업계의 흥망을 좌지우지하던 네이트 홀든 전 LA시의원의 몰락이었습니다. 임기 제한법에 따라 시의원직에서 물러난 홀든 전 의원이 가주하원 의원 출마를 발표한 모임에는 한인 지지자들이 단 1명도 나타나지 않았고 홀든 의원과 한인언론사 기자 2명만이 있었습니다.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기세 등등하게 한인타운 고급 업소를 활보하던 홀든 전 의원.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 행사장을 지키며 많은 것을 생각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뉴욕 테러이후 이민법이 갈수록 복잡해 지는 것 같습니다. 유학생 감시 시스템인 SEVIS 가동, 비이민 비자 신청자 전원 인터뷰 의무화 등 입출국 심사 강화 조치들이 시행됐고 전문직 임시취업비자(H-1B) 쿼터 감소, 한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특별 종교이민 프로그램 5년 연장 등 변화가 있었습니다.
-한인들의 관심이 많은 교육분야도 바쁘게 돌아갔지요. 매해 봄 가주 공립학교 2∼11학년이 치러 오던 스탠포드 9 시험이 CAT/6로 바뀌어 처음 시행됐지만 한인밀집학교들의 성적은 여전히 상위에 랭크됐습니다. 또 연방대법원은 6월 소수계 우대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해 부분 합헌 판결을 내려 전국 대학들의 소수계 학생 선발에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됐지요. 또 고교졸업시험 시행을 2006년으로 잠정 연기한다는 발표는 날로 늘어나는 각종 시험과 끊임없이 바뀌는 입시정책으로 부대끼는 학생들에게 간만의 숨통 트이는 뉴스였습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새해는 정말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기원해 봅니다. 올 한해 수고많았습니다.
<정리-황성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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